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란 무엇일까?
돈도 안 되는데 꾸준히 하는 것을 취미라고 부르는 걸까?
국어사전에 취미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그러니까, 취미란 단지 즐거움만을 추구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다. 물론 즐거움은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정말 중요한 가치지만, 익히 하는 말을 빌려 내게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즐거움을 위해 열정을 투자하다니. 누군가는 그 비효율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비효율’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취미란 나의 직업이나 전공보다도 나를 훨씬 더 잘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취미를 통해 그 사람을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오로지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는 세 명(4대혀누, 김씨, 외로운 상어)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 4대혀누: 운동입니다. 특히 야구와 농구를 자주 합니다.
Q. 그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아버지가 어린 저를 데리고 매일 운동을 하러 다녔는데, 아무 생각 없이 땀을 흘리고 운동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자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가 되었습니다.
Q. 그 취미가 자신과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야구를 특히 좋아합니다. 야구는 팀 스포츠인 동시에 철저한 개인 스포츠입니다. 개인의 결과가 모여서 팀의 성적에 반영되는, 독립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스포츠입니다. 날아오는 공을 생각 없이 쳐야 하는 동시에, 생각을 많이 하면서 수비를 해야 합니다. 수 싸움을 하면서 공을 던져야 하지만, 공이 날아오면 곧장 잡아내야 합니다. 이런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점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Q. 취미를 만나기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A. 유산소 운동량이 늘어서 뱃살이 빠졌습니다. ㅎㅎㅎㅎㅎㅎ
Q. 취미를 즐기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나요?
A. 같은 팀원이 실수하면 잘못을 짚어주고, 반대로 잘했을 때는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자만하면 플레이가 커지고 사소한 실수가 잦아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경기하자는 취지입니다.
Q. 취미를 즐기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A. 2018년 LG U+ 전국 사회인 야구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고척 돔에서 경기했고, 4대3이라는 타이트한 점수로 경기를 마무리했다는 점과 제가 감독을 맡았던 팀이 우승했다는 점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행복할까요?
A.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어릴 적 꿈이 야구선수였고, 재능이 있었는데 부모님의 반대로 도전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매우 즐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Q. 이 취미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고, 기초부터 잘 닦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본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2. 김씨: 핸드폰 케이스 만들기, 다이어리 꾸미기
Q. 그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2021년 8월 말 졸업 전시를 관뒀습니다. 별 관심 없는 주제를 재미있는 척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이 불쾌했던 것 같아요. 사람이 하기 싫은 것에 붙잡혀 있으면 죽음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연고도 없는 대전과 부산에서 며칠간 머물렀고 편집샵 같은 곳을 둘러보며 내가 좋아하는 건 뭔가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을 재조합하거나 재밌게 배열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한두 달 정도 전시 스태프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역시나 완전한 창조는 이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급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키치, 콜라주, 마구잡이로 붙인 스티커, 콜렉트북을 좋아하는 저를 그냥 인정하고 밀어붙이자는 생각에 ‘해보고 싶었지만 어떤 깔쌈한 창조와는 멀어 보여서 하지 않았던’ 것들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1)종이 재질이 아닌 이것저것을 붙일 수 있고, (2)나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서도, (3)늘 들고 다니는 아이템인 핸드폰 케이스를 꾸며봤는데, 나름 괜찮은 거 같고(나중에 보니까 정말 아니었지만) 졸전 뒤엎고나서도 할 것을 찾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예쁘고 귀엽단 반응이 한 둘 있었어요. ‘좋아요’ 말고 댓글이나 DM. (액정을 두 번 터치하는 것보다는 역시 한 500번 두드려서 써 내려간 텍스트가 감동적이죠.)
갤러리처럼 정리되는 곳에 올려서 스스로 박제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사진도 열심히 찍게 되더라고요. 초반에는 대충 책상 위에 올려두고 찍었는데, 지금은 배경지를 깔거나 천을 벽에 걸거나 (스탠드지만) 조명을 써보고 있습니다. 역시나 ‘사진이 예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으니까 기분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뿌듯했어요.
