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쇳소리 울리는 예술촌, 문래동을 거닐다 [문화 전반]

철공인과 예술가의 이색적인 동거, 문래 창작촌 출사 노트
글 입력 2017.07.1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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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소리 울리는 예술촌, 문래동을 거닐다
-철공인과 예술가의 이색적인 동거, 문래 창작촌 출사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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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동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작년 5월, 전공 수업의 일환으로 국내의 다양한 예술촌을 리서치했을 때였다. 이후 학과의 졸업전시가 두 차례 문래창작촌의 대안공간에서 개최되어, 내가 거주하는 성북구에서는 꽤 머나먼 영등포의 작은 마을을 자연스레 몇 번 들르게 되었다. 한 시간여 가량 지하철을 타고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여 도착한 문래창작촌은 매우 다크한 동네였다. 쨍한 쇳소리와 녹슨 간판이 즐비한, 무시무시한 자재를 실은 트럭의 경적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피해야 하는 골목. 그것이 문래동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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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동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대안공간 이포’의 옥상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면 주변의 크고 작은 건물들, 그리고 중간 중간 귀여운 색감이 돋보이는 그래피티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는 결정적으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평소 그래피티에 상당한 관심을 가져 온 나에게는 이태원, 홍대 뒷골목과 온천천 똥다리가 아닌 또 다른 장소에서 스트릿 아트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표지판 역할을 하는 귀여운 카페들 또한 좋았고.

