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색이 있다면 무슨 빛을 띠고 있을까.
행복의 색을 감히 짐작하기가 조심스러운 나는 막연하게 나른하게 퍼지는 봄볕이나 푸르게 찰랑거리는 연못 수면의 색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마저도 소심하게. 어이없는 일이지만 종종 내가 품은 행복에 자기검열을 한다.
샘처럼 용솟아오르는 찬란한 감정이 금방 사라져버릴까 무섭고, 지금 나의 모습이 행복해야 마땅한 상황인지 곰곰히 되돌아본다. 이래저래 겁이 많아지니 내 감정을 오롯이 누리는 것도 때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마음 먹어야 할 일이다.
라울 뒤피가 들으면 코웃음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쁨에 취할 줄 아는 화가였다. 화폭을 가득 채운 환희에 가득 찬 색감과 힘 있는 터치는 잠시 스쳐지나가는 시선조차 즐거움으로 물들인다. 전기와 빛의 시대에 대한 찬사를 환상적인 색채로 물들인 <전기 요정> 연작의 기발함은 아직도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 있다.
세상과 교감하는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곧은 자세로 들여다보며, 다른 이의 의지가 아닌 자신이 받아들이는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고, 새롭고 자유로운 표현을 통해 삶을 탐구하고자 한. 프랑스에서 한국까지 아주 먼 길을 건너 온 화가.
오는 9월 6일까지 더현대 서울에서 라울 뒤피의 단독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전시를 감상하고 나니 굉장히 더현대와 결이 잘 맞는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렌디하고, 아이코닉하며, 톡톡 튀는 감성을 간직하고 있다.
만약 숨 돌릴 틈 없이 들이닥쳐오는 일상에 지쳤다면, 거닐기만 해도 풍부한 영감을 선사하는 더현대 서울에서, 눈앞을 반짝이는 빛으로 물들일 라울 뒤피의 세계를 마주해 보기를.
라울 뒤피 - Autoportrait, 1898
라울 뒤피는 프랑스의 한 가난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술성을 간직한 집안 이력에서 짐작되듯 라울 뒤피의 가족은 모두 음악과 미술,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집안의 사정으로 어린 시절부터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15세부터 적극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인상주의를 거치던 중 마티스 작품에 깊은 영감을 받아 야수파 화가로 활동을 이어갔으며, 그중에서도 형태와 색에 대한 자신만의 감각을 고수하며 밝고 역동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독특한 화풍으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라울 뒤피의 아틀리에 - L'atelier, vers 1940
특히 흥미로운 것은 '행복'과 '기쁨'을 주제로 삶을 들여다보았다는 것이다. 단지 화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는 화가가 일구어 온 삶의 궤적에도 반영되는 듯. 그가 이어간 다양한 행보는 작품을 바라보는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회화, 조각, 드로잉, 판화는 물론 직물, 패션 디자인, 도예 등 장식 예술에 이르까지 그는 정력적으로 자신의 꿈을 탐구했다. 이토록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하고, 또한 다양한 분야와 협업한 작가는 라울 뒤피가 처음이었다.
아주 거침없는 다채로움이다.
Cargo noir à Sainte‐Adresse, 1948‐1952
여의도에 자리한 더현대 서울은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건축물 '파크 원'의 일부로, 독자적인 개성을 간직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라울 뒤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 역시 리차드 로저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운명적인 접점. 그래서인지, 작품을 둘러싼 견축의 결을 느끼며 -마치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을 거닐며 감상하는 듯한 마음의 자세로-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Le paddock à Deauville, 1930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이어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라고.
미술관이 자리한 퐁피두 센터는 리처드 로저스의 설계로 1977년 개관하였으며, 라울 뒤피 작품의 최대 소장처이자 피카소, 칸딘스키, 마티스, 샤갈 등 12만여 점의 근현대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