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당신의", "레이디"가 아닙니다, 「마이 페어 레이디」 [시각예술]

피그말리온 설화 속 조각가의 시각이 아닌, 조각상의 시각으로.
글 입력 2017.05.3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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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드리 햅번의 톡톡 튀는 연기를 볼 수 있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 1964』는 “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고 재치있게 묘비명을 새긴 버나드 쇼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 이름은 '피그말리온'으로,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 조각가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피그말리온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사랑’은 원작 속에서는 중요한 소재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는 ‘피그말리온’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어쨌거나 원작이든, 그를 토대로 한 『마이 페어 레이디』든, 천한 신분으로 천박한 언어를 사용하는 소녀인 ‘일라이자 둘리틀’을 언어학자 ‘히긴스’ 박사가 6개월만에 그녀를 공작 부인 수준으로 그녀의 수준을 올린다고 호언장담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일라이자는 후반부의 사교 파티에서 왕족에게 찬사를 받을 정도로 어엿한 '숙녀'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낮은 계층의 여성이 높은 지위로 상승한다는 소재, 높은 신분의 사람이 가난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는 소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신데렐라 스토리는 우리나라에서 아주 잘 먹히는 소재인 듯 하다.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이 상류층의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던가, 아니면 외모가 뛰어나지 못했지만 어떠한 일을 계기로 살을 빼고 시술을 하거나 스타일을 변모시켜서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남자들이 시선을 돌린다는, 그런 비슷한 이야기들. 사실 그런 이야기를 싫어한다고는 차마 못하겠다. 남루했던 여자주인공의 외관이 화려하게 바뀔때만큼은 누구보다 희열을 느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는 천한 소녀에서 갑자기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오드리 햅번으로 변모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은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었다.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신데렐라 스토리도 아니라 하면 대체 무엇으로 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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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산업혁명이 발발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며, 제국주의가 팽배했던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자본의 힘이 강해지며 계급이라는 제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붕괴된 것은 아니고 유동성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상류층은 스스로를 하류층과 구분짓기 위해 ‘겉모습’에 매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자본이 더 이상 그들을 하류층과 구분짓는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화려한 옷은 물론이고 말투나 몸짓에서 '귀족적인' 것을 드러내려 애썼다. 영화 속 가장 기가 막한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경마장 씬인데, 말들이 달리고 베팅한 말을 응원하는 이 역동적인 공간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은 고고하게, 조용히 말들을 감상한다. 히긴스 박사도 이러한 맥락에서 하류층 소녀의 말투를 고쳐, 상류 사회로 접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오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에, 일라이자를 가르치는 장면에서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히긴스박사는 어쨌든 상류층의 허례허식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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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례허식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까진 좋다. 하지만 히긴스 박사는 딱 거기까지이다. 상류층의 중심에서 상류층을 경멸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잘못됐다고 지적하진 않는다. 히긴스 박사는 천박한 언어를 쓰는 하류층 또한 경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라이자가에게 교양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존재하지 않는 교양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어지는 히긴스 박사의 무자비한 발언들과 몰이해적인 태도가 참 불편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일라이자는 딱딱한 분위기의 승마장에서 유일하게 역동성을 보여주었고, 훌륭하게 사교 파티를 끝마쳤음에도 갑작스레 찾아온 신분 상승의 기회를 덜컥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바로 일라이자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시사점이 많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거지 소녀였을 때 자신을 무시했던 많은 사람들이, 예쁜 옷을 입고 말투를 바꾸니 역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일라이자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다. "계급의 차이가 대접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일라이자는 자신이 여태껏 무엇을 위해 노력해왔는지 혼란스러워 하고, 히긴스와 설전을 펼치며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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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싸움 끝에 일라이자가 히긴스 박사를 떠나지만, 후회하는 히긴스 박사 앞에 다시 일라이자가 모습을 드러내며 화해할 조짐을 보이며 끝난다. 둘이 결코 이어지지 않은 채로 끝맺음을 했던 원작자 버나드 쇼가 무덤을 박차고 나와도 할 말이 없는 엔딩인 것이다. "한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피그말리온'에 대해서 소개했는데, 그 소녀가 다시 악의 소굴(?)로 들어온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결말에 대한 아쉬움은, 당시 해피엔딩이 아니면 흥행할 수 없었던 분위기를 감안하고, 또한 무자비한 히긴스 박사가 후회하는 장면이 있다는 것으로 살짝만 달래주자. '피그말리온'이라는 원제든,  '마이 페어 레이디' ―의역하면 나의 아리따운 숙녀 정도?―든,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일라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히긴스를 비꼬려는 의도가 다분히 드러난다. 사회주의자였던 버나드 쇼는 이 희곡을 통해서 계급 간의 불평등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이념을 떠나서 생각해보아도, 스스로를 천한 계층이라고 생각했던 일라이자 자신이 히긴스와 마주앉아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똑같은 인간'임을 느끼는 모습을 이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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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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