"사진 찍는 과정이 결과에 비하면 좀 웃긴데요, 삼각대가 없어서 책상에 카메라를 세우고, 화면 확인이 안 돼서 카메라 앞에 거울을 세워두고, 블루투스 촬영이 안 돼서 타이머를 맞춰두고 후다닥 포즈를 취하는 식으로...."
"가장 기초인 초점이 안 맞는 사진도 수두룩하게 나와요. 50장 정도 찍은 후 10장 정도 고르고, 그중에서도 표지를 포함해 딱 3~4장 고른 후 보정해요. 배경을 완전히 흰색으로 날리면서 결과물은 잘 보이게 보정하려 노력하는데 잘 안돼서 그냥 몇 번 만지다 끝냅니다."
아무튼 그걸 계기로, 종이가 아닌 재료들을 공부하는 재미로, 동대문 들락날락하는 재미로 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이런 식의 폰꾸(폰케이스 꾸미기)를 하는 사람을 아직까진 본 적 없어서 ‘나 좀 유니크할지도 모르겠다’는 자아도취가 가능해서 계속하고 있습니다.
일기는 원래 쓰는 걸 좋아했는데 일기란 자고로 장문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관뒀다가, 위와 비슷한 시기에 우울한 이야기를 차마 남을 쓰레기통처럼 붙잡고 쏟아낼 수는 없어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생일에 친구에게 다이어리 속지-거래명세서-와 다꾸용 스티커-크기별 견출지-를 선물 받아서 제대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것 역시 외부의 가벼운 자극이나 넓어지는 식견으로 무너지기 딱 좋은 ‘남들은 이렇게 안 하겠지’라는 구닥다리 신념 하에 지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 거래명세서에 다꾸를 하고 수수깡을 붙이는 사람은 못 봤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Q. 그 취미가 자신과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마음을 충족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취미의 종류 자체는 흔한 편이지만 사용하는 재료가 ‘일반적’이진 않다는 점에서) 타인에게 보여주기도 좋으며, 나름 배운 것을 써먹는다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보여주기 좋다’는 건 제가 어쩔 수 없는 MZ 세대라 인스타그램을 하루 한 번은 들여다본다는 아킬레스건을 관통하는 장점이죠…. 이걸 빌미로 남들과 이야기(댓글, DM, 때로는 대면 대화까지도)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취미를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Q. 취미를 만나기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A. 아이돌의 음악에서 무언가를 할 열정과 영감을 받는 편인데, 그동안은 전혀 가사를 듣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건 제가 노래를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들어야 노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노래 들을 때 쪼~금 가사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천 쪼가리나 종이 쪼가리나 하여간 너무 무겁지 않은 무언가가 생기면 일단 핸드폰 케이스나 다이어리에 붙일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 것들은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리고 안 써서 쓰레기가 됩니다.
Q. 취미를 즐기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나요?
A. ‘결과물이 구리다고 자책하지 않기‘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일단 하고 보는 성격 때문에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인생에서 너무 많았기 때문에, 스케치를 몇 개 그리고 시작하는데도 스케치만큼 예쁘지 않거나 조잡해 보이거나 해도 그냥 ‘그게 특징이려니’ 하고 넘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그냥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요.
‘재밌는 것 하자’라는 규칙도 있는데요, (인스타그램 아이디-@livefunordie도 저 내용이에요) 아무래도 작년 졸전을 관둔 결정적인 이유가 재미가 없으면 흥미도 없어지고 집중도 안 되고 열정도 없어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었으니만큼….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재밌는 것을 과감하게 하자는 규칙을 세웠습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의 ‘이래도 되나?’를 무시하는 거죠.
Q. 취미를 즐기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A. 얼마 전에 친한 친구가 집에 놀러 왔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랑을 좀 하느라 다이어리를 꺼내서 보여줬는데요, “너는 이런저런 과감한 시도를 거침없이 하는 점이 멋지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성향상 쉽지 않다.”라는 말을 해줬어요.
제가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챈 데다가, 조금 낯부끄러울 수도 있는데 직접 말로 해주니 정말 고마웠습니다.
Q.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행복할까요?
