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고 피드백한다는 건 나에게 꽤 익숙한 일이다. 작문 스터디를 오래 했었고, 굳이 모임을 따로 가지지 않아도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어떠냐고 물어보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것만큼이나 타인의 글을 읽는 것을 사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면에 얼마나 반짝이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넓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는지. 나는 늘 관심이 많았다.
피드백 모임 첫날,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총명한 친구 한 명이 우리의 활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짜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정말 글 쓰는 걸 좋아해야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맞는 말이다. 댓글도 조회수도 없는 세상에서도 계속해서 품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고 마음을 들여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마음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만났다. 이 얼마나 귀한 기회인가.
이전까지 내가 주로 했던 작문 스터디에서 내가 얻었던 것은 구조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조금 더 보기 좋은 구조, 가독성이 좋은 구조. 그 구조는 정말 눈에 보이는 글의 레이아웃이 되기도 했고, 글을 이끌어가는 내용의 구조를 말하기도 했다. 에디터나 PRESS로 글을 쓸 때 보기 좋은 구조는 좋은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칼럼이나 리뷰 글에서 예쁜 구조가 전부가 아닌 것도 맞다.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각자 다른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궁금했다. 내가 글을 쓸 때 ‘이 정도의 문학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써도 될까?’, ‘스포일러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등 늘 고민하던 애매한 영역의 문제도 같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명확한 해답을 가지지 못해도, 누군가 함께 그걸 고민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고민의 방향성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내가 PRESS 글을 쓰며 독자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자유롭게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내가 예상하고 기대한 범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우려했던 스포일러 부분에 대해서, 더 내용을 담는 것이 이해를 돕는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기도 했다. 두 번째 피드백 모임을 하는 도중 적은 나의 메모이다.
<깨달음>
이것까지 줘도 될까? 하는 것까지 독자에게 줘야 하는 것 같다. 이거 내용을 진짜 많이 담았다고 생각했는데 과했다는 피드백보다 좋다는 피드백이니까. 독자들은 아무 배경지식이 없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줘야겠다.
이 피드백을 받았던 글은 ‘
사람이 죽으면 사랑도 죽을까’였다. 첫 번째 피드백 때 책
<사랑과 결함>의 PRESS 글을 들고 갔는데, 그때도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단편 소설마다의 줄거리가 짧더라도 조금 더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고, 이 책을 다들 매우 궁금해해 줘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쓰지 못했던, 조금 충격적일지도 모르는 스토리의 일부를 이야기해 줬는데, 그 이후의 반응이 더 흥미로웠다.
더 스토리가 궁금해져서. 핵심 사건과 관련된 인용구가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인용 박스를 줄여도 좋을 것 같고, 줄이면서 핵심 사건과 관련된 암시하는 문장이 대여섯 문장 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앞으로 내가 PRESS 글을 쓸 때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에 볼드체를 해 둔 메모이다. 다른 친구는 영화를 감질나게 소개해 주는 채널인 ‘출발! 비디오 여행’의 책 버전처럼 쓴다고 생각하면 어떠냐는 가이드를 주었다. 이런 게 내가 진짜 원하는 피드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읽고, 어찌 보면 나 스스로 만들어 둔 작성 윤리(?)에 대해 함께 공감해 주고, 그 가이드라인의 방향성도 함께 고민해 주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얻은 가장 값진 것은, 이런 글쓰기에 대한 깨달음과 조언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가치 있는 시간과 인연이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감상이 풍부하다고 느낀다. 나는 그렇게 느낀 다채로운 감상을 소설로 쓰는 사람이었다. 아트인사이트에서는 리뷰 글을 주로 썼지만, 나는 항상 내가 소설 말고는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내가 소설을 주로 쓰는 사람이듯, 에세이를 주로 쓰는 사람이 우리 모임에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에세이를 읽으며 이것이 ‘에세이의 정수’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친구의 에세이뿐만 아니라, 피드백 모임의 다른 사람들이 쓴 풍부한 에세이들을 읽으며, 에세이를 쓰지 못하는 사람인 내가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에세이의 본질, 에세이의 목적, 에세이라는 글이 독자에게 가닿는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새로웠다.
마지막 날, 그 전의 단 두 번의 모임으로 인해 수많은 소회와 감상을 나눈 우리는 더욱 편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마침, 우리가 마지막에 들고 온 글이 다 자기 고백적인 글이었다. 글과 삶과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삶의 내밀한 일부분도 공유하게 된 우리의 피드백은 삶의 가치관과도 직접적 연관성이 없을 수 없었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종결이 없는 것도 종결.
와, 나는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바로 휴대폰 메모를 켰다. 이 친구는 참 나랑 비슷하고 참 나랑 달랐다. 삶의 어떤 변곡점의 시기에 있는 것은 비슷하고, 그걸 타인에게 공유하는 부분은 다르다. 느끼는 감정의 굴레와 양상과 소용돌이가 비슷하고, 그걸 승화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 친구는 에세이를 쓰고 나는 소설을 쓴다. 정말 비슷하고 정말 다르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이유가 없는 것도 이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서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대사다. 종결이 없는 것도 종결. 그제야 나는 내가 비로소 종결의 때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이 친구는 이걸 깨닫기까지 아팠다고 했다. 나는 이걸 깨닫고 나서야 아프다.
우리는 오프라인 피드백 모임을 시작했다. 그때는 이렇게 소중한 인연의 시작일지 몰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가 인연을 소중히 하고 있음을, 인생의 의미 있는 인연으로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내가 참 낡고 지친 것 같았을 때, 반짝이던 눈망울을 보면 웃음이 났다. 낡고 지친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솔직하고 좋았다고 말해주던 사람들이라 이미 위로를 받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매일 잠이 부족한 나날들 속 너덜너덜해진 채로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데도 발걸음이 가뿐했다. 음식점에 앉아 눈이 감겨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눈이 번쩍 뜨였다. 신나게 이야기하고, 마침 밥집의 출구 쪽에 즉석 셀프 사진기가 있길래 사진도 찍었다. 그것이 이 글에서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이미지이다. 오프라인 피드백 마지막이자, 추억의 첫 발자취.
살면서 이런 대화를 하며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몇 명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진심으로, 몇 번 없을 귀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늘 건강하고 무탈하길 진심으로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