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두려움이 들 때가 잦아지고 있으나 그 두려움의 원천을 알 수 없다. 이 방향성을 잃은 시기를 나는 나의 슬럼프, 즉 하락세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를 바라보기 위해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아트인사이트의 글을 나열해 보고자 하며 나의 길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이는 나조차 나를 모르며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방황'이라는 것은 무언가의 진실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주요 테마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내가 작성한 게시글들은 취미와 진로 사이에서 정확한 방향을 그리기보다는 카오스의 궤적처럼 이리 튀고 저리 튄다. 그럼에도 불확실함으로 점철된 와중, 꾸준하게 기록을 남긴 것들이 바로 이 '아트인사이트'에서의 글들이다.
이번 글은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게 된 이야기부터 기고하는 과정 자체를 바라보며 저자의 개인적인 서사에 따라 25개의 기록 중 몇몇 인상 깊은 글을 셀프 큐레이팅(이라고 쓰고 비평)하고자 한다. 이에 따라 조금 더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첫 번째 글
[Opinion] 청춘공동체를 잃어버린 청년의 낭만이란 [도서]
그것은 단순히 대학의 에세이 공모전에 출품할 목적으로 작성하게 되었으나, 글을 쓰는 시간이 지날수록 글과의 애착이 생겨났다. 김애란 작가의 숨은 애독자가 된 계기인 '침이 고인다'를 읽고 단순한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지금 다시 보면 다소 노력한 감상문 레포트같은 이 글은 결국 장려상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를 따져보기 위해 작년, 재작년 수상 작품집을 흘긋 보았더니, 수상한 글들에 비해 내 글은 다소 사회비판적이고 날카로웠다.
특히나 서문에서 대학가의 취업박람회 열풍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니, 카프카의 '변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등의 고전문학해석이 수상의 주류를 이룬 출품작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점이 확연히 보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나의 과잉된 상상력이지만 나는 이 '인정받지 못한' 글이 점차 소중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가 나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모집'의 공고를 보았고 이 글을 바탕으로 신청한 결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내가 바라는 궁극적인 '글의 이유'였다.
점심시간 대학가의 편의점에는 라면국물냄새가 빠짐없이 진동하고 김밥과 샌드위치류가 벌써 동이 났다. 대학은 취업률이 낮은 문과가 소멸되고, 취업박람회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심지어 2010년대에 다시 돌아온 ai혁명 및 열풍은 특이점이 도래해, 청년세대의 취업희망과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사실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공부도 일하지도 않는 고립, 은둔 청년은 2022년 기준 51만 6천명으로 추정된다. 주식과 가상 화폐의 급격한 투자열풍을 보면 현재의 존립과 유지의 비중이 커지고 현재보다 나빠질 미래를 대비할 준비에 바쁘다. 미래라는 지평을 개척하던 적극적인 자세가 닥쳐올 미래를 방어해내는 수동적인 자세로의 변화하게 된 특이점은 『침이 고인다』의 배경이 되는 1997년 IMF이후 경제불황이 일상화된 2000년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청년'이라는 정체성은 나에게 특히나 강렬하게 남는 것이었다. 청년은 같은 나이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읽히지만 청춘은 같은 가치관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다양성이 결집하는 도시인 '서울'에 오고 나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같은 문제에 봉착한 비슷한 사람들에게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감정은 때때로 거짓말을 하지만 거짓말을 할 새도 없이 강렬하게 튀어나올 때가 있는데, 그 강렬한 감정들을 느끼게 해준 시간과 사람들을 나는 '청춘'이라고 불렀고 현실적인 청년 문제에서 좀 더 이상적으로 되고 싶은 솔직함을 드러냈다. 글은 '청춘'이라고 불렸던 수많은 과거의 이상들이 현실과 봉착하여 깨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와 같이 사라진 청춘을 찾아 헤매고 있을 이름 모를 상대를 위해 막연함과 기대감이 뒤섞인 편지처럼 다가간다.
아직도 좋아하는 글
이제껏 써왔던 아트인사이트 글 중 지금 봐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은 영화 리뷰다. 그 이유는 글을 쓸 당시 해석한 내용과 지금의 내가 해석한 내용의 차이를 보고, 당시의 내가 처한 상태를 추측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전시 리뷰를 쓸 때는 아무래도 전공과 연결되어 있다 보니 전형적인 이론으로 지식량을 풍부히 담으려는 의도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작용하지만, 영화에 대해서는 그런 부담을 조금 더 내려놓고 내 멋대로 쓰게 된다. 그 때문에 설명이나 이론을 담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관심사나 주관에 따른 방향으로 기울게 되는 것이다.
