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일 년 중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하루.
삼월 중순 꽃이 개화하는 어느 봄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스마트폰 속 알림음이 분주하게 울린다. 메신저에 설정해둔 생일 축하 표시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주변 사람들의 축하 톡도 간간이 오곤한다. 그제야 내 기억 시계가 '나 오늘 생일이었구나'라고 읊조린다.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의미있는 날
이십 대 때 생일은 설렘 반 기대 반이었다.
그때는 누군가가 내 생일을 챙겨주고 축하해 줬다는 데에 마음을 쏟고 섭섭했다면 지금은 일 년 중 ‘어떤 하루’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요즘은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들 사는 게 바쁘겠지 기억 못 할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친구, 지인이라고 살뜰하게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첫 직장동료로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부터 해서 지금은 언니 동생으로 지내는 사람들까지, 대단한 선물은 아닐지라도 일 년 에 한두 번 ‘생일’을 빌미로 그간의 안부를 묻는 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그들을 챙기는 것 또한 그렇다. 나는 지인들 생일을 잘 챙기는 편이다.
카톡으로 주는 케이크 하나, 커피 한 잔은 단순히 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록 사는 것이 바쁠지언정 본인이 태어난 소중한 날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어린 10대 때는 부모님께 생일이니까 선물을 받고, 치킨 피자 등 맛있는 것들을 시켜 거하게 생일잔치를 했다. 그게 생일인 줄 알았으니까. 그러니까 이십 대 때는 선물을 주고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진짜 인간관계라고 생각했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로 넘어 갈수록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점점 줄었고, 나이 먹을수록 인간관계가 좁아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며 회의감을 느꼈다.
정작 감사해야 하는 것에 소홀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 년 동안 혼자 미역국을 끓였다.
나는 왜 떠난 사람들에게 서운해할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못했나. 엄마가 돌아가시며 새롭게 마주한 사실들, 그를 통해 나를 도와준 이들이 내 곁에 머물고 있지 않나. 엄마한테도 그간 감사하다고 자주 말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마음이 괜히 시큰하고 먹먹했다.
말 그대로 생일은 생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특별한 것이 있다면 생일을 이야기 삼아 심심하게 근황을 묻는 지인들이다. 나와 같이 일을 얼마 안 하고 회사를 그만둔 친구도 가끔 한 두 번 안부를 묻는 쇼호스트, 아나운서 동생, 애 키우기 바쁘지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친구 등... 생각해 보면 주위에 감사한 분들 투성이다.
그저 그런 날이 그냥 지나가는 날,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각종 사이트 쿠폰들이 어찌나 내 생일을 잘 기억하고 있던지 10%-20% 할인은 물론이고 생일 쿠폰을 주는 문자를 하루 종일 받았다. 정말
웃픈이야기 지만 주변에 친구들이 떠나도 다양한 웹사이트에 가입한 이력들 때문에 적어도 생일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친구가 생일 기분을 내라고 케이크를 사줬다. 어두운 집 안 거실 아빠와 나의 목소리가 경쾌하다. 촛불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숫자 두 개에 불을 붙여 노래를 부른다.
오늘따라
엄마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