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마스떼 나마,스테

안녕히, 안녕히.
글 입력 2016.11.2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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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2 화 
아트홀마리카 2관 pm 7:30
<나마스떼 나마, 스테> 



# 00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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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를 뚫고 아트홀마리카에 도착했다. 저녁 7시 지하에 위치한 아트홀마리카에는 그 추위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대학로 특유의 활기가 추위를 앗아가는 듯했다. 티켓을 받고 입장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벤치에 앉아 극에 대해 떠올렸다. 

 "나마스떼"

 티비였나, 라디오였나.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 본 익숙한 단어였다. 항상 극을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어떤 기대를 잔뜩 하고 보는 것보다는 최대한 가볍게 들어가 큰 감동을 받고 오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나마스떼 나마,스테>를 봐야지, 라고 생각한 건 극의 시놉시스 때문이었다. 

 "살아가는 이유를 잃어버린 두 여자는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갈망한다."

 나 또한, 지금처럼 내일에 희망을 걸고 살아야지 생각하게 된 지 얼마 안 되었기에. 이 극이 어떤 식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해줄지 궁금했다. 한 편으로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를까, 기대를 덜어내기도 하며 극을 보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 01 하나의 무대, 두 사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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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 안으로 입장하자, 어쩐지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자취방일까. 침대와, 노트북. 컵라면, 전기포트, 그리고 뒤에 쌓인 쓰레기들. 낯선 장소에서 만난 익숙한 풍경에 긴장감이 풀렸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공연이 시작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공단비', 그 반대편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 여행자 차림의 '은해화' 

 <나마스떼 나마, 스테>는 내 생의 첫 '2인극' 이다. 가장 최소의 인원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 해나갈까. 하나의 무대에 '공단비'와 '은해화'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의 공간과 삶을 연기한다. 한 명은 방 안. 한 명은 공항. 그렇다고 그들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접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 02 죽을 용기가 없어 사는 사람 '공단비'

 공단비, 그녀는 자신을 스스로 방 안에 가둬버린 인물이었다. 방 안에서 먹고 자고, 모든 것을 해결한다. 마치 그 방이 자신의 모든 세상인 것처럼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림 원고로 수입을 얻는 그녀는 소재를 얻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온라인 속의 익명 채팅방을 전전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릴 예정이라는 사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결혼해 억압 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사람,  동반자살을 권하는 사람. 공단비는 그림의 소재가 될 자극적인 이야기가 필요했다. 같이 죽자는 닉네임 '시발인생'의 제의에 죽을 생각도 없으면서 어떤 식으로 죽을 것인지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한다. 공단비는 답장을 보며 그들을 비웃는다.

 "죽지도 못할 거면서 맨날 죽을 거래." "무슨 여기가 자살 카페야?"  

 공단비의 대답에 상대방은 진심이 아님을 눈치챈다. '시발인생'은 그녀에게 죽을 용기도 없는 비겁자 라고 비난한다. 순간 울컥, 자신의 내면을 들킨 것 같아 노트북을 닫아버린다. '공단비'의 삶은 지속되고 있으나 의미 없는 삶의 반복이었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자살. 공단비는 아버지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단지 덩그러니 남아버린 엄마와 가족들이 중요했다.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제쳐두고 방 안에 갇혀 그저 하루하루 돈을 벌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와의 전화통화에 거짓말을 한다. 내가 약을 먹기는, 아니야. 자신의 삶 속에 자신은 없다. 그저 살아있어서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공단비와 꾸준히 채팅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은해화'. 자살을 하기 위에 네팔로 간다는 그녀의 메세지에 공단비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 나도 여행 가고 싶다." 공단비는 자신이 원하는 소재와 답을 얻기 위해 그녀가 바라는 답을 거짓으로 해주었다. 그러는 와중, 티비에서 뉴스가 흘러나온다.

 "인근 야산에서 18살, 27살, ... 차 안에서 번개탄... "

 채팅을 했던 그들이었다. 죽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이토록 쉽게 죽음을 향해 몸을 내던진다. 공단비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어쩜 그렇게 무책임하게 죽을 수 있지?



# 03 살 의미가 없어 죽으려는 사람 '은해화'

 은해화, 딸의 죽음의 원인인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살 의미를 잃고 자살을 하기 위해 네팔로 떠난다. 마지막, 그녀는 죽음을 결심하며 난생처음 해외 여행을 떠났고, 자신을 위해 면세점에서 쇼핑을 했다. 딸이 죽은 후 5년. 끔찍하고, 지독하게 쫓아다니던 두통이 불면이 떠난다는 결심에 눈 녹듯이 사라지는 낯선 경험을 한다. 죽음을 결심한 뒤 오히려 편해지다니. 은해화는 네팔로 떠나며 딸아이가 남겨둔 '드림캐처'를 들고 카트만두에 도착한다. 

