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모든 편지는 안녕으로 시작해서 안녕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야.
모든 시는 한 편의 편지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시인들은 누구한테 그리 정성껏 넋두리를 하는 걸까? 그 편지를 내가 몰래 봐도 되는 걸까?
생각해 보니 시와 편지는 전혀 다른 것 같기도 해. 나는 편지는 싫지만 시는 좋아해. 편지를 쓰는 건 힘들거든. 내 이야기를 솔직하면서도 짧게 탁 풀어놓는 게 너무 어려워.
시는 괜찮아. 그 뒤에 내가 숨을 수 있으니까. 너를 이름 대신 '너'라는 글자 뒤에 숨겨버릴 수 있으니까.
너는 그 정도는 용서해 줄 사람이었을까? 기꺼이 말이야. 그럼 이 편지는 어쩌면 한 편의 시인 셈이야.
너와 나만의 시간이라는 말 참 좋지 않아? 그냥 오래된 소설 한 편이지만 말이야. 결국 세상은 무수히 많은 너와 나로 이루어져 있어. 그 시간들은 오직 두 사람밖에 몰라.
그래서 네가 사라지고 나면 나와 시간만 덩그러니 남는데 말이지. 그럼 나는 시간을 껴안고 울어야 하는지? 혹은 그 시간이라도 남아있음에 웃어야 하는지. 이건 평화인지? 폐허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방금 또 든 생각은, 실은 시를 쓰는 것도 정말 어렵다는 거야. 내가 처음 시를 썼던 건 너를 따라 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나는 따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따라쟁이라.
그건 황혼에 관한 시였는데 생각해 보면 우습지. 첫에 서 있는 사람이 어떻게 황혼을 아냔 말이야. 그것 말고도 난 모르는 게 참 많았지 뭐야. 너는 그때 이미 끝에 가 있었던 것도.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처럼. 너의 끝이 어떤 색이 되리라는 것까지. 나는 아직도 여기 서서 널 생각하리라는 것까지.
사실 나는 너도 몰랐던 것이 아닐까? 너와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너의 말은 전부 거짓이었을까. 텅 빈 약속이었을까. 거짓말쟁이. 너는 그 주홍빛 끝에서 무엇을 떠올렸을까? 너의 첫? 그건 어떤 색이었을까? 모를 일이지.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끝의 반대말은 첫이 아니라 중심인지도 모르지. 첫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중심은 그렇지 않잖아. 잠시 가장자리에 갔다가도 얼마든지 돌아올 수 있는 중심. 이번에는 널 따라 하지 않겠다면, 나는 돌아가겠다면. 그럼 우린 누가 누구를 버린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너를 사랑해. 이건 진짜야. 네가 유일하게 몰랐던 것 하나를 나는 알아.
그러니 너도 진짜였어야 해. 너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기를. 너의 첫도 꼭 그런 색이었기를 바라. 구석구석 다. 아주 간절히. 네가 내게 했던 모든 말은 편지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그냥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기를.
내가 너에게. 사랑하는 이름에게.
자, 나는 이제 갔다가 또 올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