A. 얼마 전에 재미 삼아서 난감한 순간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 테스트를 했어요. 인터넷에서 10분이면 결과가 나오는, SNS에 “대박 난 이거 나옴”하고 올릴 수 있는 수준의 검사지니까 제 인생에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그렇게 별생각 없이 읽고 넘겼던 결과가 돌이켜보니 꽤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도 ‘망상’… 이런 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난감한 상황에 마주해도 ‘아 근데 난 나중에 어떤 위대한 일을 할 거니까 이런 역경쯤 뭐 괜찮아.’한다는 느낌이었던가.
이 취미를 하면서 늘 하는 망상 중 하나가 이 작업이 샤이니 키 씨의 앨범 뮤비 소품을 만드는 일로 이어지는 상상이에요. 꼭 핸드폰 케이스나 다이어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취미라 생각하거든요. 폭넓게는 그냥 ‘콜라주’니까.
이 취미에 적당한 보수와 적당한 시간제한과 적당한 발상의 제한까지 더해진다면 저는 기절할 수도 있어요. 좋아서. 뻥이고 기절 안 하고 작업해야겠죠.
Q. 이 취미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재미있는 거 하세요!
3. 외로운 상어: 연극, 뮤지컬 관람
Q. 그 취미를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전공(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주변 친구들의 추천으로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전공 때문에 공연을 볼 기회가 생겼었는데, 공연을 보고 왔다고 하니 공연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이것저것 알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학교에서 보여준 공연 외에 다른 공연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Q. 그 취미가 자신과 잘 맞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은 굉장히 많습니다. 책도 있고, 노래도 있고, 영상을 사용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일러스트나 만화도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 공연으로 볼 때 가장 몰입이 잘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취미를 만나기 전/후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A. 우선 스케줄러로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연극과 뮤지컬을 취미로 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PL@Y2로 바뀌었다는 것, 음악 재생 목록이 뮤지컬 노래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뮤지컬 DVD나 OST, 프로그램 북이 책장에 꽂혔다는 게 있네요.
('외로운 상어'의 PL@Y2 화면)
Q. 취미를 즐기는 자신만의 규칙이 있나요?
A. 제 규칙은 좋았던 부분 먼저 떠올리기예요. 딱히 매일 다시 상기하고 결심하며 공연을 보는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봐요.
저는 대학로 상업 연극과 뮤지컬을 주로 보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같은 제작진들과 배우들을 또 보게 되어있어요. 내 마음에서 부정적인 것부터 나열하면 이후에 나올 관련 공연을 보기 꺼려지는데, 그렇게 놓치면 나중에는 그 공연을 보고 싶어져도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좋았던 점을 찾는 거 같아요.
그래도 아닌 부분은 꼭 아니었다고 말하는데, 꼭 내가 그렇게 느낀 근거를 찾고 나서 말해요.
Q. 취미를 즐기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A. 제 친구들 같은 경우는 ‘레전드 찍었다’ 싶은 공연의 날짜를 기억하는 거 같아요. 저는 날짜를 외우고 다니는 편이 아니라서인지, 아직 그런 날을 마주한 적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날짜로 기억이 나는 건 없네요.
그래도, 음. 취미가 되기 전에 뮤지컬 ‘달과 6펜스’를 본 건 늘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제가 지금 좋아하는 배우가 거기에 세 분이나 계셔서…….
Q.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행복할까요?
A. 모든 일이 그렇듯 퇴사하고 싶다, 때려치우고 싶다, 때려치우면 이 방향으로 절도 안 할 거다, 같은 소리가 나오긴 하겠죠. 특히 공연 일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힘들다고 해요. 근데 다른 일이라고 안 그런가요? 원래 평일은 5일이고 주말은 2일이듯 작은 행복 끌어안고 사는 거예요. 물론 공연 일은 평일 6일, 주말 하루거나 가끔은 주말이 없거나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행복할 거 같아요. 일단 공연장 구조를 좋아하고, 대학로 거리 자체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행복하게 살 방법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살 거예요.)
당신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을 하나쯤 수행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취미가 밥을 먹여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밥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어차피 밥을 먹고 살아야 한다면, 기왕이면 좀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을 연구하며 살아도 좋지 않을까.
글을 읽는 여러분의 삶에도 도시락김 같은 취미가 한 장 씩 들어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