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아이의 경계 :: 거인

글 입력 2014.12.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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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가 어른인걸까? 세삼 나이 먹는 것에 대해 두려워질 때가 있다. 20대 중후반을 달려가는 현재, 나는 아직도 가끔 누군가가 내 나이를 물으면 23살이란 숫자에 익숙하다. 그러다가 덜컥 현재 나이를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나는 이 숫자를 감당 할 수 있는 나이인가?

이 영화 역시 그렇다. 포스터에 쓰인 강렬한 글귀 ‘사는 게 숨이 차요’ 처럼 영화 속 영재(최우식)는 보호시설에서 나갈 만큼 커버린 어른이다. 아직 영재는 갈 곳이 없다. 그럼에도 이 보호시설에선 더 이상 영재를 받아 줄 수 없다고 한다. 영재와 같은 상태는 아니지만 필자는 이러한 영재의 상황들을 보면서 로 대입했다. 덜컥 고등학교 입시가 끝나고 대학으로 혹은 직장으로 내던져지는 과거 속 필자의 모습 같았다. 아직 준비 되지 않았는데, 의자에 앉아서 공부만 하던 내가 덜컥 사회로 나가면 버틸 수 있을까? 무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그때가 떠오르면서 영재의 입장이 공감됐다.

  영재는 집이 싫어서 가출 한 뒤 스스로 보호시설에 들어 간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품을 스스로 떠나 지낸 영재는 보호시설 안에서 사랑과 신임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나이가 다 찼지만 쫒겨나지 않기 위해 영재는 보호소 어머니, 아버지에게 신학교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한다. 이미지 관리를 잘한 영재는 그들에게 잠시동안의 신임을 얻는 것에 성공한다. 하지만 영재는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보호소에 들어오는 후원물품들을 몰래 빼돌리며 학교 애들에게 팔면서 돈을 벌고 있다. 앞뒤가 다른 이중적 모습을 보이는 영재는 그렇게 보호시설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는 영재가 창고에 물품들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된 보호시설 원장은 아이들을 잡는다. 범인을 밝히기 위해 강압적으로 아이들을 몰아 붙인다. 영재는 자신이 한 일이 들킬까 무서워 눈치를 보지만 결국 범인으로 지목된건 '범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영재와 같은 나이인 범태는 보호시설에서 쫒겨나게 된다.

  매일 매일이 눈치인 영재, 그런 영재에게 닥친 또다른 시련은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하지 않는 가장이다. 어떻게든 편하게 돈을 벌고자하며 짐이 되는 것들을 떨궈버리려 한다. 동생 민재를 보호시설에 맡기려는 아버지. 민재 역시 영재가 그곳에서 잘 지내는 것 같아 가고 싶어하지만, 형이 원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영재는 동생인 민재마저 보호시설에 맡겨지면 위태롭게 뭉쳐있던 가족이 흩어져버릴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를 철저하게 거부한다. 

  이런 영재를 아버지와 범태는 끊임없이 조여오고, 이삭의 집 원장마저 아니꼽게 바라본다. 어떻게든 범태는 처리했지만 아버지는 좀 처럼 영재 뜻대로 되지 않는다. 끝내는 민재를 데리고 이삭의 집으로 온 아버지. 영재는 그 모습을 보고 칼부림을 일으킨다. 이렇게 아슬하게 보호시설에 붙어있던 영재는, 끝내는 원래 있던 '이삭의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는데...

 

 

* 일상을 원하다

  '밥 한끼 편안하게 먹고 싶다' 이 것이 영재가 원하는 것이다. 가족이 아닌, 보호시설에서 살아가는 영재는 단 하루도 편안하게 밥 한끼를 먹지 못한다. 눈 뜨자마자 일어나서 밥상 차리는걸 돕는가하면, 보호시설의 아버지가 기분이 좋지 않아 던진 음식을 치우기도한다. 모처럼 앉아서 밥을 좀 먹어볼까 하면 사건사고가 터진다. 밥 한끼 먹은 뒤 학교 잘 다녀와라. 라는 말이 다수의 사람들의 일상이다. 영재는 바로 그 일상을 원했다. 그가 먹는 밥상에는 늘 '눈치'가 함께 한다. 밥상이 차려지고 작은 아이들 틈에서 우뚝 솟은 영재. 영화제목인 <거인>과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었다. 아직 보호받아야할 아이임에도 그는 몸만 자라서 어른같은 거인이 되어있었다.  

