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생각을 아카이브하기 시작한 건 2021년, 아트인사이트에서 에디터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22년 가을이니 햇수로는 벌써 5년이 되었다. 꾸준히 활동해왔으니 이제는 자신감 있게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하고 소개할 법도 한데, 여전히 에디터, 기자, 칼럼니스트와 같은 타이틀을 내 이름 옆에 붙이기에는 쑥쓰럽게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의 정체성을 찾을 때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키워드가 '글'이다. 먼지처럼 떠다니는 생각을 언어의 형태로 뭉쳐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즐거워 하고, 또 가장 자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의 생각과 감정이 마구 엉켜버린 듯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디에 발 딛고 서 있는지 알 수 없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막막한 이 시점에 떠오른 건 지난 5년 간의 발자취, 바로 글이었다. 오늘은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두고 내 글에 푹 빠져볼 생각이다. 나도 몰랐던 내 세계를 파헤쳐보는 이 짧은 여정을, 우연히 들른 당신이 동참해준다면 무척 반가울 것이다.
순간의 깨달음을 담다
50편이 넘는 글을 돌아보며 알아낸 의외의 사실은, [사람]에 대한 글이 정말 많다는 점이다. 꾸준히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던 2023년의 글이 특히 그랬다. 익숙해진 일상에서 문득 어떤 깨달음을 얻을 때면, 마치 상상치도 못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나 스스로가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원한다는 걸 알고 있다. 마냥 세련되고 성공한 삶이 아니라 정말 살아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삶. 그리고 이상을 좇는 사람은 현실에 더 쉽게 실망하기 마련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어차피 깨질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크고 작은 깨달음은, 내 바람이 결코 허황된 게 아닐 뿐더러 내 인생이 이미 너무나 반짝이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빛나는 순간들을 키워드와 함께 아래에 모아보았다.
1 ) 그들의 말에 담긴 매력
사람마다 즐겨 쓰는 단어가 있고, 자주 쓰는 문장 구조가 있다. 이 모든 요소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시원시원하고 뒤끝이 없는 성격,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성향도 모두 말이다. 대화나 글을 이끌어가는 방식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짧고 간결한 대화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 주제를 깊게 파고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SNS에 일상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아도 누군가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보다는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글을 쓰고 누군가는 자신의 일상을 깔끔하게 요약해준다.
앞서 언급했던, 인터넷의 어느 글에서의 내용처럼 사람들의 언어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재미 있는 건, 주제도 방식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공통점이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말 하나하나에 다정함을 담아 대화하는 사람들. 왠지 모를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
그래서일까, 상냥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어김 없이 그들을 사랑하게 된다.
2 ) 불연속적 관계의 소중함
나는 모든 지인을 '앞으로 쭉 연을 이어갈 친구들'과 '언젠가 끊어질, 잠시 아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었다. 명확하지 않더라도 그 분류를 해보려고 계속 노력했던 것 같다.
확신이 서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거리를 두곤 했다. 끝이 날 인연인데 착각해서 쓸데없이 정을 주고 상처 받기 싫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대로 연이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괜히 과하게 사람을 붙잡은 적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을 둘로 구분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오랜만에 만나도, 우연히 만나도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잠시 단절이 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은 나에게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잠시의 단절은 반가운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3 ) 평범하고 특별한
어떤 날이든 출근하면 케이크를 적어도 두세 개씩 판매하게 된다. 이 케이크 좀 꺼내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빵들을 포장하던 손을 멈추고 케이크 쇼케이스로 달려 나간다.
초는 몇 개 필요하세요? 폭죽도 드릴까요? 질문을 하고 케이크를 상자에 넣다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왜냐하면 그제서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날이지만, 누군가에겐 축하하고 축하받는 특별한 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4 ) 의심보다 칭찬
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많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면 성에 차지 않는 나의 모습에 실망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다음의 문장이다. 아, 내가 또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그래서인지 늘 자신감이 가득해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공연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해내는 능력뿐만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까지도 갖춘 사람 같아서.
(중략)
스스로의 능력에 질문을 하게 되는 일은 여전히 자주 찾아온다. 늘 하던 일이 갑자기 잘 안 돼서, 새로 시작한 일을 하다가 자꾸만 실수를 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은 잘만 나아가는데 나만 유난히 발전이 더뎌서 등등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하게 될 수 있는지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알겠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그걸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칭찬거리라도 찾아 스스로를 칭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계속할 힘이 생기고, 진짜로 잘하게 될 때까지 노력할 힘이 생길 테니까.
희망을 알아채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한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야만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게 공허함이 아닌 충만함을 남겨주었던 작품들은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희망을 전달한다.
마냥 순진해보이는 이야기에는 사실 냉소가 만연해진 시대의 영혼을 위로하는 힘을 담겨 있다. 작품을 통해 현실을 지적하고자 한다면, 비관에서 끝나지 않도록 "So what?"의 질문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답이 없는 듯 보이는 물음표의 예술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면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 셈이다.
나의 글은 주로 아주 개인적인 일기의 성격에 가깝지만,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특히 열심히 적어냈던 글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키워드와 함께 아래에 옮긴다.
1 ) 허구의 이야기 속 진실된 힘
환상적인 소망은 어느 정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잠시 이야기 속에서 울고 웃는다고 하여 현실의 내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까? 그 환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떨까. 약간의 희망, 약간의 긍정이 내 마음속에 피어났다면?
허상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좇는 것일지라도 그걸 위해 지금의 내가 당장 삶의 태도를 바꿀 결심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변화가 아닐까. 연극을 하면서, 연극을 좋아하면서 같은 의지를 가진 이들을 만나고 곁에 둘 수 있게 되었다면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중략)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이야기를 사랑하며, 내 삶에 크고 작은 마법을 불러오기로 결심했다.
2 ) 꼬여버린 현실을 풀어갈 실마리
분노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를 분열시킨다. 함께 분노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아군, 상대가 적군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들어주는 이가 마치 든든한 나의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까마귀 클럽의 회원들처럼 '우리'라는 집단 자체, 화를 내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실제 상황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다같이 모여 상상 속에서 분노하고 격려하고 끝나는 이 모임은 이들을 어디로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중략)
이미 곪아버린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지키며 나아가야할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화를 낼 수 있게 된 후에도 우리가 우리일 수 있도록.
3 ) 연결과 동화의 예술
저마다의 표정을 짓고 있는 페이퍼피플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벽에 그려진 그림들의 의미는 무엇인지는 오로지 관람객의 상상과 추론에 의해서 파악되어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함께 전시장을 방문한 동행인과의 대화가 유독 즐거웠다. 커다란 뱀을 따라 이야기를 읽어내고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곧 뒤에서도 각자의 해석을 나누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으로서 페이퍼 피플들과의 닮은점을 찾으며 발생하는 동화(同化), 그리고 관람객끼리 또 한 번 비슷한 점을 발견하며 느끼는 동화까지.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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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글을 모아보니 몇 가지 사실이 뚜렷해진다.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세상을 움직일 힘을 사람에서, 사람을 움직일 힘을 감정에서, 감정을 움직일 힘을 예술에서 찾는다는 것.
배움과 발전의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고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분명 많을 테지만, 적어도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왔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언제나 재미를 좇아 사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해왔다. 하지만 그 재미가 그저 시간을 죽이는 역할보다, 삶을 더 즐겁게 만들며 나와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번 셀프 큐레이션을 통해 내 안의 열정 한 조각을 발견했다. 이 마음을 올곧게 간직한 채로,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