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타카로 가는 길을 나설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오랜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 마라
네 생각이 고결하고
네 육신과 정신에 숭엄한 감동이 깃들면
그들은 네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니
네가 그들을 영혼에 들이지 않고
네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 않으면
라이스트리콘과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무엇과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네 길이 오랜 여정이 되기를
크나큰 즐거움과 크나큰 기쁨을 안고
미지의 항구로 들어설 때까지
네가 맞이할 여름날의 아침은 수없이 많으니
페니키아 시장에서 잠시 길을 멈춰
어여쁜 물건들을 사거라
자개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관능적인 향수들을
무엇보다도 향수를,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최대한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을 찾아가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것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고
이타카가 없었다면 네 여정은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설령 그 땅이 불모지라 해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고, 길 위에서 너는 현자가 되었으니
마침내 이타카의 가르침을 이해하리라
- <이타카> - 콘스탄티노스 카파비(C. P. Cava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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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행복이란 감정을 경험할까?
현재까지의 전 생애를 한번 돌이켜보면 그 횟수가 손에 꼽을 것이지만 그 기억과 경험들은 강렬하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반응하게 만든다.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잊어버리고, 상상 이상으로 작은 기억들에 매달리게 된다. 인간은 연약한 존재다.
정착 민족이 늘어나기 시작한 후부터 여행 문학은 꾸준히 인기였다. 정착하던 곳을 떠나는 경험은 여행 전부터 마음을 부풀게 한다.
서문으로 들어간 콘스탄티노스 카파비의 <이타카>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영웅 오디세우스를 대상으로 노래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여행 문학을 좋아했던 나는 영웅기의 대부분이 여행 문학이었음을 깨달았고,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문학 속 영웅들처럼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래의 내가 될 모습을 동경했다.
그래서 나는 국내이긴 하지만 년에 10번 이상 다른 지역으로 떠나보고 길 때는 한 달 이상 집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기도 하고, 유목민처럼 여러 곳을 경유하여 여행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여행은 어릴 적 내가 상상한 숭고한 행위가 아니었다. 여행은 자주 도피의 수단이 되었고, 고난길 같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올 때의 좌절감이었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여행을 휴식과 관광을 목적으로 삼지, 깨달음과 고난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행까지 가서 사서 고생을 하는 사람은 소수다.
그 때문에 지금은 '여행'을 좀 더 넓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신조어처럼 우리의 현실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자율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공간의 자유가 생겼다. 꼭 오프라인으로 얻는 경험만이 진실한 경험은 아니라는 것이다. 몇천 년 전의 고대인들이 말한 여행과는 다르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 미지의 것으로부터 특별한 감정을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여행이다.
이렇게 깨달음으로 가는 방향은 각자의 시대와 상황에 맞춰 변화한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행복으로 향하는 길 같다. 이상과 다르다고 실망하고 슬퍼하기보다는 나의 새로운 '이타카'를 만들어 변화하는 세계에서 나의 길을 걷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이해하고 나만의 행복을 찾는 것 아닐까?
행복을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가 떠나온 여행길을 되돌아 보면 기억과 망각으로 행복처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