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The Lobster

영화 더 랍스터, 책 에로스의 종말과 함께 보기
글 입력 2017.02.2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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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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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데이비드) 레이첼 와이즈(근시 여인) 레아 세이두(외톨이 집단 대장)
각본 에프티미스 필리포우
 
 
더 랍스터The Lobster2015년에 개봉한 후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나는 어째서인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지 한참이 지난 2017년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없이 영화나 한 편 볼까하고 보기 시작했지만, 첫 장면에 압도된 채 금방 영화에 몰입해 버렸다. 영화를 다 보고 떠오른 단어는 에로스의 종말이다. 에로스의 종말은 철학가 한병철의 책 제목이기도 한데, 우연히도 에로스의 종말을 읽던 차에 영화를 보게 되었고,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영화의 서사에 에로스의 종말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 에로스의 종말과 함께 보는 영화, 더 랍스터’, 혹은 그 반대쯤을 주제로 짧은 생각을 전개해보려 한다. (이어질 내용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단어들을 빌려왔다.)
*스포일러 포함*
 
 
1. 타자의 침식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짝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격리되어 한 호텔에 수용되고, 그 호텔에서도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할 경우 동물이 되어야 한다. 45일 안에 짝을 찾아야만 인간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느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짝을 찾을 때에도 주의하여할 것이 있는데, 바로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부 데이비드에게 호텔의 운영 지침을 설명하는 호텔 매니저의 대사를 가져오면 이렇다.
 
 
동일자의 지옥.png
 

공통점이 있는 동물을 선택해야 하죠. 늑대와 펭귄은 절대 함께 못 살죠.
낙타와 하마도 그렇고요.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말도 안 될 일인지.”
 
이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여겨지는 것은 호텔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철저하게 저 대사처럼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과만 짝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를 마저 보다보면 관계를 맺는 데에 이 규칙은 호텔 밖에서도 적용됨을 알 수 있다.) 표면적으로만 봐도 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모두 호텔에서 지급한 동일한 옷을 입는다. 코피가 자주 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다리를 저는 남자는 코를 찧어서라도 코피를 자주 흘리는 척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데이비드는 아무 것에도 감흥하지 않고 철저하게 냉정한 척 하려한다. 그는 심지어 냉정한 여자와 섹스를 할 때에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으려 하고, 소리를 내지 않은 척 한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과 공통된, 자신의 그림자에 불과한 대상을 찾으며 주체가 대상을 지배할 뿐인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타자를 침식시키고, 동시에 자신과 세계를 구분할 경계(타자 혹은 부정성)를 잊으며 흐릿한 자아 인식을 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타자는 존재하지 않고, 나의 그림자인 대상, 혹은 내가 그의 그림자가 되어야 할 대상만이 남는다. 호텔은 그렇게 완전히 동일자의 지옥이 된다.
 
 
2. 아토포스atopos
 
 
에로스는 강한 의미의 타자, 즉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한 것이다. 따라서 점점 더 동일자의 지옥을 닮아가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에로스적 경험도 있을 수 없다.”
 
_ 에로스의 종말 18p
 
에로스는 타자, 그러니까 나의 지배 영역에 포섭되지 않는 타자를 향해서만 생길 수 있다. 타자는 아토포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토포스는 장소가 없는, 무소無所적인을 의미한다. 즉 내가 갈망하는 타자, 나를 매혹시키는 타자는 장소가 없는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타자의 장소 없음’, 곧 타자가 타자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 지점에서 에로스를 시작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만 환상할 수 있고, 갖고 있지 않은 것만 욕망하는 본질적 성질에 대해 떠올리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에로스란 환상, 욕망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일자가 넘쳐나며, 공통된 조건의 사람과만 관계 맺길 요구하는 호텔에서 진정한 사랑, 에로스적 관계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요구사항이 된다. 진정으로 욕망하고 환상하는 것도, 주체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타자의 아토포스에 매혹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금 동일자의 지옥이며, 에로스의 종말이다.
 
그는 감정이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감추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데이비드는 위처럼 생각한 게 아닐까. 동일자의 지옥에서 에로스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3. 긍정성 과잉
 
 
데이비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처럼 (에로스보다는 그의 인간으로의 생존을 위해) 피도 눈물도 없는 척 하지만 거짓말은 곧 들통 난다. 그는 결국 자신의 거짓말을 고발하고자 하는 여자를 총으로 쏘고 호텔에서 탈출한다. 그가 호텔에서 나가 들어간 곳은 호텔과는 정반대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절대 관계 맺어선 안 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사회.
할 수 있다혹은 해야만 한다가 넘쳐 났던 곳에서 이번에는 할 수 없다혹은 해선 안 된다가 넘치는 사회로 데이비드는 옮겨졌다. 다시 말해 그는 혼자여야만 하는 곳, 사랑해선 안 된다고 부정하는 곳에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과연 혼자 사는 사람들, 외톨이들의 집단에서 데이비드는 부정성을 통해 타자를 욕망할 수 있을까. 그에게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집단은 과연 이전의 호텔과는 다른 곳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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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강한 부정성을 띤 듯 보이는 그 곳의 규율 또한 그 사회의 전반적인 제제조건이 됨으로써 사실 그 규율은 강압이고 결국 무조건적 긍정과 다를 바 없다. 이전의 사회에서의 구호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사회는 긍정성의 과잉이며 무조건적 명령-복종의 구조다. 무엇보다 본질적으로 데이비드의 관계를 맺기 위한 전제조건은 긍정성의 과잉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이곳에서 오히려 호텔에선 만나지 못했던 자신처럼 근시를 가진 여자를 알게 되고 마치 그것이 사랑의 전제조건이라는 듯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자신과 동일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녀를 주체 안에 받아들이며 또 다른 주체의 그림자를 생산해낸다.
이것은 데이비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뒤틀린 인식의 문제(혹은 에로스의 종말)일 것이고 이 영화는 그 뒤틀림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데이비드는 여전히 긍정성의 과잉 안으로 침몰하며 진정한 에로스를 실현하지 못한다.
 
 
4. 데이비드는 돌아올까
 
영화를 다 본 이들은 마지막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그 뒤에 어떤 장면이 이어질지, 무엇이 남아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그래서 데이비드가 돌아올지, 돌아오지 않을지. 검색창에 더 랍스터라고 적으면 연관 검색어에 더 랍스터 결론이 따라올 만큼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고 난해하다. 그 뒤를 감히 예측해보자.
데이비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결론.png
 
 
만약 이 영화가 생존 본능에 대해 서술하는 영화였다면 데이비드는 그의 눈을 찌르고 돌아오겠지만, 그는 뒤틀린 사랑과 에로스의 종말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그는 진정한 에로스가 상실된 사회에서 실험되는 인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의 눈을 찌를 만큼의 결심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는 결국 그 지점(눈을 찌르길 고민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눈을 찌름으로 실명한 여자와 동일자가 되지도, 그렇다고 자신과 다른 종류의 사람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데이비드는 에로스의 종말의 마침표를 찍는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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