일단 이 글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해피 아워'라는 작품에 대한 감상이자 분석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을 감상뿐만 아니라 분석한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프로덕션 과정이 독특하고, 영화가 다소 모호한 느낌을 주지만 실제 그대로를 보여주는 듯한 촬영법으로 실재와 허구 사이의 경계를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적인 이유로 동아시아-일본 문화에서 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찾을 수 있었다. 예시로 글에서 '자비존인(自卑尊人)'과 '메이와쿠(迷惑)'와 같은 문화를 분석하여 사회와 개인의 문제들에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예술 작품이나 퍼포먼스가 영화에 등장하면 마치 실제 전시회에 온 것처럼 잠깐 영화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영화가 관객의 현실로 들어오며 재연된다는 지점에서 비전문 배우에 대한 선택이 빛이 난다. 한마디로 작위적이지 않은 설정에 관객들이 감화되기 쉬우며, 그 지점을 활용하여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횡단하며 새로운 경험을 끌어낸다. 관객들은 이 경험을 토대로 눈에 새로운 렌즈를 달고 리코딩될 세상을 '해피 아워'에 흘려 내보낸다.
가장 쓰기 힘들었던 글
내가 지속하여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경계인'이다. 특히나 과거의 시간, 역사 속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뉜 이데올로기 속에서 불가시화된 것들을 말하고 보여주며 가시화하는 것이 나의 주된 목표이다. 이는 계속하여 진실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서 거짓을 발견하기 위해 혼란과 아웃사이더의 영역에 속한 나의 정체성과도 맞물리는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판단은 섣부르면 안 되며 현실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게 쉽지 않다.
이 글은 이제껏 글을 써오며 가장 써 내려가기 힘든 글이었다. 더군다나 실제 식민지 피해를 겪은 역사를 바탕으로 그려진 연극이었기에 꼼꼼한 자료조사는 필수였고 문장 하나하나에 큰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무리 결론을 내리기 힘든 글이라도 계속하여 포로 감시원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두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글을 끝마칠 수 있었다. 옳고 그름 사이에서 아직도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은 누구보다 깊이 느끼고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결정의 힘은 나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가는 데에서 나왔다.
극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행되는데, 재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100년 전에서는 억울함과 답답함, 그러면서도 지우지 못하는 죄책감이, 현대에서는 의구심을 포함한 탐정과 같은 자세가 눈에 띄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를 알기 위해선 양쪽의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이는 비슷한 경계를 경험하지 못한 자에겐 더욱더 어려운 것이다.
쓰면서 도움을 많이 준 글
보통 자기소개란 타인을 향해 자신을 소개하는 목적을 가진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나에게 나를 소개하는 기획의 글로, 과연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일까? 라는 질문에 대답해 보고 싶은 의도로 써 내려갔다. 나의 신체 그대로가 아닌 간접적인 형식이지만 나는 창작자이기에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보여'야만 한다. 아니 창작자라는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며 나는 꾸준히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다. 미술의 영역에서 주체성은 중요한 문제이다. 다른 이가 말하는 '나(i)'가 정말 '나(I)'가 맞는지 질문하는 과정이 없다면 타인이 나를 함부로 판단할 때 자신을 지킬 수 없다. 그 때문에 이 글은 '자기소개서'이자 '자기 사용 설명서'이기도 하다.
좀 더 진심이 되고 싶어요. 저는 진지한 사람들을 좋아해요. 결이 맞거든요. 그날 하루의 날씨만으로도 깊게 빠져들 수 있는 발상은 정말 소중해요. 하지만 진지함은 꺼려지는 대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죠. 나도 가끔 버겁기도 하고 진지해서 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게 재밌어요. 역치라고 하나요. 그게 높아요. 흥미의 발동 조건이 꽤 까다로워서요. '왜?'라는 질문에 꼬리를 물고 따라오는 것들이 점점 커질수록 쾌감을 느껴요. 물론 매번 갖다주는 건 아니지만 몰입이 높아지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면, 음…. 내가 느끼기에 거짓말하지 않고 후련해질 만큼 지금의 감정을 토로하기에 집중하고 싶네요. 내가 진지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이란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하고 싶어요.
정말 솔직한 자기소개란 자신의 싫은 점이나 가리고 싶은 점까지, (나의 경우엔) 타인에게 비판받을 만한 지점까지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이 꽤 복잡하고 고통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것이 공회전에서 벗어날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인간의 굴레는 답이 없지만 그렇다고 구르는 바퀴를 멈추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