 낯선 땅,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길. 이러다 땅바닥만 보다 끝나는 게 아닐까. 순간 광고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을 때 15초만 제자리에 멈춰보아라,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다." 눈을 감고 15초를 세아린다. 하지만 여전히 은해화의 앞에 길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앉아 낯선 풍경을 보며 자신에겐 이런 것도 사치라며 웃는다. 이 낯선 땅에서는 모든 물체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서로 만나면 양 손을 기도하듯 모아 인사한다.

 "나마스떼" 당신의 신을 존중합니다. 

 사람마다 자신의 안에 품고 있는 그 신을 존중해준다. 그녀는 그곳에서 죽음과 삶의 혼재를 목격한다. 죽은 사람의 팔목에 금팔찌를 둘러주고 입에 뜨거운 불덩이를 넣는다. 타들어가는 시체는 강가로 흘러가고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그 시체에서 빠져나온 금 팔찌를 건져낸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그 죽음을 토대로 살아간다. 죽은 자는 누구인가? 은해화는 혼란스러움에 빠진다. 대체 사는 게, 죽는 게. 하지만 그녀의 결심은 바뀌지 않는다. 딸의 죽음은 자신의 잘못이었고, 살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 연락이라는 말과 함께 공단비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 04 서로를 이해하다.

 공단비는 살아가는 자신 주변에 휘몰아치는 죽음에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채팅으로 만난 낯선 이가 죽고, 자신은 여전히 살아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항상 '은해화'의 죽음에 대한 결심에 감정 없는 응원을 보내던 공단비는 그녀를 비난한다.

 "죽어서 도망가려는 거잖아요?" "비겁하게" "남은 가족들은 생각 안 해요?"

그 말에 은해화는 울컥, 울분을 토한다.

 "단 한 번이라도,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있어?"
"아직도 딸 아이 사고가 떠올라 (중략)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숨을 쉴 수가 없어." "남편은 5년이나 지났는데 이제 잊어야지, 딸 아이를 그렇게 쉽게 잊을 수가 있어?"
 "나에게 위로하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위로하면서, 눈은 신나 죽겠다 말하고 있었어."

단비는 뒤늦게 자살한 아빠의 입장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제야 느껴지는 아빠의 외로움들, 왜 그때 한 마디를 하지 못했을까. 그 후로 제 삶이 멈춰버린 것도 어쩌면. 

 "죽을 용기가 없어서 그냥 사는 너나, 살 의미가 없어서 죽으려는 나나 똑같아!"

 삶과 죽음.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내일 죽는 그런, 시간 속에 둘은 깨달음을 얻는다. 공단비가 말리지만, 결국 은해화는 줄에 목을 매단다. 

 "당신에게 내 신을 보낼게요. 당신을 위해 내가 기도할게요, 이런 나를 위해서 살아주면 안되는 거예요?"

 기적처럼 네팔에 강진이 일어나, 은해화는 살아남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신과 죽은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귀국을 한다. 그리고 여지껏 곁에 있음에도 자신의 슬픔과 아픔에 갇혀 잊고 있던 남편에게 연락을 한다. 공단비 역시 자신을 가둬 둔 그 방에서 나와 네팔로 여행을 떠난다. 
 

 각자의 삶 그리고 

 나마스떼
 나마, 스테



# 05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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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白


 극  초반에는, 공단비 라는 인물의 털털함이나 웃음 요소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 후반부터 죽으려는 사람과 그걸 비난하고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두 인물의 대화에 마음 속 억지로 무시했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눈물과 함께 흐르고 있었다. 나의 과거 삶은 은해화와 비슷한 점이 있다. 부모님의 이혼, 가정폭력, 내가 아닌 주변의 '장녀인 네가 잘 해야지' 말에 나의 삶에 나보다 타인이 많았던 때. 자살시도를 하기도 했던 그 때의. 너무 힘들어서, 교수님을 찾아갔지만 그 분이 해주신 말은 아직까지도 상처로 남아있다.

 "세상엔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 이야기를 듣고 내 입장에서 단 한 번만 이라도 생각했더라면 나오지 못 할 말. 죽음을 택하는 일에 대한 비난은 요즘에도 비슷하다. 남은 사람, 민폐, 비겁자, 도망자. 그 때는 그 말들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당장 내일의 불확실한 희망보다 그 원인인 '내' 자신이 사라지면 끝날 거라고. 다행히 내 곁에 내 입장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어 죽음보다 내일의 희망에 기대를 걸고 지금에 이르렀다. 

 삶과 죽음은 밀접하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으며, 살아가는 환경과 경험은 100명이면 100가지의 삶이 있다. 극을 보며 어느 한쪽에 편중되어 무엇이 잘못되었고 그른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정말로, 삶과 죽음을 각각 택한 공단비와 은해화 두 사람의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눈으로만 타인을 봐서는 안된다는 걸 다시 상기 시켜주었다. 꼭 필자처럼 이런 경험이 없더라도, 이 극을 본 후에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할 여지를 준다. 이야기의 전개도, 하나의 공간으로 두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표현한 두 배우 분의 연기력 덕분에 극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나마스떼. 안녕히. 


[김세옥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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