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정의는 어떠한가? 드라마 '비밀의 숲'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2.0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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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라마 보다는 영화, 영화 보다는 책을 선호한다. 나는 유독 영상에 집중을 잘 못하고 금새 지루함을 느끼는 편이라서,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아마 책에 비해 영상은 영상을 보면서 금새 딴 짓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점이 있어서 영화 같은 경우도 집에서 보는 것 보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력, 극본, 연출 등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명작 드라마가 있다는 말에 처음으로 드라마 정주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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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은 작년 여름 방영되었던 드라마로 당시 조승우, 배두나 주연이라는 이름만으로 시작부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은 작품이다. 케이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 7.1%인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이다.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극본과 작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연기 구멍'이 없었기 때문에 16부작 내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에서 볼 수 있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하자면, 스폰서 및 브로커 활동을 하며 온갖 비리를 저지른 박무성이 살해된 후 유력 용의자를 잡아 처벌하지만 용의자는 진범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자살하게 된다. 게다가 이후 방무성이 정계 인사와 권력자들에게 보냈던 권민아가 살해당한 박무성의 집 화장실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며 본격적으로 비리로 가득 찬 정치권과 기업가들의 만행이 드러나며 본격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 황시목과 따뜻한 감성과 정의를 갖고 있는 한여진 경위, 오명을 쓰고 추락한 전 장관의 외동딸 영은수 검사, 의심 속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 검사장 이창준, 이창준의 장인이자 권력을 활용하여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한조그룹 회장 이윤범, 이쪽 저쪽 잘 옮겨다니며 살 구멍을 마련하는 박쥐같은 검사 서동재 등 다양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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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드라마 중 초반에는 흡입력 있는 내용 전개가 뒤로 갈수록 산으로 가거나 로맨스로 귀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비밀의 숲 같은 경우는 시작점이 된 한 사건으로부터 촘촘하게 엮어나가며 숨겨져있던 이야기, 인물들의 속사정, 돈과 권력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악행등이 하나하나 밝혀지며 완벽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으로 유명한 드라마인 만큼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도 불구하고 앞서 나온 복선들과 인물의 특성,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를 납득시키고 계속해서 긴장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인물 묘사이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비밀의 숲' 속 인물들의 한 길 사람 속은 정말 모른다. 어떤 화에서는 계속 의심했던 인물이 어느샌가 측은하게 보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든든하고 다정했던 인물이 살인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박쥐같이 얄밉던 인물의 편이 되서 어느새 악한 인물에게 당하지 않도록 응원하게 되기도 한다. 주조연이 아닌, 단역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가치관, 양심, 원한, 신뢰 등 고유의 감정과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고 더없이 선한 인물도, 더없이 악한 인물도 없다. -개인적으로 이윤범은 더없이 악하다고 생각하긴 한다.- 특히, 가장 좋았던 인물은 한여진 경위(배두나)이다.

흔히 우리나라의 추리극, 스릴러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단순히 로맨스를 위한 따뜻한 인정을 갖고 정의로운 인물이지만 감정에 휩쓸려서 사건을 더 복잡하게 하거나, 이를 통해 남자 주인공의 능력을 더 부각시켜주는 소모형 인물로 많이 그려졌다. 그러나 한여진 경위는 다르다. 따뜻한 인정을 갖고 경찰의 정의를 가진 인물로서 황시목 검사와 대립되기는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철하게 사건을 분석하며 다른 인물이 놓치는 부분을 잘 파악하고 사건 해결을 효과적으로 돕는, 단순히 남자주인공의 능력을 부각하는 인물이 아닌, 함께 사건을 끌고나가는 훌륭한 파트너로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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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밀의 숲'리뷰라면 당연히 나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을 놀라게하고 눈물짓게 한 이창준 또한 빼먹을 수 없다. 처음에는 당연히 제일 악한 인물이자 마지막에 물리쳐야 할 적으로 묘사되던 이창준은 뒤로 갈수록 은연중에 황시목이 사건을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모습을 종종 보여 시청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권력욕이 있는듯해 보이다가도 자신의 장인에게 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성매매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를 향한 애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오른팔인 서동재를 잘라내고 장기말처럼 이용하려 했음에도 자신을 대신해 지팡이를 맞은 서동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하고 박무성에게 가장 큰 뇌물을 받은듯해 보이면서도 황시목에게 검사로서 자신이 지닌 정의를 말하기도 한다.

결국 마지막에 반평생을 바쳐 한조그룹의 비리를 모으고 한 순간의 동정과 무지로 인해 긍지를 저버린 과거를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며 투신하는 모습을 통해 이창준이라는 인물이 가진 망가져버린 사회를 목격한 자의 분노와 무력감, 자괴감, 지난 길에 대한 회환을 보여준다. 특히 죽기 직전, 서동재의 손을 잡고 말한 "동재야, 넌 이길로 오지 마."라는 말 한마디에서 그동안 어떠한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엉망으로 얼룩진 사회 속 무너져갔는지 등 이창준이란 인물을 응축해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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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권력과 비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와 다르게 '비밀의 숲'의 결말은 현실적이고 그렇기에 더욱 여운이 남는다. 모든 비리를 밝힌 황시목은 남해지청으로 좌천되고, 한조그룹은 무너지지 않은 채, 딸이 가업을 물려받는다. 새사람이 되겠다던 서동재는 여전히 야금야금 이것저것 받아먹고 있고 우리는 어차피 세상이 잠잠해지면 권력가들과 기업가들이 비리를 저지를 것을 알고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황시목, 한여진과 같은 인물이 있다는 것에 위안받고 진정한 정의란 어떤지 스스로 생각해보게되는 것 같다.
 
사실 이 외에도 자신의 살 길만을 생각하는, 누구보다 현실적이였던 서동재 검사와 누구보다 든든하고 다정한 미소를 짓다가 어느새 살인마의 표정을 하고 있고, 분노로 가득 찬 살인자이지만  공포와 죄책감으로 눈물을 흘리던 윤세원,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시종일관 무표정이지만 매력적인 인물인 황시목 등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사건에 보다 몰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촬영기법과 음향 효과 등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훌륭한 점이 많은 드라마이다. 만약 아직까지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하지 않을테니 꼭 한번 봐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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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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