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를 떠올리면 어릴 적 들었던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는 말이 먼저 생각난다. 행운만을 좇다가 주변의 사소한 행복을 놓치지 말라는 뜻의 말이었다.
한참 네잎클로버를 찾아다니던 어린 나에게 기억에 남는 말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클로버 찾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네잎클로버 자체의 행운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노는 게 더더욱 즐거웠다.
끝내 자신의 힘으로 네잎클로버를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기억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네잎클로버를 찾아 친구들과 공원을 하루 종일 뛰어다녔던 나는 커서 2천 원을 주고 네잎클로버를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 앞 상인분께 네잎클로버를 사 들고 가며, 뭔가 반칙을 썼다는 생각, 그리고 옛날처럼 네잎클로버를 직접 손으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쫓기듯 살아가는 성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렸을 적에는 하루 종일 뛰어놀 시간과 기력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히려 2천 원짜리 네잎클로버보다 세 잎 클로버를 보기 힘든 시대라는 생각도 든다.
어린 시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찾을 수 없었던 네잎클로버처럼, 지금 나에게 세 잎 클로버, 즉 행복은 내 삶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내 삶에 관심을 기울이고 애정을 쏟을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행복이 아닐까?
이번 글은 내가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보고, 내가 막연히 좋아하던 것들을 언어화해 보려 노력한 결과들이다.
집중하는 시간의 즐거움
우선 나는 카페 투어를 좋아한다. 어느 동네를 가든 먼저 그곳의 좋은 카페를 블로그, SNS 등을 뒤져서 알아내고, 메모장에 전부 정리한다. 그렇게 여러 공간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벌써 200장이 넘어간다.
이렇게 카페 투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너무 평범한 일상이었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기에 내가 좋아한다는 것도 몰랐다.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카페 투어 좋아하지 않냐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카페를 공유해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았다. 내가 이런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카페에서 업무나 작업을 하면 효율이 오를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내가 느낀 감각들을 언어화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내가 왜 이 책에 빠졌는지, 어떤 부분이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며 글을 쓰는 순간이 내 행복이다다.
함께하는 시간의 즐거움
지금까지 에디터 활동을 하며 올린 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겠지만, 나는 공연을 보는 일을 정말로 좋아한다. 공연에 관련된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으며, 그만큼 많은 공연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관극 일정을 누구와 함께 갈 수는 없기에 혼자서 가는 일도 많지만, 종종 친한 지인들과 같이 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생긴다. 공연을 보기 전 앉아 있을 카페를 찾고, 식사할 공간을 고르며 그날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겨울, 겨울 하면 길거리 음식 아니겠는가. 대학로에서 공연을 보고, 같이 그날의 공연 후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겁다. 그날 작품의 매력적인 점, 혹은 아쉬웠던 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만약 이야기 소재가 떨어진다면 팥 붕어빵이 좋은지, 슈크림 붕어빵이 좋은지 별것 아닌 것들로 심각하게 토론한다.
그렇게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상을 나누고 집에 들어와 돌이켜보면, 그날 하루만큼 즐겁고 힘이 되는 하루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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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보이는 세 잎 클로버처럼, 행복은 내가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고 발견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카페에서의 시간, 공연, 그리고 따뜻한 겨울 간식처럼 내 일상에서 발견한 세 잎 클로버가 내 삶을 조금씩 채워나간다.
이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내 인생의 세 잎 클로버(행복)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도, 조금만 더 땅 밑을 보며 세 잎 클로버를 찾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