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나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돌아선 적이 많다. Go와 Stop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Stop 한 게 아니라 지나치게 고민하는 동안 Go의 문이 닫혀서 Stop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선택지였는데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고 결과지를 받아들였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지독한 게으름과 회피 성향의 협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걱정이 많은 성격이 더해져서 별거 아닌 일에도 크게 고민한다.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대뜸 여행을 결심하는 일은 중대 발표의 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여행을 간다. 다음 달에 도쿄로.
의외로 고민은 짧았다. 정신이 살짝 나가 있어서 수습하는데 하루가 걸렸을 뿐,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기다리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숙소를 예매했고 비행기 시간을 알아봤다. 이 모든 일은 공연을 보기 위해 벌어졌다.
저마다 여행의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주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여행이었다. 매일 비슷한 날들에서 벗어나 비일상적인 좋은 순간을 누리고 싶어서 갈 곳을 알아봤다. ‘이러려고 돈을 버는 거지’ 하면서 비상금으로 만든 여행용 계좌를 헐었다. 항공권을 사고 호텔을 예약하고 가고 싶은 곳과 먹고 싶은 것을 정리해서 일정을 정한다.
지도를 보면서 동선을 짜고 날짜별로 정리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계획표에 플랜B를 집어넣는다. 나는 이 과정에 공을 들이는 편이라 가끔 가기도 전에 질리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면세품 쇼핑을 하면서 금방 기분이 풀렸지만, 여행을 결정하는 것도 그다음 과정을 밟는 것도 나에게는 큰일이었다.
그런 내가 즉흥적으로 여행을 결정하다니. 그것도 공연 하나를 보겠다고.
심지어 처음에는 1박 2일 일정이었다. 정말 공연만 보고 오는 하드코어한 스케줄. 귀인의 도움을 받아 공연을 무사히 예매하고나서 ‘날씨가 좋을 때니 잘 놀다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자 문득 긴장과 스트레스로 가득 찬 1박 일정이 버거워 보였다.
그래서 그날 저녁 3박으로 호텔을 다시 잡았다. 운이 좋게도 마침 숙소가 괜찮은 가격에 나와서 고민할 것도 없었다.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순탄한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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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용기가 부족했다.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그 순간에도 용기가 없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도 용기가 없던 순간을 후회했다.
그때 했어야만 했거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망설임이 미련으로 남았다. 그걸 반성하고 있을 때 여행이 확정되었다. 미련과 반성이 없었더라면 나는 또 다른 후회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반성마저 시의적절하게 이루어졌다.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내 등을 떠민 것만 같다.
큰 결심이 무색하게 준비하는 동안 어려운 게 없었다.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고 평소답지 않은 모습에 응원도 받았다. 이렇게 순탄하게 흐를 수도 있는 일을 두고 나는 그동안 수도 없이 돌아섰다니. 살면서 필요한 건 아주 작은 용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비포장도로일까봐 발을 들이지 않은 순간, 문 뒤에는 아스팔트 작업 잘 끝난 평탄한 길이 있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이번 결정이 마지막까지 행복한 순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또 다른 빠른 결정을 내릴 연료로 쓸 수 있게. 미래의 나에게 하나의 작은 변화로 남을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