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은 ‘참’과 ‘교육’을 합쳐 만든 말이다. 문자 그대로 ‘참된 교육’을 뜻하는데,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도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는 대상을 시원하게 혼내주는 행위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인다. 이때 ‘시원하게 혼내주는’ 방법이란 경제적 타격, 물리적 폭행, 사회적 체면 훼손, 법의 심판 등으로 다양하다. 유사어로는 무언가를 시원하게 해결한다는 뜻의 ‘사이다’가 있다.
이러한 ‘참교육’은 이제 하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유튜브에서는 ‘~한 빌런 참교육’이라는 테마의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참교육’이라는 단어 자체를 제목으로 한 웹툰까지 등장했다. 사람들은 왜 ‘참교육’에 열광할까. 이 이유는 ‘참교육’이라는 단어 자체에 숨어있다.
언급했듯 ‘참교육’은 ‘참’과 ‘교육’을 합친 말이다. 여기서 ‘참’은 ‘교육’을 꾸며주며 ‘참교육’의 강한 효과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말은 역으로 기존의 교육은 약하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참교육’이라는 단어의 관점에서 보기에 기존의 교육은 ‘참됨’에서 실패한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교육’이란 사회적으로 합의된 교육의 방식을 뜻하는데, 넓게는 학교에서 사회적, 도덕적 규범과 지식을 전달 받는 교육을 말하기도 하고, 좁게는 물리적 폭행을 가해서는 안 된다거나 관용 정신을 베풀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 아주 넓게는, 사회에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까지를 뜻하기도 하다.
‘참교육’은 이러한 방식의 교육이 느리고 약점이 많음을 비꼰다. 장기적인 방식의 교육이 당장의 일탈이나 잘못을 해결해줄 수 없으며, 오히려 악행을 저지르는 자는 그 교육의 너그러움을 이용해 더한 짓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참교육’의 교육자들이 행하는 방식은 ‘직접 응징’이다. 사회의 해결이 너무 느리고 약하기 때문에 직접 나서서 1:1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 교육의 답답함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상대를 응징하고, 그들이 잘못을 빌게 만든다. 사람들은 ‘참교육’이 가진 그러한 속성, 즉 속전속결의 권선징악에 열광한다.
이 해결 방식은 쉽고 빠르다. 어려운 것을 따지지 않고 잘잘못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나 ‘참교육’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참교육’은 절대 교육이 될 수 없음을 방증하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참’은 응징이 교육으로서 참되고 강하게 기능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응징과 교육이 완전히 다른 말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응징’과 ‘교육’을 겹쳐 사용할 수 없기에 ‘참’이라는 강조가 필요한 것이다. 엄연히 교육이 아닌 행동을 교육으로 둔갑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강한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참되었다’는 첨언이 필요하다.
응징에 ‘교육적인’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다.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교육과 응징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둘의 관점 차이 때문이다. 교육은 인간이 점차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전제로 두고 있다. 학문이든, 도덕이든, 어떤 측면에서든 나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선함을 믿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는 행위이다.
반대로 ‘참교육’의 방식인 응징은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는다. 즉각적인 처벌만이 인간을 뉘우치게 할 수 있으며, 이해와 관용은 악한 의도로 언제든 이용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참교육’은 ‘잘못했으면 혼이 나야 한다’는 기조로 실행된다.
결국 ‘참교육’은 단어 자체로 두 가지를 설명한다. 하나는 교육의 어려움, 나머지 하나는 ‘참교육’의 비교육성. 당장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답답해하는 이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것을 당장 해결하는 쉬운 방식이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물론 모든 ‘참교육’이 단지 ‘쉬운’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중 어떤 것은 공익적 목적을 위하여, 또 일부는 선량한 의도로 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일을 ‘참교육’적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응징은 개인 대 개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 대 개인의 응징은 사회가 함께 책임지지 않으며, 충분한 담론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실행된다. 물론 해결 속도는 훨씬 빠르겠지만, 빠르고 강한 것만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준일까. ‘참교육’이 말하는 ‘참되다’의 의미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