    최근 나름대로 거금을 들여 카메라 렌즈를 바꾸고 몇 가지 보호 장비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았는데, 배송기간 며칠을 참지 못하고 바로 이튿날 문래동으로 출사를 나섰다. 마침 그날은 숨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푹푹 찌는 폭염주의보가 발동된 날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발길 닫는 대로 문래동의 냄새와 경관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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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문래 창작촌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문래동은 본래 일제강점기의 방적공장이 위치했던 이곳은 방적기계를 ‘물래’로 칭했던 것에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1990년대 이후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예술가와 철공소 인부들의 삶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는 문래동은, 특유의 분위기로 ‘감성’에 예민한 젊은이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지세가 높은 홍대와 대학로를 피해 하나둘씩 문래동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곳 철공소의 쇳소리는 기존의 작업장소에서 거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던 예술가들의 작업 소음을 묻어 주었고, 철의 동네 특유의 열정은 또 하나의 예술적 모티브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문래의 예술은 방물단, 본거지, 안테나 중심의 헬로우문래 협동조합 등의 단체가 뒷받침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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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죽빼죽 솟아 주변을 메운 강아지풀이 귀여웠던 소화전을 시작점 삼아, 본격적인 문래 탐방을 시작했다. ‘철강’ 예술촌임을 암시하는 랜드마크 양철로봇을 지나쳐 대안공간 이포에 도착했다. 이포의 깔끔한 간판과 낡은 건물은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가도 신기하게 언발란스한 매력을 뽐내며 잘 어우러진다. 반쯤 칠해진 개나리 색 옥상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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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없는 골목 구석구석을 용감하게 헤집고 다녔다. 낡은 잡동사니 하나에도 특유의 감각이 묻어있어 참 좋았다. 우체통의 푸른 색감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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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에는 감천문화마을이나 동피랑을 방문한 듯 따뜻한 감성의 일러스트와, 홍대 골목에 있을 법한 야생적인 그래피티가 다정하게 공존했다. 사실상 전자는 지자체의 인공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이고, 후자는 힙합이라는 하나의 장르 아래 형성된 그래피티 문화라, 각각의 벽화거리에서 접할 수 있는 시각적 요소가 다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다양한 예술가들이 생존을 위해 찾아온 장소인 문래의 벽화는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파스텔 톤의 사슴에서 원색의 레터링까지, 골라볼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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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공소를 비롯한 문래동 상권의 간판의 상당수는 지나가는 이의 눈길을 감각적으로 사로잡는다. 오랜 기간 지속된 예술가와 노동자의 동거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흔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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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간단한 문구로 신진 예술인을 소개하기도 한다. 사진 한 장 없이 글자만 떡하니 써놓은 모양이 신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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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동은 철공소가 문을 닫는 주말에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소문을 들었다. ‘문래 카페거리’가 아닌, 동네 자체의 바이브를 느끼고 싶었던 나는 주저 없이 철공소 작업이 한창인 평일 낮을 출사일로 선택했다. 당일의 찜통 같은 더위에도 철공소의 인부들은 열심히 용접, 땜질, 흡연수다 등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그들은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묵묵히 해 왔을 것이지. 이포의 얼룩덜룩한 건물에 깔끔한 간판을 내건 것처럼, 치열한 노동의 현장과 예술 공간은 아이러니한 조화를 이룬다.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것’을 예술이라 정의한다면, 오랜 시간 이곳을 생존의 터전으로 삼아온 인부들에게 느껴지는 진득한 삶의 흔적과 공간의 역사 또한 하나의 스트릿 아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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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땀에 흠뻑 젖은 티셔츠를 말리기 위해 카페 치포리에 발을 들였다. 사실 주변의 소규모 카페들의 인테리어가 내 취향에 훨씬 부합하긴 했지만 치포리의 수익금이 문래창작촌을 소개하는 매거진 < 문래동네 >의 기부금으로 쓰인다고 하기에 책자도 읽어볼 겸 치포리로 향했다. 내부 인테리어는 여느 동네 카페처럼 깔끔하고 차분했으며 다양한 종류의 도서가 구비되어 있었다. 나의 방문 목적이었던 매거진 문래동네는 문래동의 예술사업과 다양한 공간에 대한 정보와 동시에 몰입도 있는 글 몇 편을 담고 있었다. 카페의 건너편에는 문래동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마련되어 있어 자그마한 복합문화공간에 방문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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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커피는 내가 좋아하는 새콤한 향내를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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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시간에 맞추어 친구를 만나 문래를 대표하는 맛집인 양키스로 향했다. 슈프림 로고를 활용해 전체적인 매장 분위기를 붉게 설정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으나, 나와 친구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지 않아 문래의 임대료가 그리 높아지지 않았기 때문인지,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피자와 버거, 그리고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상호 명처럼 미국 냄새가 풀풀 나는 외관이 동네와 잘 어우러지기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 : 도심에 가까운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 및 주거지역이 새로 형성되면서 원래의 거주자들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게 되는 현상, 네이버 학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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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래동에서 보낸 한나절은 정말이지 더웠지만 재미있고, 맛있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유쾌한 시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철공소의 매캐한 공기도 마셔보고, 골목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차가운 철강지대 한복판을 비집고 들어온 따뜻한 흔적을 찾아보았다. 이는 내가 서울 근방의 다른 예술지대들이 아닌, 문래창작촌에 매력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요새 급부상하는 성수동만 하더라도 방직 산업의 메카였다 하여 지하철역 등에 관련 자료를 구비해 놓기는 했으나, 사실상 그것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카페들과 몇몇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지역 명세를 떨칠 뿐이다. 문래동에는 인스타그램에 한창 유행하는 카페가 즐비하지도, 메이저급 패션브랜드의 런칭파티가 열리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귀를 때리는 쇳소리 가운데 묵묵히 용접하는 인부들 사이사이 그림을 그려내고 기타를 치는 예술인, 그리고 공간과 어울리는 소박한 카페와 맥주가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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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강산업이 쇠퇴하여 그 빈자리를 예술인이 메우게 되었지만, 지역 본래의 성격을 잃지 않고 그것을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해 낸 것. 이는 공간을 꾸려 나가는 예술인과 거주민의 피땀 어린 자생의 결과이자, 그 어떤 동네와도 비교할 수 없는 문래의 뜨거운 혼이다. 이곳 문래동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동거를 유심히 지켜보도록 하자.


문래창작촌의 다양한 예술활동 정보는
블로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 사진 : 문화리뷰단 신예린


[신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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