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챗GPT를 일에 자주 활용한다. 효율과 동시에 현타가 함께 온다. 예전엔 그래도 말투에 영혼이 없기라도 했다. 이제는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기까지 한 챗GPT를 보며, 하루는 순간 멍해져서 한참을 산책했다.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얘(어느 순간 챗GPT를 사람처럼 '얘'라고 불렀다)보다 더 잘하는 건 뭘까? 얘는 할 수 없는 것이 뭘까?
다음은 내가 산책 중에 메모했던 의식의 흐름이다.
'얘는 재수를 해본 적이 없다. (너무 똑똑해서)'
'얘는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얘는 콤플렉스가 없다.'
'얘는 좋아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얘는 비밀이 없다.'
'얘는 욕심이 없다.'
'얘는 다 뛰어나기에 특별한 강점도 없다.'
'얘는 헤이즐넛 커피를 다른 커피보다 더 좋아하지 않는다.'
'얘는 예민하지 않다.'
'얘는 죄책감이 없다.'
그래서 나에 대해서 새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 것들이 있다.
나는 챗GPT와 달리,
비합리적인 결정을 많이 하고
엉뚱한 신념이 있으며
약점과 흑역사가 많고
취향과 낭만이 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들'이 만들어온 결과물이자 집합체이다.
나는 기억에 의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노스탤지어로 이루어져 있다.
당신의 노스탤지어가 궁금한 마음으로, 나의 노스탤지어를 잘 보여주는 것들을 소개해 본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90년대생이라면 모두의 가슴 한편에 있을 작품이다.
나는 동사무소 어린이 도서관에서 약간 손때를 탄 책으로 처음 읽었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편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한다. 7편, 헤라클레스 편이었다. 헤라클레스가 보여주는 영웅의 여정에 폭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헤라클레스가 독에 감염되어 옷이 몸에 달라붙자 이를 잡아 뜯는데, 옷과 함께 살점까지 떨어지며 근육이 드러나는 장면이 기억난다.
이 만화로 신화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리스 신화를 리메이크하거나 각색했다고 들으면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작년에는 그렇게 나의 인생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대학 전공을 영어영문학으로 아주 빠르게 결정한 이유도 아마 그리스 신화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라는, 이 모든 서양 예술의 근간이 되는 이야기는, 늘 머리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홍은영 작가님의 화려한 그림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열광하게 하기 충분하다. 최근에 홍은영 작가님이 이집트 신화를 소재로 새 작품을 준비하신다고 들었는데 너무 기대가 된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아이팟&라디오'
내가 중학생 때, 고모가 아이폰을 새로 장만하시며 그동안 쓰시던 아이팟(아이팟 터치)을 내게 주셨다. 나는 그걸로 (가끔은 몰래) 외국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팝송을 들었다. 그때 작은 화면으로 봤던 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 시트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그리고 처음 들었던 케이티 페리의 음악.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이팟을 학교에서 분실하며 너무 속상했지만, 다행히 그때는 나도 스마트폰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은 분실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팟보다 내가 더 사랑한 것은 라디오이다. 안테나를 높이 뽑아드는, 헬멧같이 생긴 라디오. 수학을 잘하진 않았지만 수학 문제를 푸는 건 좋아했다. 숫자를 끄적거리며 라디오를 마음껏 들을 수 있었으니까.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안 하고 라디오만 듣고 있는 것 같다며 결국 압수하셨다.
그 한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였을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내가 맨 처음 샀던 것은 라디오였다. 실시간으로 청취자가 보내는 사연, 그리고 그 사연에 맞는 음악 셀렉팅, DJ의 한 마디. 아직도 내게 라디오만큼 온기가 넘치고 감성적인 물건은 없다. 똑같이 라이브로 해도, 이상하게 팟캐스트와 플레이리스트 유튜브는 절대 따라 하지 못하는 감성이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비디오 영화' - 마틸다
어렸을 때 나는 목동 CBS 건물 밑 문화센터에 다녔다. 수업이 끝난 후엔 엄마와 함께 위층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 '키즈렌탈'에 가는 게 당시 나의 '소확행'이었다. 대여점을 운영하시는 아저씨는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직접 영화와 책을 추천해 주셨었다. 지금 내가 이동진 영화 평론가를 신뢰하듯이, 아저씨가 추천하는 거라면 믿고 봤던 것 같다. (늘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사장님 잘 지내시길 바라요.)
