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주인을 닮아가고,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급조된 표현이 아니다. 항상 곁에 머물며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쌓이고 서로 닮아감을 의미한다. 그 형태는 무척 다양하고 복잡해서 옳고 그름을 논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주변에게서 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을 때 스스로가 잘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떠올린 것이 화장실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문구,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였다. 나의 주변이들과 이렇게나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내가 일상에서 사랑하는 주변의 것들은 어떨까? 각종 테스트가 유행하면서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이 많아졌지만, 생각의 정제 없이 스스로를 마주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일상 속의 나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이번 자기소개에서는 총 5가지 주제를 통해 주변과 나를 연결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설명을 통해 나를 드러내보이기로 했다. 초면에 너무 많은 정보값들이 나열되겠지만 너른 이해를 부탁드린다.
1. 좋아하는 음악(노래)
언급하고픈 쟁점이 있어 음악에서 노래로 범주를 좁혔다.
주변 사람들과 취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노래를 듣는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생긴다는 점이다. 일명 '멜로디파'와 '가사파'의 분쟁이다. 나는 멜로디파여서 한때는 가사는 좋은 멜로디에 얹는 고명 (고명도 충분히 중요한 구성물이다) 정도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가사가 와닿는 곡들을 만나면서 차츰 생각이 바뀌었지만, 요즈음도 멜로디가 먼저 와닿을 때 가사를 곱씹어보는 편이다.
그렇게 최애로 선정한 곡들은 아래와 같다.
- 걷는 마음 : 리틀 포레스트 엔딩에 삽입된 곡이다. 노래를 듣다보면 살랑살랑 산책하는 기분이 드는데, 기분이 좋지 않을 때도 종종 전환을 시켜주는 효자곡이다.
- le festin :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라따뚜이'의 테마곡이다. 듣기만 해도 파리 레스토랑 한복판에 있는 기분을 가져다준다.
- 그대가 이렇게 내 맘에 : 사실 이곡은 최애곡은 아니고, 최근에 새롭게 알게 된 곡이다. 잔잔하게 읊조리는 가수 이소라 목소리가 편안함을 준다.
2. 좋아하는 음식
음악은 그때 바라본 풍경을 추억해준다면, 음식은 그때의 나를 불러다준다.
내가 사랑하는 음식이 가리키는 대상은 대부분 가족이다. 감동적인 장면을 봐도 연인이 이별하는 장면은 뭉클함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반면, 가족은 조금만 감정선을 건드려도 눈물바람이 된다. 그래서 신파 장르를 더 멀리하는 편이다. 숭고한 가족애를 쥐어짜내는 느낌이 고깝지 않다. 물론 연인이 발전해서 가족이 되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족이 가져다주는 향토를 공감할 사람이 많을 테다.
그래서 나의 최애 음식들은 모조리 엄마의 요리가 차지했다. 흔히 집밥이라고 하면 한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엄마께선 양식에 강하시다. 과거에 식당을 운영하신 적도 있고 쿠킹클래스를 진행하신 적도 많다. 내가 음식을 행복하게 맛볼 때마다 레시피를 전수 받으라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칼조차 만져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그렇게 꼽은 최애 음식들은 아래와 같다.
- 라자냐 : 오빠와 내가 꼽은 불변의 집밥 1위. 아직까지 엄마의 라자냐를 넘어서는 맛을 느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단호박슾 : 이 또한 엄마의 작품이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속에서부터 따뜻함을 안겨주는 음식이다. 영화 프렌치수프를 볼 때 머릿속에 자주 떠오른 대상이다.
- 랜디스도넛 : 유일하게 엄마의 작품이 아닌 음식.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로, 안국점이 사라졌을 때 눈물이 찔끔 날 뻔했다.
3. 좋아하는 색
퍼스널 컬러로 봄웜브라이트를 진단받았다. 일명 무당색 옷이 잘어울리는 타입이다. 다행히 비비드한 색감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색은 전형적인 난색과는 거리가 멀다. 블루, 퍼플을 좋아하는데 블루는 색을 바라봤을 때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고, 보라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크게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옷장에 파란색 옷이 수없이 많다. 인간 블루로 불린 적도 있다.
반면 주변에서 성격까지 포괄한 나를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색으로 노랑/주황을 언급하는 경우도 많아서 여러 색을 품기로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봐주는 내 모습도 소중하기 때문에.
4. 좋아하는 사람
누군가를 마주할 때 촘촘한 장벽이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명확한 호불호가 있는 편이다.
우선 호부터 설명하자면 나는 진솔한 사람이 좋다. 이야기를 나눴을 때 이 사람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 어떤 의도를 이 말을 했을까 유추가 필요한 사람보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 감정을 솔직하지만 예의있게 표현하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건 내가 표정관리도 잘하지 못하고, 속마음이 잘 보이는 편인 탓도 있을테다. 그리고 유사한 맥락에서 앞뒤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앞에서는 누구보다 상대를 위하는 척 굴면서, 뒤에서는 깎아내리기 바쁜 사람들을 보면 인생을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되뇌인다. 차라리 대놓고 무례한 사람이 낫다.
5. 좋아하는 장소
나무 그림자가 보이는 곳을 좋아한다. 광역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언덕 위에 나무들이 줄지어 있기도 하고, 외곽을 지나다 보면 나무들이 우거진 가운데 햇살을 받아 빛나는 장면들도 간혹 목격할 수 있다. 낮이면 낮, 밤이면 밤 새로운 매력을 풍겨서 좋다. 또 집에서는 멀지만 올림픽 공원의 나무 그림자도 좋아한다. 언덕 위의 나무들은 나에게 치트키다.
주변을 보면 내가 보인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해주진 않더라도, 나를 넌지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 이 글을 본 여러분이 어떤 형태로든 나의 이미지를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면, 이 자기소개는 절반쯤은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머문 자리를 더욱 아름답게 가꿔나갈 것을 약속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