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건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언제나 작은 피드백을 받았던 것이 내 소중한 기억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외로운 일이란 생각도 든다. 무언가에 대해 써내려 가는 순간엔 오직 나만이 이 일을 이끌어가고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내 글에 확신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아트인사이트 피드백 모임을 신청했다. 나랑 같은 고민으로 자판에 손을 올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궁금할 땐 직접 부딪히고 뒤섞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순간, 용산
나는 사람을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 조금은 힘든 내향형 인간이다. 그래서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그 시작을 회피하지 않고 견뎌냈을 때 늘 새로운 문이 열렸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용산에서 다른 에디터분들을 만날 때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발을 내디뎠다.
원래 가기로 한 카페는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 조금 더 작고 한적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우린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먼저 가졌고, 그 후에는 공유했던 글을 가지고 피드백 활동을 했다. 아트인사이트 플랫폼 내에서는 처음으로 받은 내 글에 대한 독자 반응이었다. 글을 먼저 공유하는 과정에서 난 어떤 글에 가장 애정이 있었는지, 어떤 글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정리할 수 있었다.
공유를 받았던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는 시간도 참 의미 있었다. 내가 이미 재미있게 읽었던 오피니언도 있었고. 미처 보지 못했지만 이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며 감탄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마음속에 갖고 있던 의문 하나가 조금씩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쓰는 글이 항상 비슷한 흐름과 결말을 향한다는 게 의문이었던 나는, 뭐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자리한 모두가 본인이 할 수 있는 언어와 색깔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타인을 볼 때 나를 인정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순간, 혜화
두 번째 만남에는 혜화에서 연극을 봤다. 무려 러닝타임이 3시간에 달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극이었다. 한 에디터분의 추천에 따라 보게 된 것이었는데, 사실 평소에 연극을 본 경험이 손에 꼽는 나에겐 굉장한 도전이었다. 인터미션이 있는 긴 연극을 내가 온전히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언젠간 한 번 제대로 연극에 입문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해소되는 일이었다.
그저 혼자였다면 시도하지 않았을 일을 ‘함께’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다.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내 말과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 또 새로운 영향을 받는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걸 느낄 새도 없이 천천히 물든다는 게, 내가 아닌 존재의 삶에 잠깐이라도 앉았다 간다는 건 간단하지만 가볍지 않을 일이다.
세 번째 순간, 해방촌
겨울 내음이 불어오기 시작한 11월엔 해방촌의 책방을 함께 돌아보았다. 꽤 자주 들린 녹사평-해방촌 일대이지만 사실 서점에 들러본 경험은 없었다. 익숙한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일은 그 공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특히 서점마다 큐레이팅하는 특색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 참 흥미로웠다. 마치 함께한 에디터분들과 나 같았다. 글을 쓰고 공유한다는 공통점 아래에서 각자의 개성을 가진다는 것.
저녁엔 한 퓨전 한식 주점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항상 모임마다 짧게 보고 생각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이 자리에서는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이전에 함께 본 연극과 오늘의 책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자꾸만 무언가를 불려 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미덕이라 여기 것이 현대인인데, 무언갈 나누고 뒤를 돌아보는 일에 기꺼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네 번째 순간, 예술의전당
마침내 12월이 되고, 마지막 모임은 예술의전당에서 가졌다. 연말의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해 고흐의 전시를 보았다. 아침부터 인파가 장난이 없었지만, 우리는 마침내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사진 촬영이 불가하고, 대표작보다는 스케치 비중이 커서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받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원화를 가까이서 두 눈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방금 그린 듯 남아 있는 붓 터치와 빛을 마음으로 담아낸 듯한 황홀한 색감은 나를 충분히 만족시켰다. 작품 수가 적어서 실망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집중력이 좋지 못하기에 이런 연대기적 작품 구성도 나쁘지 않았다. 고흐의 생애와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2시간가량 전시장과 아트숍을 둘러 보고 언 몸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작품에 대한 소소한 견해를 주고받고, 연말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지 말하는 눈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작은 인연이지만 그것을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이 모임의 목적을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소극적이고 먼저 다가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나에게 곁을 내주어서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이 글을 빌려서 전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경계를 넓혀주고 품어준 그들의 글을 계속해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