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네로의 그림, 다비드 프레이 & 세종솔로이스츠 [공연]
글 입력 2017.09.26 23:52
-
처음으로 초대권 두 개가 생겼다. 대학교에서 사귄 친구들 중 하나랑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신이 났다. 하지만 기대는 늘 잘 깨지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있는 사회에서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친구가 잘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너무 ‘바빠서’ 클래식 공연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답장조차 받기 힘든 시대다.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중 「플란더스의 개」라는 동화가 있다. 주인공 소년 네로는 루벤스가 그린 예수님 그림을 ‘실재로’ 보고 싶어한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세대에서 자라난 나는 그런 네로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진짜 그 모습을 보고 싶으면 컴퓨터로 찾아 보면 되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그 예수님 그림을 찾아 본 나는 더욱 네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런 건 수녀원 복도에 널려 있는데, 왜 네로는 이 그림을 특별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거지? 마지막에 네로가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죽는 결말을 읽으면서, 분한 마음은 더 커졌다. 이 아이는 왜 겨우 그림 때문에 죽는걸까.엄마는 하루 종일 개와 소년에 대해서 쫑알대던 나에게 동화 속 마지막 그림을 가리키면서 그래도 햇빛이 비추고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했다. 나는 그걸로 겨우 그 동화를 매듭지을 수 있었다.
세상은 좋아하는 문화를 논의하기에는 각박한 곳인 것 같다. 친구들에게 나는 어쩌면 ‘클래식을 좋아하는 괴짜’다. 그 지칭은 약간의 비웃음과 대부분의 무지로 이루어져 있다. 어릴 적 귀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가사 없는 노래들을 귀에 꽂아 둘 수 밖에 없었고, 가사없는 노래와 클래식의 교집합이 컸을 뿐이다.처음에 클래식을 듣게 된 계기가 ‘살기 위해서’ 였다면, 자주 보다 보면 정이 든다고, 점점 좋아졌다. 굳이 비유해 보자면, 나에게 클래식은 이 장면 속의 토토로 같은 존재다. 비가 거세게 오고 아프던 사람이 더 아픈 불안한 날, 어딘가 조용히 숨어 있다가, 뽀짝뽀짝 내 옆으로 다가온다. 그런 몸짓만으로도 나는 위로된다. 나는 클래식을 토토로처럼 좋아한다. 실컷 같이 울고 웃고 욕하고 등등, 감정을 나누고, 그 푹신한 배 위에서 잠들게 토토로는 내버려 둔다.동생이 중학교 탈출 기념으로 아빠와 유럽에 다녀왔다. 그 것은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림을 ‘실재로’ 보고 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어릴 적 본 동화 「플란다스의 개」를 떠올리고, 물었다. 교과서랑 그림이 많이 다르던? 침묵이 흘렀다. 동생은 다른 점을 쥐어짜내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동생은 겨우 대답했다.책 내용대로 모나리자가 어느 방향에서 봐도 나를 보는 것 같긴 하더라.이번 클래식 공연 관람은 클래식을 정말로 좋아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간 예술의 전당이었다. 그래서 많이 기대했다. 한 음이라도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 집에 있는 어린이용 클래식 분야 책들도 읽었다. 이미 이어폰으로 들어도 천상의 느낌인데, 진짜로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말이다. 프리뷰를 쓸 때의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먼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 대학교 친구들은 내 좋아함의 감정을 무너트렸다. 친구들에게 클래식 보러 같이 가자고 떼를 쓰는 나를 막고 한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난 클래식이 싫어. 지긋지긋해. 내가 나온 망할 명문 고등학교에서 그걸로 난 시험을 봤고 그 이론들은 전부 혐오스러웠어.’결국 대학교 활동을 하다가 다른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를 데리고 갔다. 친구는 공연이 시작하기전에 받은 팜플렛 중에서 연주자들이 찍힌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는 이 중에서 누가 제일 연주를 잘할 것 같아? 나는 한참 웃었다. 정치외교학도다운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친구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방금 들은 현악 사중주는 뭔가 교과서에서 들었던 거랑 똑같은 거 같지 않아? 뭔가 너무 모범적이야. 친구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공부한 것들 중 겨우 짜내서 대답했다. 그래도 네 번째 프로그램인 ‘아련한 기억 속의 속삭임’을 들으면 느낌이 조금 다를 거야.두 번째로, 공연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떠오른 한개의 심오한 질문이나, 인상 깊은 끝맺음은 있었지만, 기대했던 천상의 느낌은 없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계속해서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났다. 네로는 그 그림을 보면서 정말 행복했을까? 허탈하지는 않았을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늘 옆에서 뽀짝대던 토토로가 곁에서 사라졌고, 나는 불안해졌다.어떻게 리뷰를 써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토토로를 잃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연을 가지 마세요 여러분. 다 부질없는 것 같아,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네로는 부질없이 죽었어요.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연주자들이 잘했고 못했고는 공연을 처음 본 내가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결말이 좋지 못했다.설레던 첫 경험을 완벽하게 망친, 그리고 망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다비드 프레이는 피아노를 치다가가끔 이렇게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완벽하게 실패했다는 내 말에 친구는 어쩌다가 알게 된 한 지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아저씨가 러시아에서 유학할 때 이야기인데, 자신이 배우던 대학의 음대생들은 매주 무료로 대학교 내에 있는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날은 그 아저씨의 선배가 그 무대에 서게 되었고, 완벽하게 망쳤다고 했다. 아저씨도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고 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고, 빨리 술이나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선배에게 갔을 때, 한 할머니가 선배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선배에게 고맙다고, 정말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네로도 그러지 않았을까? 완벽하게 실패한 자신의 삶은 네로에게 중요하지 않았을 거야. 중요한 건 잘 보이지 않으니까.
동생이 물었다. 누나, 공연은 어땠어? 올 게 왔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해 클래식 관련 책들을 읽고, 다른 클래식도 들어 보고, 그 때의 기억들도 뒤적거렸다. 뒤적거리면 뒤적거릴수록 이상하게 그 경험은 특별해졌다. 서서히 소중한 경험이 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이어폰으로 듣는 것처럼 정말로 사람들이 진짜 악기들로 그 화음을 내더라.
[성채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