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베르 카뮈, 이방인 실존주의(1) [문학]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통한 실존주의
글 입력 2016.11.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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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짐을 느낀다. 권력자들의 권위를 이용한 부조리함을 보며 분노, 잘못에 대해 숨기며 거듭되는 변명에 배신감과 한 공동체의 근간이 무너져 버림에 허탈함 그리고 어느새 인가 정의라는 가치가 낯설게 느껴지며 많은 노력이 수반 되어야만 얻을 수 있게 되어버린 상황 대한 회의감 등 사회의 여러 이야기들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특히 권력과 결부되어 있는 집단만이 영위할 수 있는 그들의 메커니즘 속에서 우리가 조작되어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그들의 관점에서 수단으로 전락된 느낌과 괴리감이 밀려온다. 또한 대다수의 방법과 가치를 안고 살아가는 삶이 올바른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며 허탈감과 허무함이 느껴진다. 자연히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가라앉게 되며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된다.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인간의 존재, 실존에 대해서 담고 있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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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이방인


알베르 카뮈는 1913년 11월 7일 프랑스의 실존주의 문학가로 이방인, 시지프 신화, 칼리굴라, 페스트의 작품을 출간했고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1,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정신적인 공허를 느끼게 되고 소설을 통해서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한 작품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책,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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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는 문학사에서 실존주의로 분류가 된다. 실존주의에 대해서 소개를 하자면 20세기 전반의 합리주의와 실증주의 사상에 반동으로 독일과 프랑스에 주축으로 일어난 철학 사상이다. 어떤 사물이나 인간의 존재, 본성에 대해서 고찰하는 사상으로 인간 실존에 있어서 인간은 어떤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본성에 의해서 스스로 존재 방식을 선택해 나아간다는 사상이다.



1부와 2부


작품의 구성은 1부와 2부로서 딱 구분이 되어있다. 1부와 2부를 구분하는 주인공 뮈르소의 관점에서 바라본 외부세계에 중심을 둔 1부과 내부에 조금 더 무게를 둔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의 시작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모르겠다.”로 시작을 한다. 양로원에 있는 뮈르소의 어머니가 죽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뮈르소는 양로원으로 찾아가게 된다. 누구나 당연히 여기듯이, 더 구체적으로는 모자간의 긴 시간 속에 쌓인 사랑과 정의 무게에 짓눌려 슬픔을 토해내는 어머니를 잃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뮈르소는 슬퍼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슬픔이라는 감정에 휩싸이지 않았기에 표출하지 않는다. 그저 장례의 진행에 몸을 내버려 둔 후에 다시 생활의 자리로 돌아온다. 삶 속으로 돌아와 마리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역시 관계의 선언은 마리가 한 것이고 뮈르소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상태이다. 그가 살고 있는 이웃집의 레몽을 알게 되고 레몽이 자신의 정부가 바람을 피며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것에 대해서 복수를 하는 일에 도움을 청한다. 뮈르소는 승낙하고 레몽의 친구가 초청하는 바닷가에 마리, 레몽과 함께 떠난다. 그곳에서 레몽의 복수와 관련된 아랍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물리적인 위협에 위험을 느낀 뮈르소는 총을 쏘게 되고 살인을 하게 된다. 아랍인을 살해 혐의를 받게 된 뮈르소로써 2부가 시작된다.

2부에서는 구치소와 재판장을 거듭하며 그에게 취조를 하고 심문을 한다. 뮈르소는 이런 과정 속에서 공정히 자신의 죄의 유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관 없는 것까지 결부시키며 타락한 인간으로서 후회나 참회의 모습을 보이도록 압박하는 구조에 불편함과 이에 대해 자신을 적극 옹호하는 하지 않는다. 상황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최선의 행동을 하지 않고 그저 그 순간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없이 털어 놓는다. 결국 뮈르소는 사형에 청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삶의 유한성이 확정되고 난 뒤의 평소의 그의 모습과 달리 분노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차오르지만 금방 수습한다. 뮈르소는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게 되며 무관심하게 느껴지는 하늘에 정겨움을 체감하며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들을 곱씹으며 이전과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행복함을 느끼며 소설을 끝이 난다.



이방인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뮈르소는 정적인 인물이다. 충분히 주변 환경이 그의 감정의 싸이클을 뒤엎어 놓을 만도 하지만 그는 사회적인 관계, 인간관계 속에서 감정이나 생각이 지배되는 인물이 아닌 그저 자신을 초점으로 판단하며 말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관심이 없는 일에는 말을 아끼며 굳이 바라보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마치 타인의 삶을 의무감 없이 살아주는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뮈르소라는 인물을 설정한 작가 알베르 카뮈는 삶의 사소한 이벤트 하나까지도 익숙해지지 않게 거리감을 두며 하나하나 판단하며 온전히 자신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연속이 삶이라는 실존주의적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뮈르소가 죽음을 앞두고 격력하게 실존에 대해서 되짚어보며 파생되는 깨달음의 에너지를 통해서 상황에 억압되어 스스로를 거짓의 음영에 가둬 두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놓여진 진실이라는 가치를 실천해 가는 삶이 우리가 취해야하는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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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이지만 내면의 요동치는 에너지를 머금은 뮈르소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베르 카뮈는 기존의 가치관과 관습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어 아무런 의문없는 삶의 농축물인 권태를 발판 삼아 이에 벗어나 끈임없이 묻고 고민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제시해준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우리의 삶에 무관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흘러가는 데로 인정해버리고 넘긴 여러 가치들, 일들이 그랬던 순간들이 이렇게 우리를 혼란 속에 빠뜨리게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해관계나 나태함에 거리를 두고 하나하나 짚어보며 다시금 알아가며 변해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처럼 말이다. 우리 스스로 각자의 삶에 이방인이 되어 하나하나 고민하고 깨어 있다면 우리 사회 역시 기존의 규정되어 있던 악습을 털어낼 수 있으며 매순간 스스로의 존재 방식을 세워 나간다면 부조리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허탈함을 떨쳐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겨울로 향해가고 있는 가을에 삶의 많은 의문부호가 달린다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어 보자.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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