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본연의 삶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스물일곱의 나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그것부터 인지하기로 했다. 어떤 방식으로 나라는 존재를 설명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구예원. 27세. 대학을 두 번 다녔으며 모두 문예창작을 전공. 이게 정말 나의 헤드라인일까? 대학을 졸업하거나 일찍 취준 시장에 들어서면 빠짐없이 해야 하는 자기소개나 웃는 인상. 그런 것을 생각하자면 내가 아닌 사람을 흉내낼까 두렵다. 그래서 인지하기로 했다. 나는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며, 우린 너무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이 글은 나처럼 너무 많은 것을 크게 인지하고, 바라보고 있거나 본연의 삶을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1. 일상에서 벗어난 새 일상 가지기
내 삶의 에피소드를 적는 일은 진부할 수도 있다. 교보나 알라딘 베스트에 들어선 에세이 속 그들의 삶이 진부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에피소드를 읽고 내가 공감할 수 있는가, 역으로 내 삶을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게 글을 쓸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였다. 애초에 책을 읽는다는 것도 여유로움보다는 시간을 내어 여유를 꾸리는 일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해서 여유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휴일 자체를 온전히 싫어하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대학교 수업을 위한 전공 도서를 읽거나 과외 학생들의 숙제를 주기 위한 탐독이 오랫동안 나의 주식이 된 탓이었다.
그러다 이번 학기에는 큰 결심을 했다. 여유를 가지자. 정말 단순하지만 단순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람의 다짐이다. 올해 3월부터는 애매하거나 늦은 시간이라도 집 앞에 나가기로 했다. 세밀하게 말하자면 집 앞의 카페를 가 할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 무언가 생동감을 느끼고 오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몸을 움직일 것. 평소 즐기지 않던 음료를 마시고 새로운 기분을 느낄 것. 내가 원하는 책을 찾아 읽을 것. 그렇게 애오개역 근처에 있는 '구띠커피와인하우스' 카페에 눈도장을 찍게 되었다.
나는 이 카페를 '구띠'라 칭하는데, 벽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과 안락하게 느껴지는 조도가 마음에 들었다. 구띠는 평소 오가던 길에서 조금 벗어난 데 있다. 그걸로도 충분했다. 나는 이미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얼마나 단순한 덩어리인가. 단순하게 팔과 손을 놀리고 단순히 걸을 뿐인데 생각은 너무 복잡하다.
초저녁에 카페에 간 것은 몸의 휴식보다 나의 활력을 우선시한 행동이었다. 직접 고민하고 행동한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10분도 채 되지 않는 카페에 가는 길은 건물 공사로 울퉁불퉁했지만, 그 위를 나뒹구는 낙엽을 밟는 재미가 생겼다. 지지직 바스락. 이건 내가 나를 사랑하는 순간의 소리다. 카페에서 달지 않은 카페라떼를 마시며 전자책을 읽고 필사하다가 창밖 구름의 속도에 눈동자를 맞추기도 했다. 내 일상을 나에게 맞추기. 그걸로도 내 삶은 충분하다.
2. 우린 줄곧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한 집에서 산 것이다
필사에 대한 견해를 조금 이야기하자면, 필사는 어렵지 않다. 무조건 쉽다는 게 아닌 '진입 장벽'에 관한 이야기다. 필사가 어렵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은 시'를 찾으려 하지만 그 기준을 몰라 방황하거나, '유명한 시'를 필사하되 마음과 결이 맞지 않아 어려움을 느낀다. 또 예쁜 글씨체와 분위기 좋은 노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힘들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불교서적인 『묘법연화경』을 노트북으로 필사했고, 윤종욱 시인의 시집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해』를 노트에 필사했었다. 오래전의 일은 아니지만 당시엔 조금 귀찮았다가, 무언가 깨달으면 기분이 좋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필사란 나에게 일깨움을 주는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사를 계속 하고 싶은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 필사 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최근 내가 필사한 남현지 시인의 시집인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이다. 지금의 나는 시집을 본 다음, 점 하나를 그려 전체적으로 느낀 바를 쓰고, 또 궁금하거나 파생된 생각이 있으면 점 두 개를 그려 쓰고 있다. 또 다이어리 꾸미는 걸 좋아하는 '다꾸러'로서 귀여움을 잃지 않도록 시집을 간단하게 그려보기도 했다. 잔잔하게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그것만을 필사한 뒤, 특히 좋았던 부분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다. 이 방법은 필사에 몇 시간을 쏟지 않아도 괜찮고, 또 오랫동안 공부하기 힘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더 좋은 여러분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잦다. 나는 간혹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그 화제에 다가가기 힘들어한다. 옛날에 유명했던 그림 하나가 생각난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한 사람이 큰 짐승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는 덜덜 떨었고 그림자는 가까워졌다. 그가 두려움에 잠식될 즈음 그림자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그가 두려워했던 것의 정체가 귀여운 강아지라는 사실에 놀라며 안도한다.
