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나이
무모하게 저지르고 싶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계산으로 머뭇거리게 되는 나이
뭔가를 이룬 듯해 보여도 딱히 내세울 만한 성과는 없는 나이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이리저리 뒤섞여 겁나는 것이 많아지는 나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그 중간, 스물다섯에 서 있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스물다섯 대학생이다. 이제 더는 이십 대 초반이라고 우길 수도 없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별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가도 가끔 새로 만난 사람에게 자기소개를 하다가 순간적으로 ‘내가 몇 살이지…?’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마주하고 씁쓸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 자기소개를 나이 이야기로 시작해 보았다.
스물다섯 살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유독 많다. 지금 생각나는 것만 해도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송지은의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 그리고 아이유의 ‘팔레트’가 있다. 새해 첫날, 나는 이 중 아이유의 ‘팔레트’를 들었다. 이 노래가 처음 발매되었을 때의 나는 고작 열일곱이었고,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스물다섯 살을 담은 노래구나’에 그치는 감상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어 다시 들은 이 노래는 그때와는 아주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 자기소개를 준비하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그동안 일기장, 메모장, 블로그에 적어놨던 이야기들을 오랜만에 펼쳤는데. 그중 스물세 살 때의 기록을 꽤 오랜 시간 들여다보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갈피도 못 잡고 흔들리던 나날들을 보냈더라. 불안과 혼란만 가득했던 스물셋을 뒤로 하고 스물다섯이 된 지금의 나는 ‘팔레트’의 노래 가사를 하나하나 마음에 눌러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
하긴 그래도 여전히
코린 음악은 좋더라
Hot Pink보다
진한 보라색을 더 좋아해
또 뭐더라 단추 있는
Pajamas, Lipstick
좀 짓궂은 장난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나열이 나를 소개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팔레트의 가사처럼 말이다.
나는,
공연예술을 좋아한다. 특히 뮤지컬과 콘서트.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 잠깐 머물렀다 사라지는 세계를 향유하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밤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밴드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 기타를 치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겨울을 좋아한다. 차가운 공기 속에 은은하게 스며있는 따듯함과 포근함이 좋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작년 여름을 가득 채웠던 유럽 여행의 여운에 아직도 빠져있다.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좋아하고, 로맨스보다는 판타지를 좋아한다.
오래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열여덟의 노을지는 교실로 함께 돌아갈 수 있는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낮보다는 새벽을 좋아한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 혼자 사부작거리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영원, 다정, 순간, 추억, 찬란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일기, 한강, 서점, 이불, 고양이, 디저트, 바다, 눈, 달, 계절 냄새 ...
나열하다 보니 너무 길어지길래 급하게 줄였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난 후로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좋아하는 것을 아끼고 즐기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 나 자신을 알아가는 첫걸음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나만의 세계를 이룰 테니까.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단단해졌던 것 같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미워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ve truly found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언제나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다정함의 힘을 믿는다. 수도 없이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 누군가가 건네준 다정한 말들로 일어나본 경험이 수도 없이 많기에, 나 역시 타인에게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다정한 사람을 만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게 사실이니까.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일은 아직도 두렵긴 하지만 어릴 때만큼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일종의 체념일 수도 있고, 그만큼 내가 더 단단하게 성장한 것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타인의 미움 때문에 나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저 나에게,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불특정한 타인들에게 다정함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내 다짐대로 잘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 인스타그램에 '여러분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을 남겼다. 돌아온 대답들에 밝다, 따듯하다, 선하면서 단단하다, 다정하다, 닮고싶다 등의 말들이 많았다. 나름 바르게 살아온 것 같아 뿌듯하면서 앞으로도 이 마음을 잃지말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개중에는 앙꼬절편같다는 말도 있었는데, 난 이 귀여운 표현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만 덧붙여보자면, 나는 영원을 믿는 사람이다. 영원을 바란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끝이 있고 그렇기에 영원은 더욱 빛이 난고 생각한다.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꿈꾼다. 이 순간 나를 스치는 감정이, 생각이, 그리고 나를 둘러싼 것들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국 나에게 있어 영원을 믿는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순간을, 지금을 소중히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찰나의 순간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내 방식대로 붙잡아 기억하고 간직하면 그게 나에게 있어서는 영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가 스물다섯 살의 나다.
어릴 때 스물다섯은 굉장한 어른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이 나이가 되어보니 절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내 모습이 그리 싫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이영지의 레인보우'라는 프로그램에 이창섭이 출연해 다음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우연히 봤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서른 살은 어떤 느낌이에요?
- 사실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 영지씨의 나이와 그렇게 마음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바뀐 게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현실적으로 변한다는 거?
아.. 낭만이 거둬지고..?
- 아니요, 낭만이 거둬지는 게 아니라 낭만이 무르익었다고 봐요. 그래서 좀 더 그 낭만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할 겁니다.
처음으로 나의 서른 살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스무 살과 서른 살의 중간에 서있는 나의 남은 이십대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잘 모르겠다.
살아가는 모든 날이 좋을 순 없겠지만, 어떠한 날에도 나를 잃지 않으며 내가 그리던 진짜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지길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