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나만 특별한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내가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아니, 오히려 모든 사람이 저마다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있을까. 너무 당연하고 진부한 말이라 쉽게 잊히지만,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그 삶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짝이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나는 아트인사이트의 '지인 인터뷰' 기회를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인터뷰를 핑계 삼아 누군가의 이야기에 깊숙이 다가갈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인터뷰 대상을 정하는 데 잠시 고민이 있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갈 법한,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봤을 법한 사람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세상 대부분의 인터뷰는 '대단한 사람'을 조명하지만, 나는 그 반대의 시선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김선모 씨다.
김선모 씨는 유치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용하고 과묵한 노인이다. 아이들의 등하원을 지켜보며, 그늘처럼 자리를 지키는 사람. 한 집안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
Q.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저는 1948년생으로 올해 77살 먹은 김선모 라고 합니다.
Q. 상당히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여정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태어난 곳은 황해도 해주이지만, 6.25 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이후 용산에서 성장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고, 강원도 묵호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사표를 냈습니다.
이후 포항으로 가서 포항종합제철이 생기기 전에 항구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곳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군대에 입대했고, 강원도 인제와 원통에서 3년간 복무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한국도로공사에 취직하여 3년간 근무하며 결혼했지만, 월급이 적어 다시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7급 행정직 시험에 합격하여 외무부에서 3년간 근무한 후 해외 발령을 받았습니다. 첫 근무지는 아프리카 수단이었고, 3살 딸과 2살 아들을 데리고 수단으로 향했습니다.
Q. 왜 하필 수단을 고르신 걸까요?
A. 수단을 선택한 이유는 피난 이후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험지 수당을 받을 수 있는 곳을 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무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이 들어 떠나기 싫어졌습니다. 이후 스페인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도착해 보니 낙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3년간 스페인에서 근무한 후 본부로 귀환해 한국에서 2년을 보냈습니다. 그 후 다시 아프리카로 가고 싶어 케냐로 자원했고, 그곳에서 자녀들을 영국인 학교에 보내며 5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딸이 대학생이 되면서 미국으로 보냈고, 네 번째 발령지는 베네수엘라였습니다. 딸의 학교와 가까운 곳을 고려해 자원한 곳이었습니다.
Q. 그럼 그렇게 계속해서 성공적인 외교관 생활을 이어가셨나요?
A. 아닙니다. 1997년 IMF 구조조정으로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공무원들까지 직업을 잃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은퇴 후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15년간 근무했고, 현재는 영종유치원에서 관리원으로 1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80세까지 일한 후 은퇴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Q. 유치원 관리원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A. 오후 4시에 출근하여 다음 날 아침 8시에 퇴근하는 연중무휴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주된 업무는 경비와 화단, 텃밭 관리입니다. 꽃과 나무, 새, 구름 등 자연을 좋아하기 때문에 10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직원들도 저를 좋아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최근에 나를 웃게 만든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A. 손주가 휴가 때마다 와서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데, 그 모습이 대견스럽고 기분이 좋습니다. 또한 최근 딸이 대학원에 등록해 공부한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필요한 아이패드를 사주었는데, 그것 또한 기쁜 일이었습니다. 자식이 새로운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며, 제가 조금이라도 지원해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Q.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가 있다면 언제인가요?
A.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8시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소중합니다.
Q. 가장 오래 이어오고 있는 습관이 있나요?
A.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종도에 온 이후 더욱 철저해졌고, 그 덕분에 일이 밀리지 않습니다.
Q. 요즘 나만의 작은 행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77세라는 나이에 아직까지도 일하며 넉넉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Q.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이 있나요?
A. 반지와 시계가 있습니다. 반지는 가장 사랑했던 스페인에서 구입한 것이고, 볼 때마다 행복했던 스페인 시절이 떠오릅니다. 시계는 제네바에서 산 것으로, 매일 흔들어 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Q.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A.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옳은 일을 행하고 계명을 지키며,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가장 감사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A. 유치원에서 일하며 네 명의 기관장을 모셨는데, 모두 저를 좋아해 주었습니다. 직원들도 저를 좋아해 주어 인복과 일복이 많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아 늘 감사합니다.
Q. 10년 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나요?
A. 10년이라는 시간은 제게 참 긴 시간입니다. 앞으로 3년만 더 일한 후 은퇴하여 아내와 함께 제네바, 이스탄불, 포르투갈을 여행하고, 제주도로 이사할 계획입니다. 은퇴 후에는 약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단 1년이라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Q. 당신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A. "열정!"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타는 열정이 있습니다.
그의 삶을 들으며, 격변의 시기에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닌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걸어온 한 사람이, 여전히 꽃과 나무, 새와 구름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는 사실이 참 인상적이었다. 희생과 성실로 점철된 삶 속에서도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고, 그 작은 순간들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라는 것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80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품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흔히 나이가 들면 새로운 꿈을 꾸기보다는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는 시기로 여기지만,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나이는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빛나는 순간들을 품고 살아간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의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우리 모두의 삶은 저마다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특별한 존재이듯, 우리 주변의 누군가 역시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중하고 특별하다.
이 인터뷰가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시에, 주변에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의 삶에도 귀 기울이며, 그 안에 담긴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덧붙여, 인터뷰 내용과 그림이 정말 잘 어울려요! 어떤 연유로 고르셨는지 궁금해지네요.
함께 실린 두 그림은 모두 장욱진 화백의 그림입니다. 첫번째 그림은 '자화상', 두번째 그림은 '가로수' 라는 작품입니다.
인터뷰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작품을 함께 첨부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인터뷰 중 꽃과 나무 새, 구름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내용이 장욱진 화백의 그림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선모씨의 인생과 장욱진의 그림 모두 일상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점과 가족을 향한 사랑이 비슷하다고 느꼈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