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남해 섬의 도로 위로 달려오면서 본 덩치 좋은 나무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큰 나무 밑에는 꼭 앉을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자가 있기도 했고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는 식탁 의자나 포장마차에서나 볼 수 있는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어색하게 그늘 밑에 붙어 있는 곳도 있었다.
곳곳에 이런 보호수가 있다니. 큰맘 먹고 차도 빌려 왔겠다 우리는 2박 3일 동안 지나는 대로 보호수를 만나러 다니기로 했다. 소개된 마을들을 모두 갈 수는 없었지만 한 곳 한 곳마다 그 마을의 향기와 여름의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림같이 푸르던 하늘에 못지않게 푸른 잎들과 튼튼한 몸통을 뽐내는 두모마을의 느티나무는 경이로웠다.
두모마을 느티나무
여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호수'가 풍치 보존과 학술의 참고 및 그 번식을 위하여 보호하는 나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보다는 일종의 제의적 의미로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나무라고 생각했다. 어떤 쪽이든 사실 나무가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것도 맞고 우리가 보전해나가야 하는 자연을 대표하기도 한다.
커다란 나무를 보면 괜히 손을 가져다 대고 싶고, 두 팔을 최대한 멀리 찢어 두께를 가늠해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수분을 한껏 머금은 흙냄새도 중독성이 있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지만 느낄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을 얻고 싶어서 일까. 이렇게 보니 자연의 우두머리인 나무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두모마을, 선구마을, 백련마을, 시문마을. 마을마다 이름이 적힌 돌이 입구에서 우리를 반겼다.
한 끼를 먹더라도 맛집을 검색해 먹는 현대인들은 사실 맛있는 것에 대한 열망보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두려워하는 걸지 모른다. 우리에겐 시간이 돈이니까. 마을마다 어떤 풍취를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 어떠한 힌트도 없는 채 이동할 때 마치 추천 식당이 아닌 곳에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실패를 하지 않아서일까, 다음 마을로 옮겨갈 때마다 그 기분은 그저 이 여정 자체에 대한 즐거움으로 변했다. 어릴 적 했던 보물찾기 놀이가 생각나기도 했다.
화계마을 느티나무
팽나무와 느티나무는 자신이 이렇게 커질 줄 알았을까. 이렇게 오래 살아 누군가의 그늘이 되고, 쉼이 되고, 장소가 될 거라 예상했을까. 도망가거나 쓰러지지 않고 오랜 시간 한곳에 있는 우직함과 세월이 쌓여 거대해진 모습이 주는 거대함. 그래서 나무는 보는 사람까지도 차분하게 만드는 걸지 모른다.
그 시간을 가늠하면서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채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하게 만든다. 그늘에 앉아 쉬고 놀며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하도 앉아 바래진 자리에 익숙한 듯 모여 앉아계신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 톡. 누가 봐도 관광객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은 단순히 집을 떠나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떠날 때에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어떠한 방해 없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애써 무시하고 있던 걱정이나 깜박하고 있던 작지만 중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오게 되었지, 하고 가만히 생각들의 흐름을 따라가보면 편안해진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채 돌아오는 게 다반사지만 남해 일상으로 되돌아 온 나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보호수의 푸른 향이 조금 묻어온 것 같다.
p.s 전시는 마무리되었지만 보호수들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