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타포르테 ; prêt-à-porter] 4. 모던 타임즈 인 경성

청춘의 그림자를 좇아 100년을 거닐다.
글 입력 2017.11.2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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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걸 모던보이. 흔히 20세기 초 ‘경성’을 살았던 청춘을 두고 이르는 말로 ‘모모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진 경성 시대를 통해 그들과 종종 만나볼 수 있었다.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전개되어가는 스토리도 흥미롭지만, 그 속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단연 경성의 화려한 의상이다.
 
민족 고유의 전통 한복을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서양의 플래퍼 스타일과 같은 양장이 혼재되어 있는 경성 시대의 패션 경향은 쉽게 말해 ‘복식의 이중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주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계급에 따라, 또는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복식의 색상이나 직물을 달리해서 차별성을 두며 ‘복식의 이중 구조’를 형성해왔다. 경성 시대 역시 이러한 복식 풍습의 맥이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온 것이지만, 유독 그 시기의 복식 형태가 눈에 밟혔던 이유는 다름아닌 경성의 청춘들과 현재 우리의 모습이 면면히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다양하고 화려한 착장을 고수했던 그 시기 청춘들의 내면 풍경은 어땠을까. 화려함과 자유의 갈망 속에 도사리는 공허함은 언제, 어디로부터 발현되었던 것일까. 청춘들의 그림자를 좇아 경성의 거리를 거닐어 보았다.



# 불안과 자유, 그리고 낭만


일제 치하의 어지러운 시대, 구세대의 낡은 관습으로부터의 도피, 쏟아져 내리우는 신문물, 아직 사라지지 않은 봉건적 인습, 억압적으로 여성들에게 부여된 순결의 가치, 신여성들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눈길.

삶의 어두움들을 비추는 거리의 가로등, 무릇 100여년전 ‘경성’에 공존하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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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대를 근거지로 삼는 혼부라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이라는 말도 이제 거추장스러운지 모뽀, 모껄로 줄여 부르며 요즘 아이스커피에 심취해 있다. 남녀 한 쌍이 머리를 부비며 보리줄기로 쭉쭉 빨아먹는 사람의 아이스커피는 올여름 본정통의 진풍경이었다.”

- <경성 모던타임즈>
모모족이 즐겨 찾는 사랑의 아이스커피 中


'경성 모던타임스'의 저자 박윤석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방식, 즉 의식주와 사고의 뿌리는 경성이다. 경성에서 유행했던 커피를 여전히도 우리는 열광적으로 마신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욕망과 맞닿아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그때 생겨났다 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억압과 자유의 갈망 속에서 더욱 큰 욕망과 이상을 품었던 청춘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살아간 두 세대 사이에는 닮은 구석들이 있다.


불안한 청춘
근대적 소비 생활
자유연애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불 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하여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中


우리는 아프기 때문에 청춘이었던가. 취업난 속에서 더는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경성에서도 유유히 들려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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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의 여성인 A는 집안이 가난한 동성 친구 B의 학비를 지원하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던 중 A에게 전문학교 남학생 C가 접근한다. A는 B에 이어 C도 사랑하게 됐지만 C는 A의 돈을 보고 접근했을 뿐 B를 좋아하게 된다. A는 자신이 사랑하던 B와 C가 깊은 관계가 된 것을 보며 괴로워한다.

- ‘경성 고민상담소’ 中


‘사랑을 좇아서 도망을 갈까요’ 
‘약혼한 남자가 정조 뺏고 파혼’ 
‘남편 있는 여자 사랑할까요’ 


한편, 그것이 어떤 형태의 사랑이었든, 사랑을 앓던 청춘들은 각자의 내밀한 고민을 털어 놓기도 했다.
전근대 유교 윤리와 함께 ‘자유연애’ 풍조가 충돌하며 새로운 물결을 이루었고, 그야말로 당시 경성은 성(性) 윤리의 아노미(anomie) 상태였다. 신문에서는 두 윤리 사이에서 갈팡거리는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이에 전문가가 해답을 주는 성 상담 코너 ‘어찌하리까’를 마련하기도 했다.



# 조선의 오렌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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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도시 시민’으로 그려진 경성의 청춘들. 마치 1990년대 강남 압구정동을 거니는 오렌지족과 홍대 앞으로 모여드는 청춘들과도 닮지 않았나. 경성의 모던 걸, 모던 보이는 당시 자본주의 소비문화와 대중문화, 유행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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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폼에 살고 폼에 죽던 당대 ‘모모족’들은 화려한 겉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제일의 일로 삼았다. 모모족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는 단적인 특징은 ‘패션’이었다. 핸드백과 가방은 커지고 머리, 양산, 치마 길이는 점점 짧아져 갔다. ‘쓸모 있는 것은 점점 작아지고 쓸데없는 것은 점점 커진다’는 당시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신문물에 대한 유혹과 근대적 감각의 자극을 피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전근대의 것들로부터 선을 그으며 관습과 규범을 타파하려는 시도는 기성세대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임에도 불구하고 소비문화가 발달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시대 상황이 그들의 소비문화에 크게 영향을 주진 않으며, 이는 지금의 청춘들의 모습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패션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만과 눈총은 여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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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 세대 간 충돌을 겪으며 일제 강점기의 우울하고 불안한 청춘들에게 ‘패션’은 유일한 낭만이었을지도 모른다. 유행과 스타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 않고 대담한 언행을 보이던 그들이 새롭지 않은 이유는 꼭 지금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아서였을까.

새로움을 추구하는 패션의 속성은 지금 역시 변함이 없는 듯하다. 만연해지고 있는 지금의 소비주의, 물신주의는 어쩌면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밟고 지나간 흔적일 터다. 새로운 세계로 이행하는 불안정한 걸음을 따라 걷다보니, 지금 여기, 서울에 도착했다.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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