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늘은 바람이 좋아,살아야겠다!

글 입력 2017.08.1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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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말한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 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말이다. 성장 중심의 사회,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시와 사랑은 이제 철없는 몽상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 팍팍하고 힘겨울 때 이것을 견디게 하는 것은 튼튼한 내면이다. 살다 보면,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자신감도, 남들과 다르지 않게 그저 그렇게 살았다는 안도감도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허한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때 건조한 일상과 똑같은 풍경을 여행하는 듯한 설렘으로 환기시켜 주는 것은 사랑과 낭만이다. 이 내면을 살찌우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낭만과 사랑, 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시는 세상의 모든 사소한 것 하나 사랑과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글이다.

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직 나이가 많지 않지만 문득 죽음에 대해 생각 해 본 적이 있다. 내가 죽기 직전 지난날들을 떠올렸을 때 가장 잔상이 많이 남는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 1분 1초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뛰어다니고 정신없이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고 있는 이 시간이 뿌듯하다고 느껴지는 찰나에 문득 가슴에 공포감이 서려올 때가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보냈던 이 시간이 죽기 직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하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 시간보다 오히려 시 한 구절, 멍하니 버스 창밖을 봤을 때 보이던 햇살을 받는 나뭇잎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들이야 말로 인생을 찬란하게 해 주는 죽기 직전 떠올리고 싶은 기억들이다.

김상미 시인이 소개해 주는 시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인은 잉게보르크 바흐만이었다. ‘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시 구절 한마디마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한때 나는 나무였고 묶여 있었죠.
그 뒤 새가 되어 풀려 나왔고 자유로웠었지,
무덤 속에 갇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파열하며 튀어나와 더러운 알이 되었어요.
어떻게 나를 견딜까요? 나는 잊었어요
내가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나는 많은 생명들에게 넋을 앗기고 있지요
매서운 가시 하나와 도망가는 노루 한 마리.

오늘 나는 단풍나무 가지의 친구이며 
내일은 줄기로 옮겨가고......
언제 죄는 그 윤무를 시작했는지요?
내가 씨에서 씨로 헤엄쳐 다니는 그 윤무를.

후략



이 책을 읽으며 내면의 근육들이 생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서점에 가면 보이는 많은 자기계발서 혹은 심리학 책들보다 더 위로가 되는 것이 시다. 세상사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시인이다. 김상미 시인의 시선이 시 자체의 아름다움을 더 격상시켜 주었다. 일단 김상미 시인이 문학소녀 시절부터 많이 좋아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간다는 설정부터가 무척 순수하고 귀엽게(?)느껴졌다. 시를 사랑하는 한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고 소녀의 순박함이 남아 있다. 시인이 소개해 주는 이전 세대의 시인들의 삶과 그들의 시들도 무척 감동이었지만 무엇보다 그 시선 자체에서 감동을 받을 때가 많았다. 멀리서 보면 인간이 아파하고 행복해 하는 순간은 다 비슷비슷하다. 물론 내가 겪었던 일과 사랑은 모두 특별하지만 그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남의 인생을 주관화해서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남의 인생은 모두 보편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김상미 시인은 모든 인생을 주관화 시키는 힘을 갖고 있음이 느껴졌다. 모든 인생을 특별하고 아름답게 바라 볼 줄 아는 시인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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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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