[취향대책소] Episode8. 상류엔 맹금류

취향대책소 여덟 번째 에피소드
글 입력 2018.06.2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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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대책소] Episode8.
상류엔 맹금류


취향대책소
취향 ; 대상을 책임지고 소개함



황정은,『아무도 아닌』中「상류엔 맹금류」


N에게 황정은 작가의 모든 글은 특별하다. 그녀의 글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덥석 찾아오곤 했다. 때때로 그녀의 글을 뒤적거리며 몇 문장을 되풀이해 읽고, 옮겨 적는 일로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어떤 평론가는 그녀의 글을 ‘도덕 교과서를 대신’할 수 있는 글이라고 했다. 그녀의 글에는 심연 저기 어디, 깊숙한 곳에서 잠자코 기다려왔던 윤리적 순간이 있다. 잠자코 몸채를 불리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가 되어 찾아왔다. N은 그녀의 글을 읽으며 윤리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H와 그녀의 글을 통해, 윤리에 대해, 어떤 사건 혹은 누군가들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막연하게 그런 기분이었다.

*

N H, 윤리에 대해 말하고 싶어. 너무 어려운 일일까?

H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어려운 질문들을 우린 얘기했잖아.

N 너 대단하다. 진짜 멋진 대답이네. H는 어떻게 읽었어?

H 나는 분명한 말들로 내 소감을 전할 수 없을 거 같아. 굳이 얘기한다면 아주 추상적인 거, 예를 들어 (헛웃음), 흐릿하지만 분명하고, 마치 따뜻한 척 하지만 사실은 차가운 그런 느낌이었어.

N 추상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느낌이야말로 황정은 작가의 다른 글들의 주된 정서라고 생각해. 뭐랄까, 극적인 사건은 없는데 다 읽고 나면 어떤 것을 알아차려버린 듯한 느낌.

H 맞아. 약간 뭐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가 나를 붙잡고 설명해준 것도 아닌데, 어느 순간 내가 ‘뭔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혹은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다!’ 이런 거처럼.

N 이번 우리가 이야기 할「상류엔 맹금류」도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사실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꽤나 단조롭고 일상적이잖아. 산책을 갔지만, 산책하는 내내 썩 행복하지는 않았고, 그런 식의 관계는 여타 관계가 그렇듯 흐릿해지는. 소설적인 장치들이나 극적인 전개, 또는 거창한 은유 같은 게 없는 글이었어. 그런데도 다 읽고 나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 불편하잖아 ! 난 이런 식의 화법이 윤리를 말하는 화법이라고 생각했어.

H 그런데 정확히 여기서 말하는 혹은 말하고 싶은 윤리나 정서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은 거 같아. 이런 화법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N 나는 오히려 윤리적인 것과 선한 걸 얘기할 때, 당위 명제를 내뱉어버리듯 얘기하는 방식, 그러니까 직설적이고 간편한 방법을 택하지 않고 어떤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해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나 불확실함을 느끼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글이 더 좋은 글이기도 하고. 그래서 H가 이번 글을 읽고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불편함을 느꼈다는 그 사실이 오히려 중요한 거 아닐까?

H 그 얘기에 나도 정말 동의해. 근데 그래서 자꾸 의심이 드는 거야. 이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꾸 생각하게 되는. 그래서 N은 여기에 특별한 사건이나 어떤 은유가 없다고 얘기했지만 나는 자꾸 매치하게 되는 거지. 여기에서 말하는 상류엔 맹금류란 무엇일까, 혹은 여기에서 나오는 후회란 무엇일까, 그런 것들. 그래서 나는 N이랑 이런 어떠한 혼자 의심했던 것들에 대해서 풀어나가거나 혹은 서로의 의견을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

N 물론 모든 소설이 그렇듯 사건이나 은유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었어. H의 말처럼 어떤 대상물이나 발화나 인물의 유형은 다른 무엇으로 매치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내가 생각했던 건, 각각의 대상물의 의미를 비교 분석해 찾는 것보다는 ‘어떤 날, 누군가, 어디에서, 무언가’의 일련의 단조로운 일상 안에서 굳이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기류’를 읽는 게 중요한 독법이라고 생각했어.

H (끄덕이며) 그렇구나, 그러면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할까?

