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의 집시의 테이블

글 입력 2018.04.0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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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의
집시의 테이블


일년간 수제맥주를 찾아 떠났던 여행기 원고를 털고 나서 찾아온 건 다름 아닌 무기력과 과로라는 불청객이었다. 인생에 몇 없을 바쁠 일이 한번에 몰아 닥치더니 결국 몸살을 크게 앓은 후에야 제대로 봄맞이를 신고라도 했다 해야하나? 앞만 보고 달리다 한순간 모든 걸 놓고 나니 허무함과 앞으로의 미래를 마주할 불안감이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툴툴 털고 일어나야 또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싶어 지난 일요일 오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회색빛 하늘을 거두고 탄 지하철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 구경하기 좋은 여행지다. 한겨울보다 조금은 밝아진 듯한 사람들 표정을 구경 삼아 혜화역으로 향한 이유는 바로 ‘하림과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의 집시의 테이블’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덤으로 오랜만의 봄날 데이트는 부제가 되어 나를 설레게 하였다.
 
올해가 벌써 8주년을 기념하는 ‘집시의 테이블’은 오랜 시간 각 멤버들의 여행 이야기의 농도가 더욱 짙어져 돌아왔다. 공연을 관람하기 전 좁은 내 안목으로 기대한 바는 집시’를 테마로 했으니 보헤미안스러울 것이고, ‘하림과 그의 친구들’이 펼쳐 낼 음악여행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겠다 정도였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지막 공연 날 만난 ‘집시의 테이블’은 짙어진 농도처럼 더욱 보헤미안스럽고, 꺼내 놓은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했으며, 여행을 떠날 이유이자 당위성을 만들어 준 봄나들이 같은 공연이었다.
 
4월의 첫 날, 저녁 6시에 찾아간 대학로 TOM2관에서 마주친 이국적으로 꾸민 무대에는 벌써 그들의 음악여행에 떠날 준비가 된 관객들의 이목을 끄는 데 충분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티스트 하림을 뒤로 여섯 명의 멤버가 차례로 무대를 채워 가기 시작했다. 두번째달의 김현보, 조윤정 싱어송라이터 김목인, 이호석, 마임에 정명필 씨까지... 가지각색의 재능과 끼를 갖춘 이들이 모여 첫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들려준 곡은 내가 이 공연에 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준 <연어의 노래>였다.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 떠나는 연어처럼, 어쩌면 인간도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가 아닐지... 공연제목처럼 집시의 이유 있는 방랑을 소개하기에 안성맞춤인 곡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왜 떠나야만 하나
모르던 나의 시작을
이제야 난 이해해 이제야 난 이해해

맨 처음 만난 바다는 날 꿈을 꾸게 하였고
돌아와 만난 강물은
날 편히 쉬게 하네
날 편히 쉬게 하네

- 연어의 노래 중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 어딘가에 터를 잡고 살아갈 수 없는 방랑의 존재. 사전적 의미의 ‘집시’는 이런 맥락으로 먼저 소개가 되긴 하지만, 우리가 집시에게 놓쳐버린 단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그들의 ‘재능’일 것이다. 무엇이든 자기의 방식대로 풀고 해석하고 받아 들이는 일. 보수적이고 획일화 된 현대사회와 동일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 자유로움은 그들에게 뛰어난 음악적 예술적 재능을 승화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었다.
 
오늘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들을 ‘집시’라 생각하고 떠난 여행지는 바로 1930년대 프랑스 파리다. 미국에서 건너온 재즈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풀어준 곡은 재즈의 정통성에 리듬과 비트를 더해 좀 더 부드러운 선율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마임의 무대는 웃음을 자아냈고, 우리가 겪고 혹은 겪을법한 여행 에피소드를 재치 있게 풀어 놓았다.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 이야기까지도.

프랑스 파리에서 다음 여행으로 떠난 곳은 그리스. 유럽 남부 다양한 고대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그리스에서는 전통민요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어로 비슷한 듯 아닌 듯한 제스처를 함께 그리스 여신처럼 변신한 가수 호란과 관객이 함께 호응했던 시간은 짧지만 강한 그리스 음악여행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보조키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그리스 전통악기 ‘보조키’ (정말 보조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퉁퉁거리는 가느다란 기타선율에 맞춰 귀기울여 들은 그리스 음악을 듣고 있자니 영화 <비포 미드나잇>이 절로 떠올랐다.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며
셀린느가 넌지시 말하던 그 대사...
Still there, still there, gone....
아직 나의 그리스를 놓아주기엔
아쉬움이 남는 시간...

아쉬운 그리스를 넘어 떠난 곳은
유럽 북부 아일랜드다.
맥주 기네스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만난 건
다름 아닌 아이리시 댄스 Irish Dance.


탭댄스가 연상되는 이 춤은 아일랜드 전통 민속 춤으로 아이리시 댄서로 활동 중인 강예니 댄서가 나와 직접 시범을 보이고 배워보는 시간도 가지며 함께 소통하는 무대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범을 보인 관객에게는 맛있는 기네스 맥주가 선물로 주어진 유쾌했던 아일랜드 음악여행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그리스, 아일랜드에서 다시 파리로. IN and OUT 파리로 짜인 음악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다시 프랑스 파리였다. 제시카와 장희창 커플의 스윙재즈댄스를 보며 유쾌한 파리에서의 추억을 되새겼다. 세 국가를 여행하며 긴 여정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돌아갈 집과 가족이 그리워지는 시간, 여행을 그리워하면서도 여행에서 느끼는 고단함, 그 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위로가 되어준 파리에서의 시간... 그렇게 다시 한국, 대학로에서 긴 여행을 마무리 지으며 다 함께 작별을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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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일상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갈등하는 요즘, 바닥을 보이고 만 체력에서 힘겨워하고, 여행작가로의 첫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요즘, 하림과 그의 친구들은 세계음악으로 조금은 치유 받는 봄날을 선사해 주었다. 집시처럼 들려준 그들의 음악과 무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삶의 의무가 아닌 의미를 찾고 환기할 수 있었다. 소중한 사람의 손을 잡고,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함께 인생여행을 할 수 있길 소망하며, 그렇게, 내 봄날의 여행을 기억 속에 저장하였다.

마지막 공연에 초대해 준 아트인사이트에게, 좋은 공연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해 준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에게 이 리뷰를 통해 감사를 전합니다.




[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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