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로 바라보기

"서울의 밤하늘도 항상 가장 짙은 블루"
글 입력 2018.06.0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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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벽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무채색의 벽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더 아파왔고, 난 그 벽을 허물기보다는 벽에다 글이나 그림을 새기면서 그 날들을 보냈다. 더군다나 그런 날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하늘은 언제나 짙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짙은 날과 옅은 날이 번갈아 찾아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벽의 색과 하늘의 색이 같았던 그 짙은 날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이후 아주 짙은 날은 지나갔지만 언젠가 다시 나는 그 짙은 세상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할 것임을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벽에 일기를 쓰는 기분으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지나간 옛사랑이 그리워서 한 쪽을 가득 메꾸기도 했고 흐릿한 펜으로 미래에 대한 막막한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 푸념이 부끄럽고 비참한 마음에 가득 채운 벽면을 누군가 볼까 서둘러 가리기에 바빴다. 그런데 언젠가 내 벽을 벗어나보니 다른 사람들도 다 저마다의 벽을 갖고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도 벽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벽을 넘어가려 애쓰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벽에 기대어 있기도 했다.
나는 그 벽에 새긴 가사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려한다. 영화나 음악과 같은 이야기를 풀어 쓰기도 해보고 사람들의 삶에 대해, 그 삶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그려나가고싶다. 그렇게 벽면을 채우고 그 가사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멜로디가 붙으면 기타를 치며 그 가사를 조용히 불러보고싶다. 회색 빛으로 가득한 벽을 가사로 채우고 누군가 그 가사를 불러준다면 짙은 이 세상도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서울의 밤하늘도 항상 가장 짙은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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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에는 나처럼 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영화를 보고 쓴 가사를 실었다. 세상 사람들처럼 영화 속 사람들에게도 벽이 있었다. 짙은 하늘 밑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청춘의 이야기는 도쿄나 서울이나 어찌나 비슷한지. 어둡게 빛나는 하늘을 보며 담담하게 청춘을 그려낸 영화를, 기억 속에만 남겨두고 싶지 않아서 “서울의 밤하늘도 항상 가장 짙은 블루”라는 제목을 달아 써보았다. 나와, 우리 모두와 닮은 주인공의 모습을, 나의 청춘을 천천히 생각하며 가사를 끄적여 본다.
우리들 청춘의 색은 항상 푸른색
짙은 색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겠지
오늘의 밤을 나는 또 칠할 수 밖에 없네
일어나 행복이란 빛 바랜 줄을 쫓아
그것마저 차마 잡지않는다고 하면
넌 푸른 밤하늘에 떨어지고 말 거야

-

숨 쉬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우리 곁에는 죽음이 늘 뒤따라 다닌다. 자신의 친구가 죽어버린 남자도,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직업을 가진 여자도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무섭다. 두려운 마음에 하늘을 온통 어두운 생각으로 칠하고는 행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꼭 행복해야만 하는지를 달에게 묻는다. 당연히, 달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어두운 하늘을 외롭게 비추는 달의 모습도 하늘과 마찬가지로 푸르다. 밤하늘과 달을 올려다보는 그 모습, 생각을 후렴구에 담아보려했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어스름 저 달마저 푸르네
어쩌면 저 달도 나와 같을까
시간은 흘러 결국 모두가 너와 나도 천천히 죽어가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날

-

인트로도 없는 노래에 같은 코드만 반복되는 간주는 지루하다. 청춘의 간주는 이 노래의 간주처럼 어른이 되지 않고 그저 같은 삶만 반복하고 있다.
Interlude

-
아직 어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어른이 되어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을지 모르지만, 과연 행복할 날이 행복하지 않을 날보다 많을까 자신할 수 없다. ‘행복해야한다’고 습관처럼 말하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살아간다. 행복해야만 하는 게 오히려 날 불행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시간은 지나고 우린 어른이 되었지
지나간 시간은 좋은 시간이란 이름으로
행복한 날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꼭 행복해야만 하는 걸까

-
살다보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나고나면 다 추억이 된다, 잊혀진다 하지만 지금 내가 힘든 걸 위로해줄 수는 없다. 그런 순간은 삶의 브릿지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와 '젊은 나이'의 중간쯤에 있는 이 순간도 나에게는 브릿지같은 순간이다. 그 다리를 건너든 안건너든 내 삶은 지금과 변함없을 것임을 나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르고, 아마 나중에도 모를 것이다.
Bridge
다 포기하면 좀 나아질까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어른이 되면 좀 나아질거 같았는데
뭘 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그냥 똑같네

-

극 중간중간에 길가에서 버스킹을 하는 여자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간바레’를 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라니, 영화의 메시지가 주는 이질적인 느낌은 그녀의 위로와 응원을 무시하는 길가의 사람들로부터 나에게 전해진다. 그렇게 ‘간바레’를 외치던 여자는 결국 성공하여 콘서트를 열고, 그 모습을 보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무슨 느낌이 들었을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결국 영화의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죽음과 절망이 짙은 밤하늘의 분위기에서 사랑은 잘 어울리지 않지만 둘은 사랑을 한다. 혼자만의 푸념도, 세상에 대한 냉혹한 비난도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언젠간 내 뒤에서 걷던 죽음이 나와 나란히 걷게 되겠지만, 그 날이 오게 되면 밤하늘도, 사랑도, 행복하지 않은 날들도 잊어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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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어스름 저 달이 좀 서글퍼
어쩌면 저 달도 나와 같은 마음이야
시간은 흘러 결국 나중엔 너와 나도 천천히 잊어가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 날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 날

-
가장 짙은 푸른 하늘 아래서도 결국 사랑하고, 힘내고,  살아가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마지막 날까지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은 너무 안쓰럽다. 그들에게 나는 ‘이 영화는 너를 응원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라고 말하고싶다. 나와 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을테니.





"서울의 밤하늘도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우리들 청춘의 색은 항상 푸른색
짙은 색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겠지
오늘의 밤을 나는 또 칠할 수 밖에 없네
일어나 행복이란 빛 바랜 줄을 쫓아
그것마저 차마 잡지않는다고 하면
넌 푸른 밤하늘에 떨어지고 말 거야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어스름 저 달마저 푸르네
어쩌면 저 달도 나와 같을까
시간은 흘러 결국 모두가 너와 나도 천천히 죽어가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날

Interlude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어스름 저 달마저 푸르네
어쩌면 저 달도 나와 같을까
시간은 흘러 결국 모두가 너와 나도 천천히 죽어가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날

시간은 지나고 우린 어른이 되었지
지나간 시간은 좋은 시간이란 이름으로
행복한 날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꼭 행복해야만 하는 걸까

Bridge
다 포기하면 좀 나아질까
뭘 해야 하는지 몰라
어른이 되면 좀 나아질거 같았는데
뭘 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결국, 그냥 똑같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 어스름 저 달이 좀 서글퍼
어쩌면 저 달도 나와 같은 마음이야
시간은 흘러 결국 나중엔 너와 나도 천천히 잊어가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 날
희미하게 눈 뜬 마지막 날


작사 민현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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