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실과 상상 그 경계에서, 소설 '호출' [문학]

영상으로 매체변환을 시켜보고 싶은 문학 작품
글 입력 2015.08.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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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매체변환을 시켜보고 싶은 문학 작품이 있다면 
바로 〈호출〉 이다. 마치 한편의 단편영화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 <호출>을 소개한다.





1. 줄거리



     1) 호출하는 자
삐삐를 건넨 ‘나’는 누구일까?
   주인공 ‘나’는 그녀에게 언제 호출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또한 그는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했기에 몹시 두근거린다. 그는 이제까지 첫눈에 반한 여성에게 삐삐를 건네는 것과 같은 과감한 행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표현에 의하면, “늘,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돌아서버리고 말았을 뿐”이다. ‘나’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 ‘수지’를 떠올린다. 수지는 그에게 이별 통보와 함께 결혼 통보를 했다. 수지에겐 작가라는 이름하에 직장도 없이 글을 쓴다는 자신이 한심해 보였던 듯하다.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유학을 간다고 무례하게 통보하는 수지에게 ‘나’는 고작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그가 던진 찌질한 말이 후회되지만, 그가 수지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수지의 결혼식에 찾아가 멋진 말을 해주는 ‘상상’을 하는 것뿐이다. 

   ‘나’는 이상형 그녀를 만났던 어제를 떠올려본다. ‘나’는 어제 지하철의 노란 안전선을 따라 걷다가 ‘그녀’를 만났다. 노란 안전선은 “안전할 수도 있고,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경계이다. ‘나’는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가장 즐긴다. 경계를 따라 걷다 만난 그녀는 수지보다 자신과 더 잘 맞을 듯 한 예감이 든다. 수지와의 연애는 상상력이 없는 연애였다. ‘나’의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매번 멈칫하기만 했던 ‘나’가 드디어 그녀에게 삐삐를 건넨 순간은 마치 처럼 느껴진다. ‘나’는 잠이 든다. 

     2) 호출되는 자
삐삐를 받은 그녀는 누구일까?
   ‘그녀’는 어제 얼떨결에 받는 삐삐를 보며, 삐삐를 건넨 ‘그’를 떠올린다. 그녀의 이름은 송화, 직업은 러브신 대역 배우이다. 지금은 대역 배우에 불과하지만 그녀 자신을 배우라고 여기기에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즐겼지만, 어떤지 그의 표정은 불쾌하지 않다. 그녀가 대역배우인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차버린 과거의 그와 달리 삐삐를 건넨 그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언젠가 갔었던 꼬치집의 벽에 걸린 달력에서 그녀는 자신이 수영복을 입고 촬영한 광고 사진을 목격하고 서글펐던 적이 있었다. 대역배우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그날도 주연배우는 늦게 왔으며, 대역 촬영은 힘들다. 지친 하루를 마치며 송화는 아직 연락이 없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는 어쩐지 직장도 없이 글만 쓴다고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은 소설가일 것 같다. 

     3) 호출은 없다
   ‘나’가 자고 일어나니 오후 한시가 다 되어있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호출을 할 것인지 고민하다 마침내 삐삐 번호를 누른다. 하지만 삐삐의 호출음이 들리는 곳은 자신의 점퍼 주머니 속. 알고 보니 그는 이번에도 삐삐를 건네지 못한 것이다. 비록 삐삐를 건네지는 못했지만 멋진 상상을 했기에 그는 웃음이 난다. 그는 이 상상을 소설로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달력 속의 여자가 왠지 낯이 익다......




2.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과 현대성

    <호출>은 굉장히 현대적인 소설이다. <호출> 구성하는 소재, 플롯, 그리고 소설적 기법들까지 현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현대성을 <호출>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자기반영적 메타픽션(Self-reflective Metafiction)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반영적 메타픽션’이라는 것이다. (소설의)자기반영성은 쉽게 말해 허구를 쓰고 있다는 의식을 작품 속에서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작품 내부에서 작품의 창작과정을 다루며,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인식하고 있다. 즉, 자기반영적 소설이란 창작 과정을 의식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메타픽션은 소설을 창작하며 소설을 창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로, 일종의 자기비판이 담긴 소설이다. <호출>의 주인공인 ‘나’는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작가이다. ‘나’는 마지막에 자신이 한 상상을 소설로 쓰겠다고 결심한다. <호출>은 곧, 하나의 소설임과 동시에 작품속의 인물 ‘나’가 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2) 소통
   <호출>의 줄거리는 결국 주인공 ‘나’가 지하철에서 만난 여성과의 ‘소통’을 고민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와 ‘송화’ 사이의 소통의 매체는 다름 아닌 ‘삐삐’이다. (오늘날 더이상 쓰이지는 않지만) 삐삐라는 통신 매체의 특성을 살펴보자면, 삐삐는 쌍방향 소통이 되지 않는 매체이다. 호출하고 싶은 자는 언제든지 마음이 내킬 때면 일방적으로 소통을 제의할 수 있지만, 호출을 기다리는 자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를 묘사하는 흔한 말들 중 하나로 서로간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말을 우리는 많이 사용한다. 삐삐라는 일방적 소통 매체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 매체인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의 일방성을 더 찾아볼 수 있는데, 먼저 주인공 ‘나’가 삐삐를 여자에게 준 것은 결국 주인공의 일방적인 상상이고, 주인공 자신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낸 세계이다. 둘째로, 다른 현대소설들처럼 <호출> 역시 조금은 모호하다. 작가가 혼자서 만들어낸 소설을 읽고 난 후, 독자들은 쉽지 않은 의미 찾기를 해야 한다. 


     3) 애매성
   작가는 의도적으로 소설을 애매하게 구성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이 “현실과 상상과의 경계”를 즐긴다고 얘기한다. 현실과 상상과의 경계는 주인공이 걸어가는 지하철의 노란 안전선처럼 얇은 경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나’가 현실을 상상처럼 믿고 살기도 하며, 상상을 현실처럼 믿고 살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과 상상과의 경계가 이토록 가까운 것이라니 상당히 애매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호출> 속의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일까? 작품 후반부로 가며 독자는 주인공이 삐삐를 여성에게 건넨 것은 ‘상상’이고, 주인공이 삐삐를 건네려 시도한 것 까지만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나’가 방에 있는 달력 모델을 보며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명확해진 상상과 현실과의 경계는 다시 흐릿해진다. 상상 속의 여자라고 결론 지었던 ‘송화’가 달력 모델이지 않았는가? 주인공은 예전에 송화를 만난 적이 있었던 걸까? 혹시 이 모든 소설도 주인공의 상상은 아닐까?



3. 마치며

   작품을 읽고 난 후, 나는 두 가지 상상을 했다. <호출>이 출판된 1997년도 현대이지만, 지금은 1997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현대이다. 더 이상 사람들은 삐삐를 사용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여성을 지하철에서 만나더라도 누가 할부도 안 끝난 스마트폰을 선뜻 건넬까? (대신, 번호를 받아간다. 번호를 준 사람은 번호를 받아간 사람의 연락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런 면에선 삐삐와 비슷하다!) 게다가, 이제 대부분의 지하철 승강장에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이제 노란 안전선을 넘어가도 100% 안전하다. ‘경계’가 하나 사라졌다. 하지만 1997년이나 2015년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지루한 일상에 비해 상상은 멋지다는 사실일 것이다. 







▶ Reference
《호출》, 김영하, 1997, 문학동네.
Ramen Selden, Peter Widdowson, 2013, A Reader's Guide to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5/E Longman. "Chapter 8. Postmodernist The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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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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