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경하다 : 감성 일본 여행 에세이 (2)
글 입력 2016.05.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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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을 내딛다
우여곡절끝에 휴대폰 충전을 하면서 잘 수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새벽 3시까지명당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뒤에서 자리가 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뜨자마자 재빨리 그 자치를 차지했고,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했다.역시 습관은 무서웠다. 새벽 5시 30분. 알람이 울리자마자나는 재빨리 알람을 꺼버리고 그새 자리가 난 다른 소파 자리에 누워 30분이나 더 잠을 잤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이미 내 주변에 있던 다른 관광객들은자리를 떠난지 오래였다.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지하철 표를 끊는 곳으로 걸어갔다. 하네다 국제 공항에서 시부야역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개가 있었으나, 내가생각해둔 방법은 모노레일과 게이큐선을 이용하는 방법 두 가지 뿐이었다. 전 편에서도 말했듯이, 대충 계획 아닌 계획을 해갔던 나는 표 끊는 곳 앞에 서서 느긋하게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검색끝에 나는 조금 더 저렴한 게이큐선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아까 전 로손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고 남은 거스름돈과 게이큐선 이용 요금이 거의 일치해서 걸리적거리는동전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일본은 화폐보다는 동전이 더 많이 쓰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동전이 나를 거쳐가게 될지 꿈에도 몰랐었다.플랫폼에 내려온 나는, 서울에서지하철을 타던 그 버릇 그대로, 열차의 행선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가장 먼저 오는 열차에 올라탔다. 곧이어 열차의 문이 닫히고, 열차에서는 나리타행 쾌속열차라는 식의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쩐지, 나말고 아무도 타지 않더니만. 하마터면 여행 시작부터 망칠뻔했다. 나는 재빠르게 다음역인 덴쿠바시역에내려 시나가와행 열차로 바꿔탔다.시나가와역에서 JR 야마노테선으로갈아타러 가는 길 부터는 정말! 정말. 그러니까 정말로 내가일본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맥주광고.정신없이 분주한 회사원들. 귀여운 교복을 입고 일본 드라마에서만 보던 네모난 가방을 옆으로멘 학생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일본어 안내 방송. 진짜일본이었다.쉬어가는 시부야
시부야역에 내리니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남성 성우의 안내방송이흘러나왔다. ‘시부야- 시부야-‘.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그 목소리의 안내방송을 뒤로 하고 나는 하치코 출구로 빠져나와 줄곧 사진으로만 봐왔던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앞에 섰다.생각보다 작은 교차로였다. 사진에속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가장 잘 알면서도 실제로 마주했을 때 느꼈던 시시함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우리나라의공덕오거리를 생각하고 간 나는, 작은 실소를 터트리며 바로 마주보이는 스타벅스를 향해 걸어갔다.‘공항에서 노숙 후바로 시부야로 가서, 스타벅스 창가자리에 앉아 스크램블 교차로를 맘껏 구경하기.’ 나의 일본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를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데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하지만 현실이든 꿈이든 어쨌든 3일뒤면 사라질 일이라는 생각에 괜시리 우울해졌다. 나는 쓸데 없는 걱정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렇게 행복한 여행의시작에서도 이 행복이 언제 끝날까-하는 의미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가만히 앉아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피곤해졌다.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온 시간은 오전 7시정도. 그리고 다음 목적지는 오모테산도. 그곳의 매장은 대부분 9~11시 사이에 문을 열지. 그렇다면 나에게 조금의 여유가 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져 잠을 청했고, 낯선곳이니뭐니 안중에도 없던 나는 엎어지자 마자 그대로 20분동안 꿈속에서 잠들어 또 다른 꿈속을 다녀왔다.감각적인 오모테산도
시부야역 코인락커에 짐을 맡겼다. 동전을 넣고 열쇠를 돌리자마자 캐리어 속에 고이 놔두었던 우산이 떠올랐다. 분명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렴 뭐 어때, 길가다비가 오면 그 때 생각하자. 대책없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7개의노선이 다니는 시부야역은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오모테산도를 가기 위해 간자선 플랫폼을 찾았다. 그곳은 도쿄 시내 주요 노선인 JR 야마노테선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종착지였기 때문에 다행히 열차에 탑승할 수는 있었지만, 열리는 문의 반대편 문쪽에 거의 밀착해서 눌려있던 나는, 바로 다음역인오모테산도에서 내리지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오모테산도역에정차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40% 정도가 열차에서 내렸다.