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버스와 같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문득 제 삶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제 인생이라는 버스를 직접 운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길 위로 수많은 인연들이 오르기도 했고, 어느 순간 조용히 내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함께 타고 있는 이들이 있고, 잠시 들렀다가 간 이들도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은 건, 답장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점이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어떤 말은 전해지지 않아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요.
돌이켜 보면, 제 인연들은 대부분 뚜렷한 끝맺음 없이 흐지부지 흘러갔습니다. 감정이 상하거나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시간과 상황, 각자의 삶이 서로를 멀어지게 만들었지요.
예전에는 멀어진 이별에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마음에 응어리가 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낍니다.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제 마음과 상대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보다는 그저 서로 달랐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인연들이 제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던 감정들 이제 조용히 제 안에서 정리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방 정리를 하다 오래된 손편지 상자를 꺼내 들춰보게 되었습니다. 생일을 축하하고, 위로를 전하며, 응원과 애정을 담아 쓴 손글씨 편지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들의 발신자들은 이제 대부분 제 버스에서 모두 내린 사람들입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지금은 어디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한동안은 제가 모든 관계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고, 어떤 인연은 그 누구도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채로 끝났다는 것을요. 우리는 모두 그저 서툴렀을 뿐이었으며, 나 또한 미성숙했다는 것을요.
지금 남아 있는 건, 함께 웃었던 사진 몇 장과 손때 묻은 편지들입니다. 그것들이 우리가 한 버스를 함께 탔던 시간의 증거가 되어줍니다. 인연이란 참 묘합니다. 손안에 쥔 모래처럼, 잡고 있는 순간은 분명히 함께였지만, 어느 순간 흘러내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고 없이 멈춘 연락, 오해로 인한 침묵, 무언의 하차. 그런 일들을 통해 관계가 얼마나 순간적인지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순간을 부질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짧든 길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간 그 시간만큼은 소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따뜻한 잔상이 남습니다.
요즘은 관계가 쉽게 시작되고, 쉽게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마음을 내어주기조차 조심스러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인연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지금 제 버스에 타고 있지 않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함께한 짧은 동행이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제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이 편지는 도착하지 않을 곳을 향하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어디든 닿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시절 함께 웃었던 얼굴들, 조심스럽게 내어주었던 말들, 때로는 말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마음들. 모두가 제 안에서 조용히 머물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름도 흐릿해졌고, 어떤 장면은 이제 사진으로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인연이라는 건 그렇게 마음속에 오래 남아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 늦게 알게 된 미안함,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진심.
그 모든 말들을 이제야 이 편지에 담아 조용히 띄웁니다.
지나간 과거에게, 그리고 한때 제 인생에 머물렀던 당신들에게.
여전히 길을 달리고 있는 버스 운전사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