미리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 일이 두려워지고 싫어진다. 나를 사랑하려면 내가 모르는 미래에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게 우선이다. 간단히 적자면, 장래희망이 꼭 하나가 아니어도 괜찮고, 꿈이 여러 개여도 괜찮다. 나의 경우는 출판사 편집장이 되고 싶으면서 시인과 소설가가 되고 싶고, 지금처럼 과외 선생님 일을 유지하고 싶다. 설령 안 되더라도, 그런 희망이 우리를 더 밝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는가.
끊임없이 자기확신을 해야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하나의 대표 자아를 선택하기를 요구 받는 것 같다. 자아를 꼭 하나로만 두지 말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취미와 강점 모두 오롯이 나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의 존재만을 선택해 살아가는 건 잘 모르는 연인과 평생 부딪히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과 같다. 본연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해질 필요가 있다.
3. 거창하지 않은 위로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며, 이전부터 생각하던 주제 몇 가지를 꺼내 보았다. 정말 거창하지 않았지만, 훨씬 거창하지 않은 내면의 문제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우린 왜 보상 심리를 느끼고, 제대로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분명 내가 선택해서 살게 된 하루가 맞는데, 내가 전부 선택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혹은 선택했던 당시를 잠시 망각하였거나.
최근 임유영 시인의 시집 『오믈렛』을 읽었다. 그중 2부에 있는 「꿈 이야기」의 후반은 시인의 말에 적혀 있을 정도로 임팩트가 크다.
그러나 나는 그 영감의 말을 곧이 믿지는 않았다. 무릇 꿈이란 뇌에서 배출된 찌꺼기에 불과한데, 그런 꿈을 해몽한다는 자들의 말 또한 사람을 현혹하는 얕은 수일 뿐이다. 그 증거로 나는 사월의 화창한 대낮에 꽤 오래 걸었음에도 전혀 땀을 흘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붓을 들어 이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적었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벽에 붙여두었다. 후에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어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았다.
- 임유영, 「꿈 이야기」 중
나는 이 문장을 보고 '해몽을 해야 해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갈 지에 대한 초점이 필요하다. 나는 간혹 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고 그 내용을 새벽에 깬 순간 곧잘 적는데, 낮이 되어 그 문장들을 보면 복잡한 심정이 든다. 어떤 꿈에서의 나는 너무나 선량하고 순진하며, 어떤 꿈에서의 나는 끔찍하게 잔인하다. 우리가 꿈을 꾸는 시간은 대략적으로 삶의 1/4라고 한다. 눈을 뜨고 다닌 생의 3/4를 버리고 꿈 속의 나를 본연의 내 성격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나는 해몽하지 않은 채 꿈의 내용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문예창작을 전공하니 꿈 속의 기승전결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요지는, 내가 생각한 걸 믿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인륜적인 것은 배제하고. 본연의 나를 사랑하려면 조금 멀리서 나를 지켜보며 가깝고도 행복한 미래를 생각할 것. 우린 '나'로 살아가는 것을 평생 벗어던질 수 없으니까, 평생 단짝인 '나'가 더욱 행복해지길 바라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