눈 앞에 펼쳐진 오모테산도는 사진으로 봤던 것처럼 깨끗하고 세련되고초록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적지인 브런치 레스토랑으로 향하면서 내 눈은 더 많은 것을 담기 위해이리저리 굴러다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은 쉴 새 없이 까딱거렸다.15분정도 길거리를걷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와이풍의 브런치 레스토랑. 아침을 떼우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대개 문을 닫은 명품거리와는 달리, 이 레스토랑은 아침 9시부터 굉장히 시끌벅적했다. 가게는 이미 30%정도 차있는 상태였다. 하와이풍으로 차려입고 머리에 꽃을 달거나 꽃 목걸이를 한 직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개 구릿빛 피부를 갖고 있었는데, 이 매장에 어울리기 위해 일부러 태운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까무잡잡한 사람들만 채용한 것인지 궁금했다. 이 아침에 여자 혼자 식사를 하러 온 것도 신기한데, 또 그 여자가 턱을 괸 채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상당히 신기했던 모양인가보다. 매장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따금씩 나를 향해 곁눈질을 했다. 신기하라지 뭐. 나는 잘 먹고 잘 여행할테니까. 잠시 뒤 나온 브런치 메뉴를 10분만에 다 해치운 나는 상냥한 미소로 인사하는 직원에게 같은 미소로 대답한 후 가게를 빠져나왔다. 캣스트리트는 사실 하라주쿠가 아니라 오모테산도에 있다고 해야할 것 같았다. 사실 명동에서 종로가 이어지고 또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그런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나는 한산한 거리를 걸으며 막 문을 열고있는 다양한 가게들을 구경했다. 거리에는 교복을 입고있는 학생이 유독 많았는데, 그들은 과제를 수행중이었는지, 저마다 손에 스케치북 비슷한 노트를 들고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그들을 카메라 앵글에 잡고 찍기 시작했다. 딱히 인물사진을 찍고자 했던건 아니었는데, 찍다보니 재미있었다. 다른 땅에 살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을 포착하는 것이 즐거웠다. 60억 인구중에서 이렇게 몇 초 정도라도 마주쳤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내가 5분만 더 늦게 왔었더라면 아예 마주치지도 못했을 그들을 사진속에 담는 그 시간이 행복했다.오랜만에 피곤한 생각을 비우고 제대로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용한 숲속 오두막집에서 쉬거나 고요한 호수 앞 잔디밭에 누워 쉬는 것만이 휴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휴식은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나에게는 지금 이 모든 순간이 휴식이었고 힐링이었다.하라주쿠 걸
하라주쿠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이대 앞 거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하라주쿠. 일본에서 옷을 사입을 심산으로, 잠옷과 입고온 옷 외에는 챙겨오지 않았던 나는 이 하라주쿠 거리를 걸으며 조금 충격을 먹었다. 정말 살만한 옷이 한벌도 없었다. 유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득 '일본이 우리나라의 10년후 유행을 앞서간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아니야 여기는 하라주쿠니까 그럴꺼야. 간신히 마음을 추스리고 옷을 사는 것은 포기한 채, 또다시 사람구경을 하기 시작했다.여중생으로 보이는 학생 무리들은 무엇이 그렇게 신기하고 예쁜지 계속해서 '카와이~'를 외쳐대며 아기자기한 물품들을 둘러싸고 모여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남성들은 하나같이 일본스러운 헤어스타일에 독특한 패션으로 눈길을 끌고 있었고, 젊은 여성들은 밝은 탈색 머리에 예쁜 공주풍 드레스 차림을 하고 귀족가문의 막내딸 마냥 양산을 쓰고 거리를 활보했다. 미국 가수 그웬 스테파니는 하라주쿠를 방문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하라주쿠 걸'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어릴적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하라주쿠라는 곳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하라주쿠에 서있다. 정말로 특별한 일본문화를 체험하는 것 같았다.유명한 파르페집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먹을까 말까? 이미 내 배는 아까 먹은 브런치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그만두기로했다. 파르페가 뭐 다 똑같은 파르페겠지. 내가 상상하는 그 맛일거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진속에 파르페 가게만 담아둔 뒤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던 다이소매장. 아기자기한 악세서리를 팔던 가게. 신기한 신발을 팔던 편집숍. 특이한 속옷과 수영복을 팔던 가게. 별별 가게를 지나다보니 나는 <다케시타 거리>의 시작점에 다다랐다. 오모테산도부터 걸어왔기 때문에 나는 이 거리를 거꾸로 활보하기 시작했었는데, 정신없이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이 거리를 다 둘러본 것이다. 거리의 시작점에서 끝을 내니 뭔가 색달랐다. 나는 뒤를 돌아 다케시타도리를 알리는 작은 게이트를 카메라에 담았다.길거리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1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계획보다 시간을 알차게 잘 사용했다. 3시까지 시부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하고있던 나에게 갑자기 많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메이지 신궁>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였다. 내 발은 그렇게 무작정 계획에도 없던 메이지신궁으로 향하고 있었다.(3)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수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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