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아름답게 엮어낸다.
코라의 탈출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책은 아주 흥미로운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해나간다. 책은 '아자리', '조지아', '리지웨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스티븐스', '노스캐롤라이나', '에설', '테네시', '시저', '인디애나', '메이블', '북부'라는 소제목의 글들로 구성되어있다. 목차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이름과 북부로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지역 이름들이 교대로 구성되어있다.
지역으로 된 섹션에서는 코라가 탈출을 결심한 시점의 이야기가 시간순으로 구성된다. 후술할 이름과 마찬가지로, 소제목으로 지정된 지역들은 코라에게 특정한 인상과 경험을 준 곳이다. 예를 들어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흑인 문명의 선진화라는 이름 아래에 자유를 약속한 것처럼 보이지만, 흑인 소녀들에게 임신 중절을 강요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코라와 시저는 처음에 이곳에 남을 것을 선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라만이 살아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지명을 이용한 전개방식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코라가 북부에 도착한 이후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기술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코라가 북부에 도착했을 즘엔, 그녀와 함께 도망치거나 도움을 받은 이들 중 -심지어 그들을 도와준 백인조차도- 사지가 온전한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말로 하기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고, 코라는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분노와 상실 속에서 북부에 손을 내밀었고, '북부'는 이 이상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이런 결말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 현명한 마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북부가 마냥 좋은 곳이건 나쁜 곳이건, 어정쩡한 곳이건 텍스트로 박아 넣는 순간 코라의 '탈출'은 끝난다. 그곳이 목적지라면 더는 움직일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코라는 대농장으로부터, 노예제로부터 도망치긴 했지만 동시에 자신 안에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발을 놀렸다. 그런 그녀의 여정을 단순히 도망자의 탈출기로써 끝낸다면 그녀의 여정이 가진 고결함이 조금 덜 부각되는 기분이다. 그녀 역시 신대륙을 밟은 미국의 진짜 얼굴 중 하나이면서, 현대 미국을 구성해온 핏줄 중 하나다.
이름으로 구성된 섹션에서는 코라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사연이 짤막하게 쓰여 있다. 이들 역시 코라의 탈출 과정에서 특정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대표적으로 리지웨이는 메이블을 놓친 현상금 사냥꾼으로, 온갖 고난을 견뎌내면서 코라를 쫓는다. 현상금 사냥꾼인 그에게 흑인 노예들은 미국의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사냥감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흑인 소년 호머와 기묘한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코라를 놓친 순간 호머에게 건네는 말에는 호머와 대장장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의 파편이 녹아들어 있다.
리지웨이만을 대표로 기술했지만, 다른 인물들도 리지웨이만큼이나 복잡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노예제를 경멸한 아버지의 유지를 어설프게 잇는 인물, 미개한 흑인의 구원 하고자 하는 위선으로 무장했지만, 흑인 소녀에게서 보호자의 감정 조각을 느낀 인물 등 캐릭터들은 다면적으로 묘사된다. 이들을 거쳐오면서 마지막에서야 탈출을 시작하게한 시저와 메이블의 이야기가 기술된다.
그리고 한 섹션 중간 중간에는 도망친 흑인 노예에 대한 설명과 현상금에 대한 설명이 써있다. 저자가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연출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쫓기는 코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책의 연출 덕분에 이 책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사연들을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수배서를 보면서 그들의 최후와 자신의 최후를 동일시하는 코라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다.
다른 정보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로서 이러한 책의 전개방식은 혼란스럽다. 특히 초중반에는 갑자기 바뀌는 시점과 시간 때문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독특한 책의 방식 덕분에 책은 '코라의 이야기' 이상, '19세기 미국의 노예제도를 둘러싼 경험'들을 충실하게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나가며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천재적인 구조,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캐릭터의 묘사, 메시지를 마무리하는 완벽한 비유로 가득 차 있다. 책은 차갑고, 비인간적이고, 때론 잔인하기도 하다. 미국 역사에 대해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은 독자로써 어느 부분이 과장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노예제도에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경험하는지만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인영은 과연 19세기에만 갇혀있을까? 소설은 나에게 강렬한 경험을 주었다.