N 구체적인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런 불투명한 감정들이 어떻게 윤리랑 관련이 될까, 그런 걸 이야기해보고 싶었어. 그리고 사실 나는 이렇게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리고 부인하고 싶지만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 윤리 그 자체라고 생각 해. 내가 읽은 황정은 작가의 글은 윤리적인 글이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거 같아. 그냥 개인적인 소감을... 누군가에게... 그게 너였어.


N은 대화를 하며 깨달았다. 미리 답을 정해서 와버렸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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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글의 마지막 문장,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이다.’ 이 문장인데, 이런 경험이 우리 모두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뭔가 콕 짚어서 잘못한 건 아니지만, 나 때문에 누군가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고, 근데 내가 상처를 줬다고 인정하기에는 조금 억울하고, 하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한 그런 상황. H는 그런 때가 있어?

H 있지, 당연히 있지. 근데 나는 여기에서의 화자와 달리 분명하게 기억나는 일은 딱히 없는 거 같아. 화자는 말하잖아. 제희와 헤어진 이유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못하는데 이 날 일은 뚜렷하게 기억한다고. 근데 나는 이만큼의 또렷한 기억을 가질 만한 경험은 없었던 거 같아. 때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의 공기 중에 있는 모든 잘못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야. 그걸 되돌아 와서 그게 정말 내 잘못이었는지, 내가 억울했던 건지 (실제로 거기서 억울했다 하더라도) 나는 다시 생각하기가 싫어. 어떻게 보면 일종의 반성이나 후회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여튼 화자와 나는 그게 달라서 읽는 내내 이질감이 들었던 거 같아.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후회 아닌 후회라든지.

N H에게 어떤 사건을 떠올리고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물어본 건 아니야. 아니었어. 나는 그저 우리한테 꼭 잘못은 아니더라도 ‘아, 이거 좀 곤란하다’ 싶은 어떤 불투명한 일들이 있잖아. 윤리적 고민의 순간이라도 할 수도 있겠고. 나는 내가 그렇듯 너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그게 궁금했어. 그리고 H의 말을 듣고 생각해봤는데, 이 글의 화자는 특별히 더 민감한 사람이고, 무언가를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날을 뚜렷이 기억하는 거 같아. 나도 사실 민감하고 성실하게 고민하는 사람, 그러니까 화자와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니야. 그렇지만 그런 태도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내 잘못은 아니야’라고 말하지 않고 싶기도 해. 그보다는 ‘정말 내 잘못이 아닐까? 그 때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 질문을 이어나가고 싶어. 그래서 이 글의 마지막 대목을 나는 자주 떠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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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나는 그런 생각도 들어, 어쩌면 환상에 젖은 소설이 아닌가. 그런 고민을 계속 해낸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거든. 물론 더 길게 살다보면 더 오래 전 일을 곰곰이 짚어내는 경우가 많아질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N이 이 대목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꼽은 것이 이해가 가고.

N 환상적이기도 하지. 우리는 대개 우리가 개입된 일, 심지어 나 때문에 벌어진 일도 쉽게 잊고, 아무 것도 아닌 취급을 하는 데에 익숙하니까. 더군다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인가봐. 이 소설이, 그리고 황정은 작가의 소설이 나한테 소중하고 필요한 이유가.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일들, 그렇지만 무시하거나 당연한 것 취급을 받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져서는 안 되는 일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누군가 그건 환상에나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던 것들이 있었다고도 생각하고. 그런 마음에서 황정은 작가의 글은 뭐든 가볍고 간단하게, 단순한 논리로 중요한 걸 묵살시키는 우리(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한마디씩 보태고, 글에 대해 생각하고 곱씹어보는 우리의 대화도 비슷한 흐름에서 중요한 일인 거 같아.

*

황정은 작가의 글에 대해 대화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막막했다. 무엇하나 간편하고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N은 윤리에 대해 생각했지만, 그렇다 해도 N은 윤리학자도 아니고 스스로를 윤리적인 사람이라 자부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모르는 거 투성이 불확실한 거 투성이인 N과의 대화에 나란히 앉아 듣고 말을 보태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H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다행스럽다. N도 H도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어떤 게 윤리적인지 확답을 내릴 수가 없다. 오늘 함께 읽은 한 편에 글에 대해서도 정확한 무엇을 진단할 수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고민하는 시간들이 귀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어떤 추상적인 것에 대해 얼마나 멍청히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N과 H는 조금 바보 같을지라도 쓸모없지 않은 그런 고민들을 여전하게 쭉 해나갈 거다.



* 첨부된 사진은 피터 도이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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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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