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이렇게 이상 속에 사는 것일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있을까, 나는 충분히 열정적인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즐거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길 그만둘 수 없는 날들이 있다. 명확한 답이 없는 질문들에 스스로를 가두며 새해를 맞았다.
사두고 읽지 못한 책들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올해의 첫 독서를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 “현실적이면서도 상상을 멈추지 않는 예민한 자유주의자”, “게으른 야심가이자 예술을 사랑하는 프로불편러”, 작가를 설명하는 낱말들이 낯설지 않았다.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새해의 첫 책을 아주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광대하고 게으르게”
미술 전문 기자 문소영의 에세이. 책은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 총 6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가가 가진 미술, 문학, 사회, 문화 전반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견해를 폭넓게 보여준다.
미술 작품에서, 문화와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현상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것을 유쾌하면서도 가볍지 않게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탁월하다.
작가는 자신도 혹시 늦게 꽃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에 늦게 꽃핀 대가들을 찾아온 자신에 대해 고백하며 첫머리를 연다. 그들로 인해 얻는 안도와 또 그들로 인해 얻는 삶의 동기에 대해 말하며 ‘게으를지언정 무언가를 계속하며 게을러야 하는구나.’ 깨닫는다.
그리고는 쓴다. 예술을 사랑하고, 작품에 공감하고, 아닌 것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왕 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없는 걸 만들고 싶지만, 내가 하고자 했던 일조차도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미루고야 마는 자신에 대해서.
특히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마지막 챕터 “행복하게”에 소개되는 열반경 속 공덕천과 흑암천에 대한 것인데, 여기서 공덕천(길상천)은 복을 부르고, 흑암천은 화를 부르는 불교적 존재다. 공덕천과 흑암천은 떨어질 수 없어, 공덕천을 맞이하고자 하는 이는 흑암천을 함께 받아들여야만 한다.
작가는 왜 공덕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인가 짜증내며 생각하기를 포기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성인이 되어 새삼 깨달았다. 공덕천과 흑암천은 쌍둥이일 뿐만 아니라 아예 한 몸의 두 얼굴이며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그 어느 쪽의 상태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 그 둘이 언제나 함께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혼탁한 세상에 중심을 잡고 서서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책 속 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보다 광대한 세상을 향해 있다. 한 사람의 글로써 연결되는 세상 속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독자는 작가와 대화하듯 웃음 짓고 함께 고민한다. 치열한 사회와 스스로의 게으름 사이에서, 정답 없는 수많은 질문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여전히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정답이 있었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덜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삶을 위해 답을 유보하는 것이라 위안하며 게으를지언정 꾸준히 무언가를 해보자고 나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