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시작하고 전보다 더 높은 빈도로 다른 이들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중 유독 자주 이름이 마주치는 에디터들이 있었고 곧 그들에게 관심과 유대감이 생겼다. 그러던 중 에디터 모임까지 신청하게 되었고 나에게는 새로운 소통 기회로 느껴졌다.
한강진역 한 카페에서
거주지가 경기도와 서울로 나뉘는 구성원들이라 첫 모임은 그 중심에 있는 신용산역 근처 카페였다. 생전 모르는 이들과 만나는 걱정이 오소소 올라왔지만, 전날 공유한 글들을 읽어봤다. 이미 익숙한 이름의 에디터임을 알아차리곤 그 걱정도 조금은 잦아들었다. 도착해 주변을 서성이다 약속한 카페가 붐비는 탓에 옆 작은 카페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낯선 얼굴들과 어정쩡한 인사를 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즐겁게 대화했다. 어떻게 에디터를 하게 되었는지,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같은 인사를 묻고 각자 나눈 글에 대해 감상을 나누었다. 서로의 글을 잘 읽고 말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공감하면 역시 그렇게 느꼈다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글에 대한 궁금증이 에디터에 관한 호기심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각자 거주지가 떨어져 있지만 왜 4명이 구성되었는지 조금 알 수 있었다. 전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도 문화에 지니는 관심과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명확한 색깔이 있는 이들과의 만남은 한 차례 만에 즐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대학로 극장에서
두 번째 만남은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이었다. 모두가 분주한 10월이라 약속을 잡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첫 모임 때 갈음한 대로 우리의 모임은 서로의 취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연극을 좋아하는 에디터의 추천 연극을 관람하러 모였다. 관람한 연극은 <최후의 분대장>.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무색하게 연극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관람 후 든 긍정적인 감정에 나 스스로 놀라웠다. 연극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니라 늘 잘 아는 배우나 내용의 극만 보아오기도 했고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연극 자체도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열연을 바라보며 연극의 묘미를 느꼈다. 그의 연극 리뷰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취향의 알고리즘을 타면 탈수록 깊이는 있지만 시야는 좁아지는 것 아닐지 생각하곤 한다. 누군가가 나를 붙들고 경험을 시켜줄 수 없지만 서로 합의 하에 여러 문화를 소개하는 그 행위 자체에 산뜻함을 느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가 궁금해지고 그의 추천을 받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무엇을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못 박지 않기로 문득 다짐했다.
이태원 골목에서
독립 책방은 어떠냐는 물음에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에 다음 모임은 자연스럽게 독립 책방 투어가 되었다. 이태원의 책방 풀무질에서 만난 세 번째 모임은 이전보다 훨씬 편안했다. 풀무질은 사회와 인권의 책이 가득했다. 누군가의 책장을 엿보는 것처럼 한참을 들여다보다 나올 때는 꼭 다시 와야겠다며 네이버 지도에 저장했다. 각자 원하는 책을 찾아보고 어떤 책이냐 묻기도 하며 다음 책방으로 구경을 이어 나갔다. 북적이는 이태원 골목 역시 몇 년 만에 방문한 터라 낯설면서도 반가웠고 방문한 책방들 역시 모두 재방문을 부르는 매력적인 곳들이었다. 이 공간들 역시 모임이 아니었다면 당도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았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나눈 이야기는 역시 문화 이야기였다. 관람한 연극에 대한 평이나 직접 창작하는 시점의 이야기 모두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 것들이었다. 그러다 같은 연극을 본 것을 알고 평을 나누기도 하면서 서로의 취향을 한 번 더 알아갔다. 어떤 전시를 앞두고 있는지 말하며 그 공간을 소개하는 에디터의 표정 역시 인상적이었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마지막 모임은 미술관이었다. 첫 모임부터 미술관이나 전시관에서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고 한가람 미술관 고흐전에서 그 약속이 이뤄졌다. 아침 10시 붐비는 로비에서 이제는 꽤 익숙해진 만남이 끝이라는 것이 얼떨떨했다. 조금의 시간을 들여 입장한 후 각자의 속도대로 전시를 관람했다. 고흐의 연대기, 정확히 말하자면 장소를 중심으로 다뤄지는 그의 삶은 참혹하기도 아름답기도 했다. 예술을 쫓아 사는 그의 모습을 반추해 본 전시였다. 나와 전시에 대해 아쉬웠던 점과 그럼에도 좋았던 점을 나누었다. 실은 짧은 전시에 당황스러움이 남았지만 말하다 보니 그의 연대기를 이렇게 본 것도 처음 같아 괜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식사 자리에서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지막은 역시 즐거웠다는 감사를 서로에게 전했다.
짧은 만남일지라도 누군가의 부분을 알게 되고 그것에 귀 기울이는 일은 무척 가치 있고 즐겁다. 끊기지 않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헤어질 때마다 늘 좋은 이들을 만났다 확신을 지었다. 서로의 취향을 말하고 공유할 준비가 된 사람들은 어떤 기운을 내뿜는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글 역시 그랬다. 본인이 좋아하는 영역을 부지런히 탐구하고 펼쳐내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 글 너머 사람 한명 한명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그 글들이 더욱 좋아지는 경험을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글을 담아내는 사람이라는 그릇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