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식남녀: 휘황찬란한 중화요리와 예측 불가한 인간사 [영화]

식욕과 색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글 입력 2017.09.1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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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과 색욕은 인간의 본능이지.
본능은 피할 수 없어.
평생 동안 경험하는 거지."
 
- 주사부


<음식남녀>라는 제목은 중국의 고전 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 “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 (먹는 것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이 크게 원하는 일이고 죽는 것과 가난한 고통은 사람들이 크게 싫어하는 일이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가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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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요리만큼 화려한 음식이 있을까. 센 불과 기름을 주로 사용하며 화려한 장식을 뽐내는 중국요리는 먹는 맛뿐만 아니라 보는 맛까지 일품이다. 대만을 배경으로 ‘음식’이란 소재로 만든 영화라 하니 엄청난 요리들이 쏟아져 나오겠구나 하고 영화를 보기전부터 입맛이 다셔졌다.
 
그러나 이게 왠걸 내가 예상한 그런 음식영화가 아니었다. 음식영화도 맞지만 가족영화에 더 가까웠다. 감독 리안은 〈음식남녀〉의 주제를 “가족의무 대 자유의지의 충돌에 관한 것”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아버지 주사부는 가장의 의무를 다하고자 아내 없이 혼자서라도 열심히 세 딸들을 키웠지만 다 커버린 딸들은 은퇴한 아버지를 부양해야 할 의무와 자신의 사랑, 꿈을 찾아 출가하고자 하는 의지간의 갈등을 겪는다. 아시아권 특유의 유교문화가 이제 더 이상 젊은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보여주며 이는 영화 속에서 우리가 흔히 배워왔던 전통적 가족의 역할,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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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해 못하겠어. 알고 싶지도 않아.
다 컸으니 알아서 하겠지.
그건 요리와 같아.
요리가 다되면 식욕도 없어지는 거야.”
 
-주사부


여기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주사부의 태도이다. 대학생인 막내딸이 임신을 했다며 남자친구와 나가살겠다고 했을 때도, 9년간 연애한번 하지 않던 첫째 딸이 아버지인 본인 허락 없이 남자친구와 이미 결혼하고 왔다 했을 때도 그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전혀 놀라워하는 기색 없이 너무나도 쿨하게 처음 보는 청년들에게 두 딸을 보내주었다. 아버지 주사부는 기성세대이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태도는 우리들이 흔히 알던 기성세대들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본다면 더 잘 알겠지만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등을 돌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주사부에 버금가는 반전적인 캐릭터는 둘째 딸 가천이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가천은 개방적인 성관념을 가진 신여성으로 그동안 저금했던 돈을 모두 털어 신축아파트를 사며 세자매 중 가장 먼저 출가를 꿈꾼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곁에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도 그녀이다. 이제 더 이상 가족의무가 신세대들의 자유의지를 속박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 했다 하더라도 아직까진 그 책임감을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음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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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는 변해가는 시대 속에 과도기에 빠진 대만의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음식에 녹여 풀어내고 있으며 감독은 가족이라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음식이라는 매개체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주사부와 세 딸들은 일요일 마다 만찬을 가지는데 영화는 주사부가 일요만찬을 위해 요리하는 장면들로 시작한다. 큰 민물고기의 비늘을 손질하고 뼈를 발라내어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군침이 돈다. 이외에도 영화 곳곳에서 다양한 요리장면과 음식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음식의 보는 맛을 더 자극시키는 요소가 사운드다. 영화에서는 중화요리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 단면이 넓은 푸주칼로 재료를 턱턱 썰어내는 소리나 기름에 음식이 촤라락 튀겨지는 소리, 만두 빚는 소리, 심지어는 가볍게 두부의 단면을 슥슥 잘라내는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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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주사부의 음식을 색, 향, 맛을 모두 갖춘 음식이라 말한다. <음식남녀>는 그런 그의 음식을 똑 닮았다. 음식영화에 걸 맞는 섬세한 미장센들, 그를 뒷받침해주는 섬세한 사운드와 OST, 부족함 없는 스토리와 생각지도 못한 반전요소들까지 영화는 속이 꽉찬 만두처럼 알맹이가 튼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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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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