 

* 자신을 속이다 

  신학교에 입하겠다는 영재를 돕는 서울대생 윤미. 같이 서점에 가 책도 봐주고, 맛있는 음식도 사준다. 그렇게 윤미와 함께 다니는 동안 영재는 윤미의 삶을 부러워한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농을 주고 받는 윤미,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윤미야 말로 영재가 가장 원하던 일상이었다. 영재는 윤미에게 장갑을 선물한다. 그때 윤미는 장갑을 고맙게 받으며 영재에게 '나는 영재가 자신이 한 말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어. 꼭 영재가 말한대로 됐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건넨다.

  필자 역시 '나는 작가가 될거야' 라는 말로 본인의 꿈을 다 끝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목표를 정했으면 그 목표에 가기까지 노력과 공을 드려야하는데, 말로 목표를 읽음으로서 된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이렇게 될거야. 이렇게 될거야. 그러다보면 언젠간 되겠지. 오지도 않은 미래의 막연함을 현재에서 기다린다.  

  영재는 역시 신학교에 입학하겠다고하지만 실상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그에겐 공부할 틈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하루하루 눈치를 보며 살기 바쁘니까. 동생을 떠넘기려는 아버지가 보호시설에 오지 않나 조마조마해야하고, 몰래 창고에서 훔친 물건을 누군가가 알아 차리지 않았나 조마조마해야하며, 나이가 다 찼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라는 원장의 눈치를 보며 쫒겨나지 않기 위해 조마조마해야 한다. 그런 주변 환경이 그를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가?

  공부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는걸 좋아하는 집에선 당연히 아이는 노는걸 보고 자랄테니 공부를 할리 없다. 부모가 책 읽는걸 좋아하는 아이는 당연 보고 자란게 책 읽는 걸테니 자연스럽게 책읽는걸 좋아하게 된다. 이처럼 공부는 환경이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은 달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른의 잣대로 영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참 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서, 그렇게 되라고만 강요하는 어른들의 행태는,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으면서, 본인에게만 책임지라며 다그치는 것 같았다.

 

* 잘못된 싸움의 대상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던 상황은 보호시설 아이들끼리의 싸움이었다. 범태와 영재는 서로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다. 살아남기 위해 똑같이 발악하지만 범태는 먼저 나가 떨어졌을 뿐이고, 영재는 조금 더 기한이 늘어났을 뿐이다. 어차피 둘은 똑같이 보호시설에서 쫓겨나는 존재다. 그런 아이들끼리 서로 그 안에서 살아보겠다고 협박하고, 싸운다. 영재때문에 오해를 사 쫓겨난 범태는 다시 영재에게 나타난다. 범태는 창고에 물품을 훔친 범인이 영재임을 알게 되고 영재를 협박한다. 영재는 그 협박에 시달리지만 벗어나기 위해 범태의 약점을 찾아낸다. 이처럼 이 둘은 같은 처지임에도 서로가 싸운다. 보호시설에 있는 또다른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영재는 범태와 연락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협박한다.

   이 처럼 이들은 정작 싸워야할 대상들에게는 화를 내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일을 반복한다. 소외된 사람들끼리 그 안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더 소외시키려 하는 형태가 현재의 세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이 영화 속 인물들이 더 외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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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된다는 건 / 상처를 받았다는 입장에서 / 상처를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 상처 준 걸 알아챌 때 / 우리는 비로서 어른이된다'노희경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 적혀있는 글귀 중 한 부분이다. 

 

  나는 누군가를 책임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영화 속 어른들은 너무 무책임하다. 그래서 보는 내내 화가난다. 아직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보단 받는 입장이지만, 훗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어른이 된다면 그땐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영화 <거인>이 전반적으로 담담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영화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영재라는 인물이 가진 상처가 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종일간 영재라는 인물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봤다.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 극한갈등은 없었지만 곳곳이 찌르듯 계속 아팠다 감독님은 결말을 희망적으로 끝낸거라 말했지만 나는 아무래도 영재와 민재가 헤어지는 부분이 이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기 때문에 비극으로 끝난 것만 같다. 영재는 그렇게 잘 갔다지만 아무것도 모른채 남겨진, 형이 떠나는 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기만한 민재가 자꾸 신경쓰인다.


[설정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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