그중 내가 여러 번 빌려 봤던 것은 영화 <마틸다>. 로알드 달의 소설 마틸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당대 핫했던 아역 스타 배우 마라 윌슨이 깜찍한 마틸다 역을 맡았다. 천재 소녀 마틸다는 방치된 채 자란다. 영화 초반, 늘 혼자인 마틸다가 '오히려 좋다'는 느낌으로 자신을 셀프케어하는 장면을 아직도 정말 좋아한다.
마틸다는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5살도 안 된 꼬마가 팬케이크를 직접 부쳐 먹고, 꽃을 화병에 꽂아 자신의 환경을 가꾸고, 시그니처 패션으로 머리에 리본을 한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한가득 빌려와 읽고 읽고 또 읽는다. 기분이 좋아지는 장면이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아릿한 장면이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영화관' - 구로 CGV
내가 해본 것 중 가장 큰 일탈은 고등학생 때 종종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영화관에 간 것이다.
구로 CGV를 독서실처럼 자주 들락날락했다. 무조건 저녁 7시나 8시의 영화를 예매하고, 서점에서 책을 보며 기다리다가,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에 영화를 본 후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버스 창문을 열면 딱 기분 좋게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night breeze'라는 영어 단어가 딱 맞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때의 서늘한 밤바람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지금도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CGV에서 '1318 클럽'이라는 걸 시행했었다. 만 13세에서 18세의 청소년들에게 영화값을 할인해 주는 제도였다. 고마워요 CGV. 이때 봤던 영화들은 <겨울 왕국> <스포트라이트> <내일을 위한 시간> 등등. 참 좋은 영화들이 개봉했던 시기였다. 어쩌면 내가 18살이어서 전율이 훨씬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내 노스탤지어의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 거의 없다. 하하하.
나는 한국에 있어도 외국에 있었다. 늘 '정신이 다른 데에 팔려있었다'. 내가 마음을 빼앗긴 것들은 전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영어는 그것들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여서, 정말 단지 그 이유로 영어를 공부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노스탤지어의 또 다른 공통점은 '쓸쓸함'이다. 나는 어렸을 때 혼자라고 자주 느꼈다. 그때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을 건넨 문화 예술들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 구원받기도 했다.
누구나 이러한 향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플레이리스트 유튜브의 댓글 창을 보면 나처럼 위로받았던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들이 있다.
나의 노스탤지어는 가보지 못한 곳들과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을 '아네모이아'라고 한다. 아네모이아(Anemoia)는 2012년 책 <모호한 슬픔들의 사전>에서 등장한 단어로, '바람'과 '마음'을 뜻하는 단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단어다. '강풍에 의해 나무가 흔들림'을 뜻하는 영어 단어 anemosis와 결합시켜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아네모이아의 느낌을, 훨씬 옛날에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 있다.
바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날 곳이 아닌 데서 태어나기도 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비록 우연에 의해 엉뚱한 환경에 던져지긴 했지만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산다. (...)
그러다가 때로 어떤 사람은 정말 신비스럽게도 바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라 느껴지는 장소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그처럼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고향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들이 죄다 태어날 때부터 낯익었던 풍경과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정착하고 만다. 마침내 그는 그곳에서 휴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나의 노스탤지어는 내가 대학 시절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게 했고 첫 여행지를 영국으로 가게 했으며 그 외에도 내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수많은 낭만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노스탤지어는 내가 지금,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노스탤지어들에게 고맙다.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의 노스탤지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