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36.5℃의 포근함을 선사할 '드로잉'을 보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6.11.3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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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묘법은 선으로 물체를 그리되 강약, 억양, 굵거나 가는 여러 가지 성질의 선만으로 표현하는 묘법이다. 현대에 와서 그 의미를 해석하자면 ‘드로잉’과 일치한다. 드로잉은 주로 선에 의하여 어떤 이미지를 그려 내는 기술 또는 그런 작품을 칭하는 말이다. 색채보다는 선(線)적인 수단을 통하여 대상의 형태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백묘법을 이용한 일본의 회화를 뽑자면 대표적으로 나라시대의 <조모립녀병풍>과 헤이안시대의 에마키모노(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그림의 형식으로 가로방향에 긴 일본 화지이나 비단을 수평방향에 접속해서 장대한 화면을 만들고, 정경이나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표현한 것) 중 하나인 <조수인물희화>를 뽑을 수 있다. 나라시대의 <조모립녀병풍>은 <수하미인도>로도 알려져 있다. 나무 아래 다소곳하게 서있는 여성은 어딘가를 바라보는 것 같다. 채색 없이 오직 선으로만 그려져 있어 화려한 느낌은 다른 회화 작품들에 비해 덜하지만 비어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오히려 선이 그림과 잔잔한 조화를 이루는 듯하다. <조수인물희화>는 두루마리 회화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등장하는데 장면을 넘길 때마다 익살과 해학이 느껴진다. 백묘법이 사용함으로써 동물들의 모습이 더욱 만화처럼 다가오게 하였다. 채색을 제거한 백묘법 또는 드로잉은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비우게하여 편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작품에 특징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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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시대, <조모립녀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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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안시대, <조수인물희화>

 
  SBS문화재단이 예술분야를 후원하고자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수상제도인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은 한국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할 역량 있는 작가를 후원하고자 마련되었다. 드로잉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생뚱맞는 이야기를 꺼낸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나는 올해 그러니까 2016년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작가 중 한명인 김을(Kim Eull)에 대해 말하고 싶다.

  졸업생 선배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김을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마주하였을 때, ‘그림이 필요 없는 즐거운 세상’이라고 적인 드로잉 앞에 멈춰 한참을 생각하였다. 세상이 행복하지면 예술은 그 역할을 다 하는 것일까? 세상이 즐겁지 않기 때문에 그림이 필요한 것일까? 이 물음으로 인해 나는 김을 작가의 작품세계가 궁금해졌다. 또한 바다같은 전시장 한쪽 벽면을 작은 드로잉 작품들이 마치 고래처럼 감싼 광경을 보면서 ‘드로잉’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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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을 작가는 드로잉이 조형물 이상의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드로잉의 고향은 우주이고 지구는 드로잉의 한 점이며, 드로잉이란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결합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드로잉은 단순히 형식이 아니라 자유롭고 손쉽게 할 수 있으며 솔직하고 비정치적인 태도이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16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는 드로잉을 하며 겪은 내적 혹은 외적인 이야기들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작업실을 축소시켜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라모던아트뮤지엄에서 열린 <미스터 브레인워시>전에서 "예술가와 친해지고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방에 들어가보는 것이다."라는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생각에 따라 재현해 놓은 그의 작업실이 떠올랐다.) 이어서 김을 작가에 따르면 ‘예술가’와 ‘예술품’의 의미에 대하여 예술가는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술을 해야하고, 물질보다는 철학적, 윤리적 가치가 중요하다. 예술품은 예술이 지켜야 할 원형이며 예술은 인간생활의 균형이고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림이 필요 없는 즐거운 세상’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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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드로잉이라 하면 채색을 하기 전 미완성의 단계로 치부하기 마련이고, 그저 가볍게 그림 연습을 하듯 그리는 크로키의 정도로만 생각하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드로잉에 대한 확고한 생각, 예술의 가치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김을 작가가 드로잉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시를 보는 내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드로잉이란 어떻게 보면 가장 기초적인 것이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가치를 쉽게 잊고 사는 것일지도……. 대학로에 위치한 학림다방 드로잉 갤러리에서 나의 여정 속에 마주친 드로잉 작품들이 나에게 따뜻함을 선사하였듯이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한 재고는 힘든 일들 속에서 추워진 나의 몸을 36.5℃로 만들어주는 포근한 빛으로 비춰주곤 한다.


[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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