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클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도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내한공연

글 입력 2017.11.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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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연주를 감상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실 나는 고민한다. 내가 음악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클래식을 듣고 느끼는 데에 법이 있겠느냐만은 '클래식'이라는 이름의 무게감 때문에 지레 긴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늘 잔뜩 경직되고 긴장된 자세로 공연을 보러 가지만 결국엔 벅차오르는 감동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내한공연 - '클래식의 위대한 도전' 역시 그랬다. 괴기하면서 신비로운 음악적 해석을 선보인다는 그의 타이틀 아래 시작된 공연. 그래서 더더욱 의식적으로 주먹을 꼬옥 쥐었지만, 공연이 끝날 때 즈음 내가 주먹을 쥐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무척 화려하고 다양했으나 직접 공연을 접하고 나니 그의 연주는 그 모든 표현들의 머리 위 너머에 존재한다고 느꼈다. 모든 것의 기저에는 오로지 한가지가 있을 뿐이었다.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고자 하는 그의 열정, 더 높은 곳으로 뻗어가고자 하는 그의 음악 세계. 오케스트라와 그의 피아노가 펼치는 하모니는 강렬헀고, 그 사이 긴장을 놓을 틈 없이 지휘가 이어졌다.
 
     그는 러시아 음악의 진수를 보여 주는 두 곡을 선보였다. < Tchaikovsky Piano Concerto No.1 in B-flat minor Op.23 >는 일반적으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이라고 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곡으로, 매우 개성적이고 완성도가 높기로 손꼽힌다. 또한 <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 >는 곡 전체에 흐르는 달콤한 분위기와 러시아적 정서, 그리고 피아노 기교의 묘미가 매력적인 곡이다. 그는 이 곡의 피아노 연주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동시에 진행했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워낙 아름다운 곡들이었기에 더욱 귀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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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그의 도전 정신이 두드러지는 대목이다. 이는 음악의 색다른 지평을 열고자 하는, 새로운 방향성의 소리를 찾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었으며, 동시에, 지휘와 연주 두 방향의 흐름을 모두 집중하여 소화하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산물로 여겨졌다. 그는 기본적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있었지만 지휘를 할 때의 동작은 매우 역동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는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때로는 오른쪽으로도 갔다. 짧은 순간 순간 곡을 휘어잡는 그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사실 지휘자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연주에 비해 연주자 분들이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긴 했다. 하지만 그의 지휘가 결코 피아노, 혹은 오케스트라에 묻히지 않았던 것은 열정과 역동이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리라. 관객석을 등진 그의 등은 피아노 선율에 맞춰 움틀거렸고, 때때로 연주자 분들을 향해 휘두르는 손끝에서는 생기가 넘쳤다. 특히 후반부 연주를 들으면서 피아노 자체가 지휘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피아노였고, 피아노가 그였다. 그 선율 하나, 쉼 하나, 눈빛 하나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개인적으로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유독 후반부 연주가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동화같은 선율을 타다가, 드라마처럼 격정적으로 치닫다가, 곡의 결말부에 이를수록 긴장감을 고조시키더니 이내 강렬하게 끝맺는 피날레.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곡이 끝나고도 박수소리는 한참동안 멎지 않았다. 관객석 곳곳에서 브라보를 외치는 관객들이 몇 보였다. 환호성 속에 시작된 앙코르곡은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이었다. 피아노 위의 지휘자 가브릴로프와 오케스트라 단원분들이 펼치는 엄청난 몰입감과 스릴감을 눈과 귀에 마지막으로 잘 새겨 담을 수 있었다.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 그렇게 발걸음이 가뿐할 수가 없었다. 클래식은 내게 커피 같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관찰하면 할수록 즐겁고 알면 알수록 재밌으며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 매번 마주할 때마다 낯설었던 얼굴이 꽤나 친근하다. 매력적이다. 열정을 담은 협연을 통해 클래식의 향기로움과 그윽함에 가득 잠기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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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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