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복에도 미량의 불행이 섞여 있다는 말이 있다. 나에게 행복이란 해결해야 할 과업 내지는 이루지 못할 꿈에 가까운 단어였다. 누군가 ‘너 행복해?’라 물으면 ‘잘 모르겠어. 불행한 것 같은데 그래도 죽지는 않을 거야’라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행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일평생 계속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모든 사람을 이렇게 수고스럽게 만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모호함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나는 계속 ‘해답’에 대해 생각해 왔다. 나는 모든 것을 말없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게 내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인생에서 절대적 확실성을 기대하는 것은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과 세상의 양상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판단하려 한다. 모든 것을 구분하고 논리와 비논리를 나누고 주체와 객체를 나누고, 옳고 그름이라는 하나의 확실한 결론으로 귀결시키려 한다. 중간이 없다. 논리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의 접점을 찾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답을 찾으면 모든 게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무언가 깨달아야 했고 그걸로 반드시 삶이 변화해야만 했다.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하기를 반복하며 불가항력으로 다가오는 불안함을 받아냈다. 모든 것이 괜찮은데, 동시에 견딜 수가 없어질 때가 많았다. 이 불편한 마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몇 년간 절박한 시간들이 비현실적인 꿈처럼 삶에서 지나갔다. 내가 비정상이라는 자각을 할 때면 괴로웠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마음을 짓눌렀다.
나만의 세계에서 본능적으로 사람들과 완충 공간을 두고 살았다. 점점 더 불안해졌고 점점 더 숨고 싶어졌고 점점 더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스스로 격랑 속으로 이끌었다. 전공인 순수미술을 포기하고 시작한 취준 생활은 나를 더 무력하고 냉소하게 만들었다. 몸이 닳는 것보다 마음이 빨리 닳았다.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깊이도 얕아졌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흐릿해졌다. 이런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안에 소중한 무엇인가 손상되어 버릴 것 같았다.
세상을 이미 다 살아버린 것처럼 모든 것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고, 신경과민증 환자라는 명목으로 나를 자주 연민했다. 나아지지 않는 나를 미워했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의사들을 미워했다.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건 이 모든 게 나의 의지박약이자 허상이라는 누군가의 말이었다. 중첩된 음울함과 슬픔을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렸다. 괴로워 기진한 채로 나자빠져 며칠, 몇 주를 쉽게 보냈다. 불행에 중독되었고 불행에 빠진 사람들에게 쉽게 이끌렸다.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증오하며 한세월을 흘려보냈다. 세상에 싫어하는 것투성이였다. 불쾌하게 편안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엉엉 울면서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살겠다는 욕망이 얼마나 끈질기면 버리고 또 버려도 희망과 삶은 다시 돌아왔다. 나는 천천히 무언가를 깨달아 갔다. 답을 찾으려 헤맨 그 긴 시간이 무색하게 어느 순간 나는 민망한 결론을 낸다. 완벽함, 확실한 것으로부터 한 발자국만 물러서면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저 순간을 살아가는 것. 행복한 삶이 아닌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경험하는 것. 회피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에 집중하는 것.
나는 지금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고, 오늘 먹은 밥이 맛있어 행복하고, 며칠 후에 있을 약속을 기대하며 행복하고, 친구와 전화하며 시시콜콜하게 떠드는 게 행복하고, 언니에게 줄 빵을 사는 것이 행복하고,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곱씹는 게 행복하고, 와닿은 책의 구절을 떠올리며 행복하고, 겨울바람의 선명한 냄새를 맡아 행복하다. 무수한 감정들을 이렇게 언어로 나열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삶이란 기록과 대화의 힘으로 오늘을 지내고, 목적 없는 배움의 재미를 느끼고, 이유 없는 친절을 나누고, 일상의 쳇바퀴를 맴돌고, 그럼에도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일인 듯싶다.
어둡고 슬픈 게 좋은 나는 동시에 누구보다도 행복과 밝음을 갈망한다. 아직 허무한 꿈을 지겹게 꾸는 게 좋고 꿈꿀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깨어난 뒤 남는 게 악몽밖에 없어도, 산산조각이 난 꿈을 손이 베어가며 붙이고 살아가도 좋을 것이다. 행복은 허무를 뒤집어쓰고도 지속된다.
지나갈 겨울에도 다가올 봄에도 분명 슬픔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밀려 들어오는 불행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행복의 최소한 가능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