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황금사과의 비극을 닮은 연극 "그녀들의 집"

글 입력 2015.06.0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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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과.png▲ 세 여신과 황금사과. 루벤스 作

 여신 테티스와 인간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된 세 명의 여신이 있었다. 

전쟁의 승리와 명예의 여신이며 가부장 제우스의 충실한 이행자인 아테나,
가정의 수호자이자 바람 같은 제우스 때문에 고통 받은 헤라,
성적 매력으로 모든 남성을 사로잡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강력한 힘만큼이나 높은 자존감을 자랑하는 여신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 바치는 황금사과가 굴러왔을 때,
10년의 파멸을 가져온 트로이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연극 ‘그녀들의 집’은 이 신화를 닮았다. 


 “당신은 내게 실패하는 방법을 가르쳐야만 했어요!”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첫째(아테나).
그녀는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 받지 못했고 언제나 최고여야 했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시키면 무조건 성공해야만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한 적은 없었다. 아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나 있었을까.


“착한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어!”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을 봐주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괴로워하는 둘째(헤라). 
둘째는 조건 없이 희생해야 했다. 
능력이 뛰어나지도, 외모가 빼어나지도 못한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착한 아이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 욕망은 깊은 곳에 감추었다. 
그러나 욕망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평생을 욕망하며 사는 것이 인간인 것을. 


 “나를 보던 엄마의 차가운 눈빛! 오, 그건 질투였어.”
아름다움이라는 전형적인 여성성과 치명적인 성적매력을 지닌 셋째(아프로디테). 
아름다웠기 때문에 고통 받았던 헬레네처럼, 셋째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그녀를 딸이 아니라 여자로 보았고, 성적으로 학대했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지만,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11-단체.jpg


그녀들은 단 한번도 ‘자신’인 적이 없었다.

가부장적 질서의 중심이며
꼭대기에 군림하는 아버지(제우스)가 만들어낸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았다.

그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했다.
그러나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사랑했다.
지독히도 벗어나고 싶어했으나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세 자매의 앞에 아버지와 너무나도 닮은 의사(황금사과)가 등장했을 때,
그녀들이 결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알았다.

결국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비극은 
아버지를 닮은 의사에 의해 파멸을 맞았다.



그녀들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여성상이었다.
그렇기에 더 공감가고, 더 안타까웠다.
현대가 양성평등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건 아직 먼 얘기일 뿐이다.

너무나 오랜 시간 뿌리내려온 
"여자라면 이래야 돼!"

라는 관습과 편견은
마치 전족처럼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다.
그리고는 결국 제대로 자라지 못한 채,
세 자매와 같이 기형적인 모습으로 머무르게 한다.


개인적으로 세 자매 사이의 ‘소통의 부재’가 제일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녀들은 서로의 상처를 알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면서
자신의 상처가 가장 크고 아프다고 외치기만 했다.

같은 처지에 처한 혈육인 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는데도 말이다. 
애초에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아보였다. 조금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녀들이 조금만 더 일찍, 자신들의 상처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더라면
서로에 대한 질투와 피해의식도 덜했을 것이다.

서로를 보듬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런 비극적인 결말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무대장치는 매우 신선했다.
관객석의 뒤편까지도 무대가 있어 극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이 나올 때는, 마치 목격자가 된 양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그만큼, 극이 던지는 메시지가 마음에 잘 다가왔다. 
꼭 이렇게 묻는 것도 같았다.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현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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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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