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죄의식의 서사, 망가짐과 구원의 동일성, 그리고 비극. 영화 불한당 [영화]

설경구와 그의 쓰리피스에 반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절대로
글 입력 2017.07.18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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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주의!!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감정선이지만,
'드라이하게' 몇몇 대사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굉장히 드라이하므로 주의하시길.


먼저 영화 제목과 죄의식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불한당(不汗黨)을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땀을 흘리지 않는 인간, 즉 죄의식이 없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은 두 부류로 나뉜다. 지금 현재  땀을 흘리는 자와 땀을 흘리지 않는 자.


첫 번째 장면을 살펴보자.


고병갑(김희원) : 야 이 생선 이새끼들은, 요 봐봐, 죽어도 눈을 뜨고 죽어있잖아.
그러니까 나를 막 얘가 노려보는 것 같고, 막 뭐라고 하는 것 같고.

정승필(김성오) : 그럼 멸치는 어떻게 생각해? 우리 고상무님, 멸치는 드시잖아.

병갑 : 멸치는 괜찮아.

승필 : 멸치도 생선이야. 걔들도 눈깔이 다 있는데.


멸치는 괜찮고, 생선은 먹지 못하겠다.
= 멸치를 먹는 데에는 죄의식이 들지 않지만, 생선을 먹는 데에는 죄의식이 든다.
=> 인간의 죄의식은 자의적이며 상대적이다. 즉,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죄의식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참회를 느끼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죄의식'라는 단어의 의미를 미끄러트린다. 즉 단어의 이름붙임(존재) 자체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이 영화에 따르면 '죄의식'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상대적이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죄의식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정리하자면, 죄의식 자체의 이름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무엇을 느끼고 죄의식이라고 할 것인가?

이 때, 지금 현재  죄의식이 없는 자가 등장한다.


(위 인용문에서 이어지는 대사)
병갑 : 그래가지고 나는 작업할 때도 눈을 못보겠더라고. 
근데 재호(설경구) 이 새끼는 나랑 완전 정반대야. 작업할 때도 꼭 눈을 보고 쑤시고 찌르고 막 그런다니까...(중략)
이 새끼 죄의식이 없나 봐.


고병갑의 한재호(설경구)에 대한 캐릭터 제시 : 
내(고병갑)가 가지고 있는 죄의식이 한재호에게는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의식이 한재호에게는 없다.
즉, 한재호는 죄의식이 없는 자로 '지금 현재 인식된다'

첫 번째 장면에서 영화는 이렇게 '죄의식이 없는 것으로 지금 현재 인식되는 자(한재호)의 죄의식과 그 윤리'라는 주제를 어렴풋이 들이민다. 이후의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죄의식의 이름붙임, 즉 한재호는 정말로 죄의식이 없는 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


두 번째. 죄의식 논리.


천팀장(전혜진) : 잘못이 드러나기 전까진 아무도 잘못한 게 아니야
이런 개같은 일에는 당하는 놈이 잘못한 거고 그게 나쁜거야
어설픈 죄책감 같은 건 애초에 키우지 마.
안 그러면, 스스로 망가질 뿐이니까.


개같은 일 -> 죄책감(죄의식) -> 망가짐(당함), 개같은 일의 잘못이 드러남 -> 잘못한 것, 나쁜 것

개같은 일은 일어났다. 영화는 이 나쁜 놈들의 세상 속에서 그 개같은 일에 대한 죄책감을 가질 경우의 결과를 제시한다. 그리고 얄짤없이 끌고 간다.

그러나 이것이 서사인가? 이것은 그저 그림자에 불과하다. 아직 '죄의식으로 인한 망가짐'으로 인해 비명을 지르는 살갗의 감정이 주어지지 않았다.
즉, 아직 죄의식으로 인해 망가진 사람은 없는 상황이다. 
죄의식을 가지면 망가진다는 틀만 주어진 상황이다.

세 번째. 재호의 선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의 대응방식.

재호에게 있어 선은 절대적이지 않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재호 :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람은 믿지 마라. 상황을 믿어야지, 상황을.

- 현수 : 이렇게 사는 거, 안 지겨워요?
  재호 : 뭐가
  현수 : 그냥, 옆에서 보면 어쩔 때 참 답답하겠다 싶어서
  재호 : 이렇게 살려고 사는 게 아니야. 살려고 이렇게 사는 거지


재호는 무신론적 생각을 따른다. 그렇다고 그에게 삶의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즉, 자신 외에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을 쉽게 죽인다. 이는 지겨운 삶이다.
그 이야기의 결론에는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언제나.


재호 : 지겹다, 진짜. 현수야. 가지고 있는 약 다 팔아버리고, 싹 접어버릴까
현수 : 아니, 형한테 이렇게 잘 어울리는 일이 어딨어. 
뒷통수 치는 새끼 죽이고, 대드는 새끼 죽이고, 마음에 안드는 새끼 죽이고.
아 고상무는 살아있어요? 우리 엄마도 니가 죽였다면서.


한재호의 성격(대응방식) 은 늘 '필요하면 죽인다.'이다.
그렇게 조현수 어머니도 없앤 것이다. 

이와 같이, 한재호는 조현수에게도 총구를 들이댄다.


재호 : 내가 진짜, 뭐에 씌었나 보다. 처음부터 내가 너를 죽였어야 했어. 그게 맞아.
그냥, 끝까지 모르지 그랬어.


하지만 그는 이전처럼 쉽게 죽이지 못하고 후회 같은 것을 늘어놓는다. 지겨웠던 삶의 체계가 흔들린다.


현수 : 뭐야. 설마 미안해서 못쏘는 거야?


- 수 많은 감정선이 쌓이고 쌓여서, 자신도 모르는 새 죄의식의 이름표가 그에게 붙은 것이다. 즉, 그에게는 죄의식이 있다. 이는 인식받음의 층위를 벗어난다. 왜냐하면 이 죄의식은 자신을 스스로 죽일 정도로 생생하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천 팀장이 제시한 논리에 살이 붙여지고 피가 흐른다.
서사가 이루어진다.

영화 속 세상은 선과 악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한가롭고 고급스러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감정선은 구원을 향해 달려간다. 과거에 땀을 흘리지 않던 사람이 땀을 흘리는 곳으로.
그 곳이 선이냐고 묻는다면 어려운 문제가 될 것 같다. 
그 구원이 한 없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으므로.
그러나 서사라고는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선이 운명을 결정짓는, 셰익스피어 비극.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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