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멀어져가도 변하지 않을 마음을 담아서. [영화]

아직은 보낼 수 없는, 너무 사랑하는 아흔 세 살 우리 할머니의 자살 시도
글 입력 2017.06.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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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했다.”


 이 영화에 있어서 이보다 강력한 문장이 있을 수 있을까. 나(소현)를 키워준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계기로, 나는 할머니가 계시는 화순으로 내려가 그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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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할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지만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따스하다. “밥은 묵어쪄?” 묻는 할머니와 “잉, 먹었지.” 하는 손녀의 대화에서는 따뜻한 애정이 비친다. 할머니가 잡초를 캐는 모습, 낮잠을 주무시고, 약을 챙겨 드시고, “요놈 하나 묵어.”라며 나에게 카스테라를 내어주는 모습.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애정이 뚝뚝 흘러넘치고, 이를 담아내는 카메라 역시 그렇다. 마치 일기와도 같은 사적인 기록임에도 보는 이는 영화를 따라 울고 웃게 된다.
 
왜 죽으려고 했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성가신게.” 라고 답한다. 죽음은 할머니에게는 가깝고 손녀인 나에게는 가깝지 않아서, 할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모습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듯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하기에, 나(소현)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한 발짝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저 상처를 치료해드리고, 가족 몰래 영양제를 놔드리고, 할머니를 더 가깝게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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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정한 메시지를 위해 설계되거나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할머니와, 할머니에게 가까워지는 죽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적 성취나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나에게 가장 따뜻했고 다정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그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다. 아흔 셋,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하셨으나 나는 아직도 할머니와, 할머니와 함께하는 삶을 사랑한다. 그러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셔도 이 기록으로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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