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모파상의 ‘노끈 한 오라기’라는 작품을 읽고 교수님께서 여러분의 노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하셨습니다. 작품 속에서 노끈은 주인공 오슈코른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뒤, 오해가 풀린 후에도 죽을 때까지 집착하는 소재입니다. 당시의 저는 노끈을 ‘나를 이루는 데 필수적이면서 동시에 나를 망가뜨릴 수 있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나의 노끈은 ‘타인의 사랑’이라고 고백하는 짧은 글을 썼습니다. 나를 고무줄로 엮어 팽팽히 당기고 있는 타인들. 가족들, 친구들, 사람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손을 놓는다면 나는 팡 터져 없어져 버릴 것만 같다고.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 인간은 분리하면서 탄생하며, 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감해지는 것뿐이지 여전히 우리에게 징표처럼 남아있습니다. 라캉(정신분석학자)의 도식을 보면 – 주체 속에 타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인과 분리될 수 없는 나. 인간은 날 때부터 모두 그런 것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듯한 교수님의 애정 어린 답변에 감동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다 보니, 이때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지금부터 저를 채우고 가꾸어 온 타인들을 통해 자기소개를 하려 하거든요. 동경과 질투를 감춘 눈으로 바라보았던, 가끔은 창피로 둘러싸인 밤을 보내게 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년기 / 뭘 하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
유년기, 그러니까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고 배웠던 모든 것이 ‘나’라는 사람의 원형이라고 생각하면 문득 무서워집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갇혀버린 것만 같달까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만큼 중요한 나의 기원입니다.
어린 나에게 늘 새로운 걸 맛보여준 사람은 친오빠였습니다. 그 당시 곰플레이어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봤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여름에 거실에서 같이 이불을 깔고 잘 때면 이상한 상황극을 하곤 했습니다. 춤 대결을 하기도 하고, 훌라후프 대결을 하기도 했지요. 애니메이션, 노래, 웹툰, 게임 등 무엇이든 새로운 유희나 문화는 오빠가 먼저 했습니다. 어릴 때일수록 나이가 주는 내공의 차이가 커서인지, 무엇이든 나보다 먼저 알고 나보다 잘하는 오빠가 얄미웠습니다. 하다못해 싸울 때도 어찌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늘 나를 탁월하게 골려주었고, 울면서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죽도록 얄밉긴 해도 오빠가 뭘 하든 나보다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그를 닮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음엔 오빠보다 잘하고 싶다고 분해하면서요. 인정하기 싫지만, 유년기 동안 내가 항상 닮고 싶었던 경쟁자는 오빠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문화와 창작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가벼운 농담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지금도 둘 다 좋아하는 것들이거든요.
청소년기 / 그 애와 같아 보이고 싶었던 날들
이제 집보다는 학교나 학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낼 나이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선생님 말씀, 부모님 말씀이 곧 법인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그 법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요. 발표할 때 모두가 나를 쳐다보면 약간 눈물이 맺혀서 꾹 참아가며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어째서인지 부끄러워도 발표는 하고 싶고, 이왕이면 반장도 해보고 싶은 아이였습니다.
착하고 똑똑한-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그 시절의 저는 새 영어 학원에 등록하러 갔던 날, 한 말괄량이 소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 눈에 그녀는 참 자유롭고 독특해 보였습니다. 그런 게 좋아 보이기 시작하니 그에 비해 나는 너무 따분하고 재미없는 아이인 것 같았습니다. 원칙주의만을 도덕으로 내면화하고 있었던 탓인지, 특별히 큰 일탈을 하지 않아도 친구의 마냥 평범하지 않은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몹시 매력적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성인이 된 후 일 년에 몇 번씩 그녀를 만나면 여전히 즐겁지만, 우리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종종 느낍니다. 그런데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지요. ‘나는 너와 똑같아. 우리 둘은 정말 잘 맞아. 세상이 두 쪽 나도 영원할 친구야.’ 이제 보니 똑같았던 게 아니라, 그냥 내가 그 친구를 많이 좋아해서, 괜히 특이하고 대담한 척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척’일지라도 덕분에 훨씬 더 쾌활하고 사교적인 아이가 되어서, 그 자아에 맞는 친구들과 경험을 새로이 가질 수 있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지요.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보았는데 진로 희망 직업이 ‘변호사’에서 시작해서 ‘교사’를 거쳐 ‘개그맨’으로 끝났습니다. 초등학교 미술실에 있던 점토처럼 이 손 저 손에 의해 여러 모습으로 빚어졌나 봅니다. 그래도 점토에 제 이름 석 자는 매일 새겨넣고 있습니다.
성년기 / 그리고 지금
스물 이후의 지금까지 이어지는 성년기야말로 타인에 대한 질투심의 전성기입니다. 물론 티를 낼 수는 없지만요. ‘공부 열심히 하기’ 외의 다른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을 기회도 의지도 없었던 학창 시절을 지나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과의 특성상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습니다. 심어진 땅은 나와 비슷할지라도, 훨씬 많은 가지를 뻗고 자신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나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같이 어떤 능력이 뛰어나거나, 자기만의 취향이 진한 사람들이었지요.
준비물로 깨끗한 흰 도화지를 가져왔는데, 다른 애들은 이미 그림까지 그려서 왔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명랑한 대학생 생활을 즐기면서도, 빛나 보이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았습니다. ‘나도 저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도 저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면서요. 이렇게 희망적으로 표현하지만, 그 속에 패배감과 열등감 같은 것들도 조금씩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 질투들은 나도 모르는 새에 조금씩 나를 바꾸었고, 그렇게 지금에 와있습니다.
지금도 닮고 싶은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여전히 나의 한계를 체감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적어도 타인들 사이를 오랫동안 부유하면서 한 가지 발견한 것이 있다면,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것입니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존감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규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내가 아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아직은 잠재적인 나의 어떤 면이,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 증폭될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언급하지 못한 무수한 타인들이 있습니다. 나의 무수한 인연들과 오랫동안 좋아했던 연예인, 어쩌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까지도요. 어쨌든 그 모든 이들이 나를 이루었고 나도 누군가의 일부일 것입니다.
그렇게 기꺼이 독립하지 않고자 하는 저에 대한 뭉뚱그린 소개는 이러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께, 서로의 일부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