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임이 끝나고 함께 찾은 포엠매거진, 시 팝업스토어
다전공 신청서를 쓰던 게 재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그때의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아마 우려 섞인 비아냥일 것이다. 정확하게는 왜 불구덩이에 홀로 뛰어드니 멍청아. 라고 말할 것 같다.
필자의 복수전공은 문예창작이다. 일 벌리지 말고 얌전히 단일전공으로 졸업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또 무해하게 살다간 후회할 날이 분명 올 것 같아 결심을 굳혔다. 남은 대학생활을 한 사람의 연결고리도 없는 미지의 학문에 쏟아내게 되었지만, 그때는 태평했다. 내게 어떤 미래가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합평. 익숙한 말로는 피드백. -외국어가 더 친숙한 느낌이 실소의 포인트다- 이는 문예창작을 복수전공하는 동안 끈질기게 나와 함께한 단어들이다. 작품의 형태만 띈, 결과물 따위를 주변 사람들에게 내보인 뒤 평가를 받고,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다시 뜯어고치고. 울면서 글과 씨름한 끝에 완성되다 만 글 덩어리를 교수님께 전송하면 한 학기가 끝이다. 이걸 무려 오 학기나 했다.
입시를 위해 치열하게 글을 대하던 학생들은 흥미로만 써진 텍스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복수전공생이라고 봐주지 않았기에 나의 문제점, 그리고 나아가야할 방향이 더욱 명확해졌다. 따끔한 말은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에게도 달갑지 않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니까.
하지만 평생 채찍만 맞고 살 수는 없는 법. 파도에 깎여나가는 해안의 바위도 썰물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터였다. 나의 글도 예외는 없었다. 쉼이 필요했다. 여유로운 피드백, 힐링 합평. 다른 모임이나 수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합성어들. 그러나 ‘아트인사이트 피드백 모임’에서는 이런 특별한 경험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우리, O님과 S님과 H님은 서로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나누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말할 내용이 담긴 노트북을 펴고 비장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서로의 글에 대해 대화를 나누니 화면을 보고 피드백을 나눈 시간은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 글쓴이의 입에서 전해듣는 글과 내가 집에서 읽은 화면 안의 텍스트는 큰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준비된 질문들을 던졌고 글의 주인들은 각자의 생각을 토대로 다채로운 의견을 나누었다. 글을 말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내가 질문을 구성하면서 가졌던 의구심이 대부분 해소되었고, 이를 넘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다.
따뜻한 이야기는 덤이었다. 단순히 글의 내용을 칭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글을 쓰는 정체성을 잃지 않은 서로의 삶을, 우리는 진정으로 응원했다. 첫 번째 모임을 마친 뒤, 다음 오피니언을 투고하면서 이전과 다른 자세로 작업에 임하게 되었다. 통성명까지 나눈 고정 독자 세 명이 나의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어쩐지 타이핑을 하는 손가락이 무겁게 느껴졌다.
내가 그들의 독자가 되었듯, 그들도 나의 고객이 되었다. 이 점이 피드백 모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모임이 마무리 되었더라도 나는 모임원들의 글을 꾸준히 읽어볼 것이다. 아트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다른 에디터와 달리, 나는 그들의 살아온 순간들과 아주 미약하게나마 함께했으니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그렇다면 피드백 모임 정도는 대단한 인연이 아닌가. 게다가 보통의 관계와 달리 우리는 글로 맺어졌다. 모임은 종료되었지만 인연의 심지는 꺼지지 않고 환히 세상을 밝히고 있다. 이제 서로의 글을 기다리고, 애독하며 성사된 인연을 무한히 즐길 차례이다.
-네 번의 만남동안 애정 어린 말들을 마구 나눠준 세 분의 모임원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