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이 설 수 없는 무대 [공연예술]

단두대에는 올라갈 수 있었으나 무대에는 설 수 없었던 여성
글 입력 2016.12.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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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라토 '파리넬리'


  “모든 교회 공동체의 집회에서 여자들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성 바울로의 언급으로, 1688년 교황 클레멘스 9세는 ‘여성은 가수로 일할 목적으로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금지령을 발표한다. 따라서 당시 교회 성가대원은 모두 남자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변성기 이전의 사내아이의 고환을 거세시켜 맑은 고음으로 노래하게 한 ‘카스트라토’이다. 미성을 가지기 위해 변성기가 오기 전에 거세를 하는 남자 가수의 모습은 실로 잔혹하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답다. 이러한 카스트라토는 여성의 활동을 금지하면서도 남성에게 여성의 목소리를 권하는 ‘모순적인 관습’이다. 그러나 이 모순적인 관습이 서양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고전극에도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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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란방>의 여명(매란방 역), 단을 연기하는 남자 천재 경극배우 매란방을 연기했다.


  중국에는 경극이라는 고전극이, 일본에는 가부끼라는 고전극이 존재한다. 두 고전극 모두 각 나라마다의 문화를 잘 담고 있는 독특한 형식의 종합 예술이다. 필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경극과 가부끼에 대한 어원, 시초, 그리고 자세한 특징과 분장법보다 여성배우와 관련된 이야기다. 현재는 두 고전극 모두 여성들도 많이 무대에 오르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없었던 날들이 꽤 길었다.

  경극을 그리는 중국 영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만한 배우, 장국영 출연의 ‘패왕별희’다. 이 영화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경극의 여자 역은 남자배우가 맡아한다. 경극의 구성을 보면 ‘단’이라는 여성 역이 있는 데,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남자배우를, 즉 ‘여장 배우’를 사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은 경극을 관람할 수도 없었다. 청대 건륭 연간부터 여성의 극장 출입이 제한되어 왔기 때문이다. 1900년대에 들어서서야 150여 년만에 이 제한이 없어지게 된다. 이 이후 경극 자체에도 큰 변화가 생기는데, 여성들이 경극 관람을 즐기면서 원래 남성 관중 중심의 활극에서 단 역의 지위가 높아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공연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여성이 얼마나 경극에 대한 사랑을 제한 받아왔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야 여성 배우 채용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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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끼 배우 타치바나 다이고로


  가부끼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가부끼는 원래 여성 배우가 존재했었다는 점과 현재까지도 남성만이 무대에 선다는 점이다. 가부끼는 원래 여성과 남성이 모두 공연하는 고전극이었다. 가부끼는 근세 초기에 교토 지역의 무녀 이즈모노 오쿠니라는 배우가 처음 시작해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관능적이어서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여성가부끼’를 1629년 도쿠가와 막부에서 금지하면서 그 후 여성은 가부끼 무대에 오를 수 없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그 후 가부끼는 여성적으로 연기하는 남자 배우의 등장으로, 오히려 이쪽으로 고도로 양식화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남자 배우만이 가부끼 무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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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리화가> 포스터


  덧붙여 한국 얘기를 조금 해보겠다. 작년 11월 25일, ‘도리화가’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남성만이 소리를 할 수 있는 조선시대에 살던, 여성 소리꾼에 대한 얘기다.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끼만큼 조선의 판소리도 남성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판소리는 종합 예술이라고 보기엔 시각적인 차이가 컸다. 이를 보완한 우리나라 고전극이 바로 ‘창극’이다. 창극은 경극, 가부끼와 마찬가지로 연극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창극은 판소리는 물론, 경극과 가부끼와 달리 해방 이후에 오히려 여성이 주도하게 되어, 여성 단체가 난립하는 가운데 본래 가지고 있던 전통 판소리를 벗어나게 된다. 창극은 1902년이나 돼서야 최초의 창극이 나오니, 아마 여성 인권에 대한 관념이 생긴 이후에 시작되어 이렇게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비슷한 고전극임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다른 것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슬프다.

  같은 연기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여성 역을 연기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여성 인권이 유린되었던 시기에, 무대에서는 얼마나 더 잔혹하게 인권이 지켜지지 못했는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우리나라 영화 중 ‘왕의 남자’에서도 여성처럼 연기하는 광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는 전 세계적인 동태가 아니었나 싶다. 덧붙여 여성에 대한 권리가 가장 먼저 언급되었던 유럽의 유명 극단인 셰익스피어 극단만 해도 첫 여성 배우 채용이 1660년이 되어서야 등장했다고 하니, 무대 위에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낮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무대 위 성차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연극계, 혹은 영화계에 여성을 중심으로 한 작품은 매우 드물다. 여성 7명이 주인공인 ‘아름다운 사인’이라는 장진 감독 극이 있다. 장진 감독이 밝히길, 작품 창작 동기가 “과거 활동했던 연극동아리에 남자 배우가 부족해, 후배들이 올릴 수 있는 작품이 없다고 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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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씽> 포스터 


  최근 개봉한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의 배우 엄지원은 ‘충무로에 여배우들이 활약할 수 없는 영화가 적다는 문제’에 대한 인터뷰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자 영화 하고 싶다. 없으니까 못하는 거다.” 이렇듯 2016년, 연극계와 영화계 내에서는 여전히 성차별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연극계와 무대를 사랑하는 문화인으로서, 그리고 모든 성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의 인류로서, ‘여성이 설 수 없는 무대’의 존재가 몹시 안타깝고 두렵다. 다가오는 2017년에는 모든 성이 동등하게 설 수 있는 연극계와 영화계가 되기를 바란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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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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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근대 시대의 무대예술인들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천민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대관절 이게 여성차별로 이어집니까? 만물여혐설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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