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가모가와 (鴨川)
가모가와鴨川 (오리강) 이름에 걸맞게 거기엔 오리들이 노닌다.
글 입력 2015.08.2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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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가와 (鴨川)교토의 좁은 내 방을 나서면 곧 강이 나온다.가모가와다3월에 와서 내가 제일 많이 걷고 의지하는 자연이다.평시 교토에 며칠 와서는 한번을 들리지 않았던 곳이다백만을 조금 넘는 이 조용한 도시에 일년 찾는 관광객이 7천만이 가깝다니 그만큼 세계 으뜸 관광 도시로, 보아야 할 곳이 많아 가모가와까지 볼 시간은 없어서 차로 다리를 건너며 흘깃 내다보는 정도였기 때문이다그런데 학기 시작 전에 와서 대학까지 걷는 거리를 구한 집 바로 옆이 그 강이다.가모가와는 유명한 문인들 작품 속에도 나온다. 동지사 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정지용 시인의 시비에도 그의 대표시 중 하나 '가모가와 十里ㅅ벌'이 한일 두 언어로 새겨져 있다.31키로의 길이로 열 몇개의 다리가 보이고 그 강을 따라 도심 한복판을 죽 내려가는 대로大路 이름이 일본에 첫 노벨 문학상을 안겨다 준 가와바다 야스나리 이름을 딴 가와바다 도오리通다.강이라고 해야 한강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시냇물처럼 보이는 아담한 폭으로 좁은 곳은 청계천만하고 좀 넓어지면 한 두세배가 될까. 이쪽 켠은 가모가와, 저쪽 켠은 다카노 강으로 불리우는 두 물이 내 집 있는 쪽에서 하나로 합쳐져 길게 내려간다그 강이 시내를 흐르는데도 강둑과 들풀과 돌멩이들이 마치 시골 풍경처럼 펼쳐지는데 내가 첨 도착해선 양켠에 수 키로 늘어 선 굵은 사쿠라들에 꽃망울이 맺혀 있었고 곧 활짝 피어나 추운 나라에서 온 나를 따뜻한 빛으로 맞아 주었었다.그 분홍잎이 지고는 노오란 유자꽃이 물가에 무리져 피어났었고 연이어 보라빛 클로버 꽃무리가 그리고 지금은 연한 빛 키큰 들풀과 하얀 치자꽃이 아름답게 무리져 있다듣기론 천년 전에 시작된 세계 최초 토목 공사라고 한다.두 강이 합쳐지는 곳이 아주 자연스럽게 단장되어 있고 적당한 거리마다 1미터 높이로 물이 시원하게 떨어져 내려 그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한다멀리 눈을 들면 동양화에 나오는 여러 겹의 산들이 연하게 보인다천년이란 소리만 들으면 660년 전쟁에 멸해 죽음을 피하려 이리로 왔다는 백제인들이 만든 거로구만 하는 생각이 즉각 들지만 그 자랑도 이젠 수구러졌다.천년너머 유지 관리 발전시켜온 공이 더 크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그 강을 거의 매일 걷고 있는 것이다매일 필운동 골목길과 집 바로 뒤 배화여고 교정, 사직공원과 경복궁 담을 걸었었다걸음을 조금 넓히면 청계천도 걸어 갔다.300년 너머 된 한옥이 바라보기엔 좋으나 춥고 불편하여 세계 첨단의 신감각 아버지는 이제 그만 편한 양옥으로 가자고 했고, 어머니는 시를 짓고 사랑의 추억이 많은 그 집을 차마 떠나지 못했었다. 다들 강남으로 가 집값이 폭락하고 시인의 한옥이 행길로 그렇게 뚝 잘려 나갔어도 어머니는 가신 아버지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그 곳을 수 십년 지켰고 그 지킴을 내가 물려 받은 것이다.누구 소유라기 보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혼과 정신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생각되었다.물이 새고 어디가 터지고 어느 거 하나라도 손보지 않는 날이 없었고 유지 관리 보수 세금의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는 한 밤 배화여고 운동장을 혼자 걸었다이런 효녀가 없다고 하는 이도 어쩌다 있다청개구리가 엄마 개구리 말을 안듣다 그 엄마가 가시며 반대로 해야 저 놈이 제대로 하겠구나 싶어 엄마 시신을 시내물가에 묻으라고 유언을 했더니 엄마 가시고 정신이 난 아들 개구리가 첨으로 그 말 곧이곧대로 시내에 묻고는 떠내려 갈까봐 그 옆을 지키며 개골개골 한다는 생각도 났다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리고 좀 쉬어도 본다는 게 느닷없이 동지사 대학 많은 양의 공부에 걸려 종일 긍긍대다 후유~ 한 밤의 가모가와 긴 강둑을 걷는다.물을 마셔야 살기에 지구 어느 도시든 강을 끼고 시작되었겠지만 우리의 마음을 쓰다듬고 영혼을 적시기에 물만한 자연도 없다.가모가와鴨川 (오리강) 이름에 걸맞게 거기엔 오리들이 노닌다.어느 나라 어느 물에서나 오리는 꼭 쌍으로 다니는게 신기하다.그런가하면 내가 걷기 시작하는 얕은 물가에 잘 생긴 하얀 두루미 하나가 홀로 서 있고 한 3백미터 다시 걸으면 또 하나가 거기에 우아하게 서 있어 혹시 쌍인데 서로 떨어져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어떻게 알려 줄 방법은 없을까 볼 제마다 애가 탄다.데이트 상대가 생기면 '교토에서 함께하고 싶은 곳' 1위가 가모가와라는 말도 들었다.후에 이 곳을 떠나게 되면 많이 그리워질 풍경이다
이승신시인, 에세이스트, 손호연단가연구소 이사장이대영문과 와싱톤 죠지타운 뉴욕 시라큐스 대학원, 교토 동지사대 재학중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제일기획 제작고문저서 -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삶에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그대의 마음있어 꽃은 피고 外[박형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