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걱정쟁이 #오뎅국물 #김치 볶음밥 #피아노 연습

2017.10.31 10.
글 입력 2017.10.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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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걱정쟁이


유년의 기억을 돌아보면서 참 많이 변했음을 느끼고 있어요.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걱정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린 저는 걱정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좋아하는 장난감이 닳아 없어지면 어쩌지
이 겨울이 끝나지 않고 꽁꽁 얼어버리면 어쩌지
말한 답이 틀린 답이면 어쩌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지 않으면 어쩌지
내일 하기로 한 발표에서 실수를 하면 어쩌지
죽으면 어쩌지

수 많은 걱정들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심장을 뛰게 만들었어요.

심장의 고동소리는 귀까지 울려와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였고
혼자만의 세상에서 내내 불안해하기만 했어요.


어느 날 생각해보니 내가 한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마음만 불편할 뿐이었지요.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는 걱정 대신
미리 대비를 하면 되었고,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일에 대한 걱정 대신
현재를 즐기면 되는 것이었어요.

걱정은 지금도 찾아오지만
어린 날의 그때처럼 심장을 쿵 하고 내려앉게 하지는 못해요.
걱정쟁이는 멀리 떠나갔기 때문이에요.
과거에만 있을 뿐 지금은 없기 때문이에요.





#42 오뎅국물


이때 즈음이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손과 발이 조금씩 시려오는 날씨에요.

주판학원이 끝나고
집까지 데려다 주던 노란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의
조금의 시간을 아이들은 놓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반의 아이들, 고학년 반의 아이들과
마냥 커 보이던 중학교,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까지 한데 뭉쳐
술래를 정해 서로를 잡으러 뛰어 다니며 놀았어요.

이름 모르는 언니의 손을 잡고
학원 뒤의 공원 한 바퀴를 술래에게 쫓겨 열심히 뛰고 나면
어느새 노란 버스가 출발한다며 빵빵대요.

볼이 새빨개진 모두가 버스 앞으로 모이면
그 앞의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오뎅국물이 든 종이컵을 주시곤 했어요.

그 종이컵을 못 받은 사람이 더 많았지만,
서로 돌아가며 차가워진 손을
얇은 종이를 통해 전해오는 온기에 녹일 수 있는
버스에 앉아 집에 가는 순간이 그 어느 때 보다 따뜻하곤 했어요.





#43 김치 볶음밥


두 번째 초등학교를 다닐 때의 일이에요.

제게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막 생겼을 때,
한 아이가 모두를 집에 초대했어요.
학교가 끝나고 다같이 친구네 집을 방문했어요.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고 적막한 집에
아이들만 모여 한참을 놀고 있는데
누군가가 사건의 발단이 된 말을 하였어요.

‘배고프다.’

집에 찾아온 손님의 배고프다는 말에
작은 집주인은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내놓을 음식이 없다는 것에 당황해 했어요.

있는 거라고는 맨밥과 김치와 계란뿐이라는 말에
다른 손님이 묘안을 내놓았어요.
김치 볶음밥이라는 해결책이었지요.

제대로 된 음식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왠지 김치 볶음밥은 어깨너머 본적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그냥 밥과 김치와 계란을 볶으면 될 것만 같았어요.

가스레인지의 불을 최대로 켜고 팬을 올리고
모든 재료를 팬 위에 올려 놓았어요.
계란도 제대로 깨지 못해서 껍데기가 잔뜩 들어간 채로 넣었어요.
아니, 불이 무서워 팬으로 던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서는 도구를 이용해서
재료들을 잘 섞어야 할 것 같았지만
아무도 뜨거운 불 가까이 갈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그때 또 다른 손님이 묘안을 내놓았어요.
가만히 두어도 재료들이 알아서 익기 때문에
가만히 있자는 해결책이었어요.

그렇게 밥이 익기를 기다리자며 들어간 방에서
우리는 볶음밥의 존재를 잠시 잊고 인형놀이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코를 킁킁거리며 말을 했어요.

‘타는 냄새가 나!’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볶음밥이 스쳐지나 갔어요.
동시에 주방으로 뛰어가니 연기는 자욱하며
팬에 눌러 붙어 형체도 알 수 없게 까맣게 타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지요.

작은 집주인은 용기를 내 불을 끄고
아이들은 연기를 내보내기 위해 온 집안의 창문을 열었어요.

까맣게 탄 팬과 음식을 보며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어요.
어른이 계시지 않는데 불을 사용했고,
이렇게 음식을 모두 태웠으니 혼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어요.

그때 또또 다른 손님이 묘안을 내놓았어요.
탄 팬과 음식을 모조리 버리자는 해결책이었지요.

우리는 팬(정확히 말하자면 팬과 탄 음식을)을 들고 아파트 쓰레기 장으로 향했어요.

그리고는 3명은 망을 보고,
3명은 음식물 쓰레기 통에 탄 음식을 탈탈 털어 버렸어요.
그리고는 3명은 망을 보고,
3명은 팬을 쓰레기 장에 버렸어요.

우리는 그렇게 증거인멸을 했어요.
김치 볶음밥을 하려다가 밥과 계란과 김치를 모조리 태우고,
팬까지 없애버린 일을 그 어떤 어른도 모를 거에요.





#44 피아노 연습

피아노를 몇 년 동안 배웠지만
오늘 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레슨이 끝나면
선생님께서 항상 그려주고 가시던 동그라미들이에요.

이 동그라미는 다음 수업 때까지 해야 하는 연습의 횟수로,
보통 5개에서 10개의 동그라미가 주어지곤 했답니다.

한 번 연주를 하면
동그라미 하나를 색칠하던 찍 그어버리던
아무튼 체크를 하면 되는 거였어요.

순전히 어린 아이의 양심에 숙제를 맡긴 것이었지요.
물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음 레슨 시간에 티가 나긴 했지만요.

문제는
저는 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다는 점이었어요.
기꺼이 하고 싶은 것만 즐겁게 해내곤 하는 아이였다는 점이었어요.

보통은 5개였던 동그라미들이 해가 지날수록 10개로 굳어지자
보통은 한 장뿐이던 악보가 해가 지날수록 여러 장이 되자
저는 동그라미를 그냥 칠하기 시작했어요.
연습을 하지 않기 시작했어요.
피아노가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결국엔 어느 날 피아노를 그만 두게 되었어요.


몇 년을 배웠던 피아노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건 아쉬울 수 있는 일이지만
갈수록 동그라미의 수와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오히려 후련하게 느껴져요.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져요.
실력과 성실함의 지표였던 동그라미를 저는 거짓으로 채웠으니 말이에요.









전문필진 명함.jpg


사진 출처: 볼빨간 사춘기-썸 탈거야 mv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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