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에게 '자기소개'라는 단어는 다소 거북하게 느껴진다.
보통 자기소개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관계에서는 나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으로 포장하고 싶게 만들어진다.
그래서 자꾸만 거창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 꿈은 무엇인지, 그런 진부한 이야기 말이다. 내가 어제 무슨 꿈을 꿨는지, 이런 이야기는 딱히 '자기소개'의 축에 속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봤을 때도, 무언가 고상한 취미를 얘기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긴다. 그래서 '저는 책 읽는 걸 좋아해요', '저는 공연 보는 걸 좋아해요' 정도의 답변이 먼저 나온다. '저는 한겨울 전기장판 위에서 따뜻하게 푹 자는 걸 좋아해요', '저는 요즘 오마카세 영상 콘텐츠를 보는 걸 좋아해요' 같은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잠시 미뤄둔 채.
그래서 나는 이번 자기소개를 아주 사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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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요즘 OOO에 빠져 있다.
이미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요즘 오마카세 영상 콘텐츠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해산물은 거의 가리지 않고 먹어서인지, 일식 오마카세 영상을 보면 침이 꼴깍 삼켜진다. 물론 십몇만 원 이상이 드는 식사를 가볍게 먹을 엄두는 쉽게 나지 않는다. 그 가격이 내내 신경 쓰이는 상태로 식사하는 것은 더욱더 사양이다. 어쩌면 오마카세는 그저 상상의 영역으로 놔두는 것이 더욱 마음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2. 나는 OOO하는 게 귀찮다.
사실 귀찮은 건 한둘이 아니다. 한창 이불 속을 뒤적이며 누워있다가 일어나는 것도 귀찮고, 세탁을 끝낸 빨랫감을 정리하는 것도 귀찮다. 왜 사람은 하루에 한 번 이상을 씻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어찌저찌 몸을 겨우 일으켜서 하고 나면 막상 또 할 만한 일들이라는 것이 나를 황당하게 한다. '귀찮다'는 '어렵다'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아주 쉬운 일인데, 하기가 싫은 일을 '귀찮다'고 표현하는 것일지도.
3. 나는 OOO이 기억에 남는다.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기분이 좋아지니까'라고 대답할 것이다. 선행을 베풀면 뿌듯함을 느낀다. 뿌듯함을 넘어서, 선행을 베푼 기억도 꽤 오래 남는다. 한번은 지갑을 길가에 떨어뜨린 채 그대로 뛰어가던 여자를 붙잡으려고 덩달아 같이 뛰어가기도 했고, 또 다른 날은 한국어도, 영어도 서투른 외국인에게 길을 알려주려고 번역 어플리케이션으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물론 남의 선행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기는 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선행을 베풀지 않기에는 꽤 달콤한 기억들이다.
4. 주말에는 OOO을 하고 싶다.
사실 주말이 되면 하고 싶은 게 많다. 운전 연습도 할 겸 멀리 드라이브하러 가고 싶고, 하루 종일 운동이나 하고 싶고, 마음먹고 방을 깨끗이 정리해서 다시 예쁘게 꾸며 보고 싶고, 책도 제대로 읽고 싶고... 그러나 결국 자고 먹고, 또 자고 먹고... 마치 열량을 비축하는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이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적어두면 이 중 하나라도 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을 품어 본다.
이렇게 총 4개의 사소한 이야기로 나를 소개해 보았다. 나에 대한 소개가 조금은 되었을까? 확실한 것은 내가 그동안 작성하던 자기소개서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점이다. 자기소개서 속 나의 모습은 아주 성실하고, 열정이 넘치고, 똑똑한 모습이었다면, 이 글 속의 나는 귀찮은 것도 많고, 그와 동시에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모습이었다.
물론 잔뜩 정돈된 자기소개서 속 나의 모습 또한 '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돈되지 않은 사소한 일상들이 모인 모습 또한 '나'다. 한 번쯤은, 이렇게 정돈되지 않은 나의 모습도 소개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